[유진모의 테마토크] 지상파 음악방송과 순위의 존재가치
입력 2015. 06.29. 09:40:13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지상파 방송 3사의 대표 음악 프로그램은 KBS2 ‘뮤직 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다. 각각 금 토 일요일 오후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들은 가장 트렌디한 음악을 중심으로 인기 순위를 정하고 1위에 트로피를 안긴다.

포맷이 그렇다보니 요즘 우리나라 가요의 주도권을 지닌 아이돌그룹 혹은 그 또래의 젊은 가수 위주로 출연자가 결정되고, 음악도 가장 유행에 민감하며, 그래서 주 시청층은 10대다. 어른들과 달리 스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성원이 열정적인 10대이므로 순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1970~90년대 소위 밤무대라고 하는 나이트클럽이 성행일 때 이 방송사의 인기순위는 매우 중요했다. 따로 가요 혹은 가수의 인기순위 차트가 없던 시절 지상파 방송사의 간판 음악 프로그램이 주는 1위는 그야말로 인기의 증명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곧바로 밤무대의 개런티로 직결됐기에 가수들의 이 프로그램에 대한 집착은 굉장했다. 빌보드 같은 공신력 있는 페이퍼 차트를 접할 수 없는 대중 역시 이 프로그램의 순위를 대체로 인정하고 그런 기류 형성에 이바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매기는 순위의 공정성은 론칭 이래 지금까지 논란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닌다. 왜냐면 빌보드는 RIAA라는 공식 음반판매 집계 기관의 정확한 수치를 근거로 대중음악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차트를 만들지만 우리나라 방송사 프로그램은 그 태생적 한계 탓에 담당 PD를 비롯한 제작진의 사견이 조금이라도 개입할 수밖에 없고 설령 나름의 기준을 정하더라도 대중가요의 특성상 판매량 등 눈으로 확인되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한 모든 시청자가 납득할 완벽에 가까운 순위는 만들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이란 것은 권위와 희귀성을 담보로 할 때 그 값어치가 빛나기 마련이다. 개나 소나 다 차고 다니는 금메달이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생계를 마다하고 수 년에서 수십 년 동안 몸을 혹사할 이유가 없다.

예전에 국내에 방송사라곤 KBS와 MBC 딱 두 군데였을 때 매년 말에 주는 ‘가수상’ 타이틀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가수로서의 인기나 가창력이 거론될 때마다 김흥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10대 가수 출신’을 들먹이는 것은 그에 기인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백 개의 채널이 공존하고 오프라인 시장이 무너진 디지털 시대에 1주일 간의 순위를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단 7일 동안 활동한 것을 순위로 매겨서, 혹은 가수 당사자가 그것을 평가받아 트로피를 타는 게 도대체 뭐 그리 대단한 값어치가 있을까? 그것보단 국외로 나가 콘서트를 열어 몇 만 명을 동원했느니, 현지 언론이 난리가 났느니 하는 게 훨씬 더 명예롭고 자랑스러울 판에.

지지난주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한 엑소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지난주는 상반기 결산으로 순위가 없었다. ‘음악중심’과 ‘인기가요’도 각각 엑소와 빅뱅을 1위로 뽑았지만 두 팀은 똑같이 방송에 안 나왔다. 가수들이 이 어쭙잖은 1주일 순위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 프로그램의 지난 주 시청률은 각각 2.4% 2.3% 2.6%였다. 이른바 ‘애국가 시청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에 칼같은 3사가 폐지를 고려하지 않고 강행군하고 있는 배경은 ‘가요 프로그램이라는 명맥을 유지하기 위함, 혹은 가요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함’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주진 못 한다.

인기리에 종영된 KBS2 ‘프로듀사’에서 톱가수 신디(아이유)는 모든 톱스타들이 출연을 꺼리는 ‘1박2일’에 출연을 결심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능국과 연예기획사 간의 보이지 않는 복잡한 먹이사슬 관계가 존재한다.

신디의 매니저 변 대표 입장에선 ‘1박2일’이건 ‘뮤직뱅크’건 아쉬울 게 없고, 담당 PD 입장에선 변 대표 앞에서 ‘을’이 돼야 하지만, 신디의 인기가 영원하다는 보장 없고, 그래서 다른 신인도 양성해야 하는 변 대표가 마냥 ‘갑질’만 해댈 순 없다.

그래서 변 대표나 신디는 지금은 신입사원의 AD지만 언젠가 스타 예능PD로 성장할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는 백승찬(김수현)을 함부로 대하지 못 하는 것이다.

세 음악 프로그램은 허접한 시청률 탓에 당장에 눈앞의 큰 광고수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명분과 실리의 두 마리 토끼를 갖다 바친다.

지상파 방송사로서 처참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정통 가요 프로그램을 끝가지 지킨다. 그건 가요발전과 더불어 가요를 보고 들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위안을 찾고자 하는 대중을 위한 문화적 배려다. 이게 얼마나 훌륭한 명분인가?

요즘은 아이돌그룹 출신의 배우와 예능인 전성시대다. 즉, 가요 프로그램은 당장 몇 주나 몇 달 뒤에 현장에 투입해 써먹을 배우 혹은 예능인의 인큐베이터 혹은 리트머스다.

캐스팅을 위해선 오디션이 필수다. 하지만 이 음악 프로그램이 있으므로 그런 절차가 생략된다. 이건 다소 위태로워 보이는 휘장걸음이지만 사실 엄청나게 포실한 내실 다지기다.

그렇다면 별 의미도(제작진) 명예도(출연진) 없어 보이는 순위에 집착하는 이유가 서서히 드러난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안 오른다고 시청자를 자극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태고 도태로 이어진다.

즉 시청률의 큰 반등은 없더라도 열성도와 충성도를 높임으로써 프로그램을 향한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해야 자체의 생명력과 존재감이 빛나 보인다. 그건 프로그램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이고 존재의 이유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선 청소년들을 흥분시켜야 하고 그 수단으로선 순위가 가장 쉽고 효과적이다. 채점 방식 안에서 시청자 투표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그 증거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MBC 화면캡처]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