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무섭고 슬픈 웰메이드 '잔혹동화' [시네프리뷰]
입력 2015. 07.03. 08:40:56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직접 각본까지 쓴 판타지 호러 영화 ‘손님’으로 데뷔하는 김광태 감독은 우리 토속 민간신앙의 날짜에 따라 4방향으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생활을 방해하는 귀신인 ‘손’과 독일의 민간 전설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버무려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건 영화를 보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호러라고 가볍게 여름에 피서용으로 즐기겠다고 표를 끊었다간 깜짝 놀랄 것이다. 그만큼 우리네 삶과 밀접한 깊은 뜻을 숨기고 있는 썩 괜찮은 수작이다.

때는 1950년대 한국전쟁이 막 끝난 지점이다. 떠돌이 악사 우룡(류승룡)은 전쟁 중에 아내를 잃고 10살 아들 영남(구승현)을 데리고 집도 절도 없이 사는 떠돌이 악사이자 각종 약을 잘 만드는 재주꾼이다.

그는 영남의 폐결핵을 치료해주기 위해 서울에 가고자 이동하던 중 지치자 지도에조차 나오지 않는 산 속 깊은 마을로 흘러들어간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시끄러운 바깥세상과 달리 이 마을은 늙은 촌장(이성민)의 강력한 지도력 아래 전쟁의 피해에서 비껴나 평화롭고 풍족하게 사는 듯하지만 어딘지 어둡다.

감독은 그런 은밀한 비밀과 사람들 간의 갈등을 원근법에 의한 블러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처음엔 하룻밤만 자고 떠나려던 우룡은 마을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고 약도 만들어 주면서 체류기간을 늘리게 되고,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이 고양이까지 잡아먹을 정도로 흉포해진 쥐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피리로 귀 달린 동물을 부리는 재주가 있는 그는 이 사실을 마을 사람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밝히고, 촌장은 쥐를 없애준다면 영남의 치료비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우룡은 쥐가 싫어하는 약재와 좋아하는 약재를 마을과 마을에서 떨어진 동굴에 뿌린 뒤 연기를 피우고 피리를 불어 쥐떼를 동굴 안으로 유인한 뒤 입구를 막아버린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서로 쉬쉬해야 하는 원인은 쥐가 아니라 이 마을에 흘러 들어와 정착해 생존할 수 있게 된 그들만의 비밀에 있었다.

촌장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젊은 과부 청주댁(천우희)을 신내림을 받은 무당으로 위장해 우매한 마을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청주댁은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인 미숙을 불러주면서 다정하고 따뜻하며 애정 어린 손길로 어루만져주는 우룡과 영남에게 빠져든다.

어느덧 사랑을 느낀 우룡과 미숙은 함께 마을을 떠나려 하지만 촌장이 이를 허락할 리 없다. 그리고 마을엔 음산한 기운이 맴돌며 커다란 비극을 예고한다.

여기서 ‘손님’은 이 마을에 찾아온 우룡을 가리키지만 정작 그 마을에 정착한 현재의 주민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불어 주민을 찾아올 그 어떤 ‘손’을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감독은 ‘약속’을 얘기하고자 했다고 공개했다. 그런데 이 감독은 참으로 영민하다. 그 약속은 그냥 영화 속 갈등의 원인인 사례금의 약속같은 단순한 믿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촌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뭔가 숨기거나 아니면 못 배운 그들의 우둔함을 이용해 혹세무민하며 정권을 유지하고, 그의 아들 남수(이준)는 차기대권을 꿈꾸며 아버지에게 절대복종하면서도 마을 사람들에겐 폭력적인 면을 보인다. 심지어 촌장은 우룡에게 전쟁이 끝난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수차례 협박한다. 어디선가 많이 봐온 장면이다. 우룡은 촌장에게 영남을 소개할 때 "호남에서 태어났지만 이름은 영남"이라고 말한다.

처음에 우룡을 경계하고 이단시 했던 마을 사람들은 한없이 착하고 인간적이며 친절한데다 재주까지 많은 우룡에게 마음을 열어 간다.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촌장과 아들은 우룡을 간첩으로 몰아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우룡에게 적개심과 분노를 느끼게끔 만든다. 메카시즘의 조롱이다.

자, 이쯤 되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감독의 철학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영화 속 배경은 1950년대지만 왠지 그 시대만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닌 듯하다.

연기하던 미숙에게 큰 변화가 오자 감독은 오블리크 앵글로 혼돈을 암시하는가 하면 핸드헬드로 갈등구조를 표현하는 한편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 클로즈업 샷, 롱 샷, 익스트림 롱 샷 등의 다양한 카메라 워크로 인간의 더러운 욕망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감독은 이데올로기에 천착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약속과 서민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웅변한다. 촌장은 ‘살기 위해 죽였다’고 떠든다.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의 행복을 빼앗는 게 그게 인간일까? 우룡은 ‘난 귀 달린 짐승을 다루는 재주가 있다’고 말하고, 한 마을 남자는 ‘우리도 짐승인가?’라고 자문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류승룡과 이성민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만족도를 느낄 수 있다. 때론 인자한 표정을 짓다가도 서늘하게 눈동자가 변해가는 이성민의 연기는 이제 경지에 올랐다. 류승룡의 연기력이야 지금까지 많이 알려졌지만 순박했던 한 아버지에서 정반대의 캐릭터로 변해가는 변화를 소화해낸 캐릭터의 변모는 압권이다.

특히 관객들은 천우희를 재평가할 것이다. 보다 더 예쁘게 포장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게 여배우이기 마련인데 그녀는 앞부분에서 진짜 산촌의 아낙 같은 모습으로 훌륭한 변신에 성공하는가 하면 미묘한 심경의 변화와 극적인 감정의 표출을 정말 신들린 무당처럼 연기했다.

다만 이준의 고착화된 이미지가 눈에 거슬린다. 최근 MBC ‘미스터 백’과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보여준 캐릭터가 그대로 이어지는 게 눈엣가시다. 15세 이상 관람 가. 오는 9일 개봉.

사족; 판타지 호러라고 명명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영화는 판타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을 까발린다. 그리고 이 영화가 훌륭한 호러인 것은 괴기스럽거나 잔인해서라기보단 내용이 소름 끼칠 만큼 사실에 가까워서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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