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불편한 ‘연평해전’, 더 불편한 ‘소수의견’
입력 2015. 07.07. 10:10:37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관객의 취향이 최우선이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 각자의 개성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영화를 제 돈 내고 골라 보겠다는데 그게 뭐 어떤가?

게다가 이데올로기는 사람이 만든 것이지 신(진짜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이 사람에게 정해주거나 가르친 게 아니다. 하물며 법도 허점이 있는데 이념인들 완벽하랴? 영화는 영화일 뿐 그저 제 주머니 터는 사람들 각자의 입맛에 맞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평해전’과 ‘소수의견’을 바라보는 필자의 입장에선 혓바늘이 돋는 기분이다. ‘연평해전’이 시대를 역행하는 반공영화든, ‘소수의견’이 진보적 메시지를 담고 있든, 그건 오로지 관객이 평가할 몫이지, 평론가나 언론이 굳이 이러쿵저러쿵 잘난 체 해댈 게 아니다. 관객이 바보는 아니다.

그래서 최소한 관객들이 선택할 수준의 노출은 지켜줘야 상도의다.

‘소수의견’은 지난달 24일 개봉돼 4일(이하 영화진흥위원회 기준)까지 3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같은 날 개봉된 ‘연평해전’은 287만 명을 기록하며 올해 개봉된 한국영화중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스물’에 이어 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폼 잡는 평론가나 기자들의 말장난은 무시하고 순수하게 일반 관객들의 평가만 보자면 ‘소수의견’은 ‘연평해전’과 마찬가지로 9점대의 높은 평점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수는 참담하다.

이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구조 탓이다.

‘연평해전’이 1013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시작했지만 ‘소수의견’은 389개밖에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 한 채 애초부터 불리한 경주를 시작했다. 그 다음주 ‘연평해전’은 894개의 상영관을 지켰지만 ‘소수의견’은 194개로 대폭 축소됐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유치한 논리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극장주에게 자선적 문화사업을 강요할 순 없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를 거는 게 원칙이라는 데 반박할 의사는 없다.

그런데 만약 그게 교조적 논리라면 감독 제작자 투자배급사 등은 오로지 투자 대비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영화만 찍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수의견’은 원래 CJ E&M이 투자 배급사로 나섰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중도에 포기했고 충무로 토종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가 그 ‘고아’를 맡아 성인으로 키우겠다고 나선 덕에 다 찍고 나서 2년이나 지난 뒤에야 극장에 내걸릴 수 있었다.

영화에서 배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대중도 다 안다. CJ NEW 롯데 쇼박스 등 이른바 국내 4대 배급사가 투자 배급을 맡아주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이미 흥행의 십중팔구를 보장하고 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것도 안다.

그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드라마의 편성을 보장하느냐, 그렇지 않으냐는 차원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

‘연평해전’은 재벌그룹 계열사도 아니고 그들보다 후발주자이지만 이미 1000만 관객동원이 익숙할 정도로 기존의 재벌계열 3대 배급사를 능가하는 파워를 지닌 NEW가 배급하고 있다.

극장 입장에선 각자의 판단에 따라 돈 되는 영화만 걸면 되겠지만 그게 압도적이지 않고 도토리 키 재기일 땐 당연히 거대 배급사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게다가 힘 있는 배급사일수록 흥행의 확률이 높고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그런 커넥션은 이익과 직결된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이병헌 때문에 국내 배급사들이 눈치를 봤다. 그래서 원래 얘기가 있던 배급사가 손을 떼고 롯데가 ‘총대’를 메고 나서면서 원래 스케줄대로 국내에서 개봉될 수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개봉 직후 흥행 1위를 내달리고 있다. 만약 4대 배급사가 아닌, 군소 배급사가 맡았다면 박스오피스 1위를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역발상을 ‘연평해전’과 ‘소수의견’에 대입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소수의견’을 예정대로 CJ에서 배급했고, ‘연평해전’을 작은 배급사에서 담당했다면, 그래서 상영관수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면 흥행결과는 어땠을까?

‘국제시장’ ‘연평해전’과 ‘변호인’ ‘소수의견’은 이데올로기 논란을 야기한 대표적인 영화다. ‘국제시장’은 나이 먹은 보수우익의 ‘아버지는 용감했다’는 식의 케케묵은 과거의 찬양이고, ‘연평해전’ 역시 오래전으로 회귀한 반공영화란 진보 진영의 비난을 받았다.

‘변호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각별하게 좋아하는 이른바 ‘노빠’들의 행진곡이고, ‘소수의견’은 보수정권에 반발하는 좌파세력의 선동적 영화라는 보수 진영의 계란을 맞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 이렇게 극명하게 좌우로 나누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독일 여자 감독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는 1930년대 히틀러와 나치를 찬양한 대표적인 영화로서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영화사에서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영상미로 시대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보다 더 나치즘을 고양시킨 영화로 기록된 리펜슈탈 감독의 ‘올림피아’는 독일인을 넘어서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노래한 굉장히 이기적인 영화이면서도 영화적 값어치로선 ‘의지의 승리’에 못지않다고 영화사에 남아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선 당시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가 꽤 비중 있게 그려져 우리에게도 의미가 좀 각별하다.

영화 속에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는 감독의 몫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감독은 애써 자신의 메시지나 철학을 쉽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눈치 빠른 관객이 알아채면 흐뭇하고, 모른다면 자신만의 지적인 자부심에 뿌듯하다. 그뿐이다.

감독이 찍어놓은 영상이나 대사를 어떻게 해석할지 역시 오로지 관객의 권리다. ‘연평해전’이 우익영화건 ‘소수의견’이 좌익영화건 그건 그냥 관객이 느끼고 판단할 노릇이지 그걸 다른 관객에게 억지로 주입할 교육적 수단이나 목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영화가 골고루 관객에게 노출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그런 다음 개봉 한 주 이상 지난 뒤 관객의 반응에 따라 극장이 최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스크린 배분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문화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모든 창작자의 작가주의에 대한 길을 열어주며, 그걸 관객들이 각자 선택할 수 있게끔 지식과 휴식의 기회를 최대한 열어주는 건강한 사회고 국가로 가는 지름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운영된다고 했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도 존중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이 최근 기존 법을 깨고 모든 주에서의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은 소수성애자들에 대한 의견 존중 차원이다. 그래서 ‘연평해전’의 관객보다 소수인 ‘소수의견’을 보고 싶은 관객이 이 영화를 접할 기회는 최소한 보장돼야 하는 게 민주주의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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