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썸머 나잇’ 웃으면서 아픈 구포세대의 현주소 [시네프리뷰]
입력 2015. 07.09. 08:45:22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영화 ‘쓰리 썸머 나잇’(김상진 연출)이 부산 해운대를 싸구려 욕망의 해방구로 묘사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판단할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유고 풍자다.

주인공은 19살의 고교생 차명석(김동욱), 구달수(임원희), 왕해구(손호준)다. 세 명은 정의감에 불타 여고생 지영(류현경)을 인질로 삼아 달아나던 탈옥수 마기동(윤제문)을 붙잡아 뉴스를 장식한다. 그리고 장래의 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명석은 “슈퍼 히어로”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이 영화의 주제의 절반이 담겨져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훌륭한 사람을 꿈꾼다. 가난하던 50년 전 대한민국 소년들의 꿈의 절반은 대통령이었다. 풍요롭다는 지금 고교생 대학생의 꿈은 정규직이다.

12년 후 명석은 지영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자랐다. 지영은 나름대로 잘나가는 변호사지만 명석은 아직도 그녀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며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많이 부족한 남자다.

달수는 컴퓨터 애프터서비스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며 매일 스트레스를 달고 살지만, 자그마한 디지털 카메라에 집착하는가 하면 한 인기 걸그룹에 미쳐 그들을 쫓아다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산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해구는 병원의 ‘갑’에게 만날 치이며 살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는 정력제를 판매하면서도 정작 여자친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발기불능의 콤플렉스를 안고 산다. 다 스트레스 탓이다.

지영은 시험준비를 하는 명석을 불러내 술을 마시는 두 친구가 못마땅해 어느 날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내 따끔하게 혼내준 뒤 사라진다. 그리고 세 친구는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다 취기에 해운대로 가자고 외치곤 지영이 명석에게 맡긴 외제 승용차를 타고 대리기사를 부른다. 달리는 차안에서 그들은 휴대전화를 차 밖으로 던져버린다. 현대문명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바로 휴대전화다.

술김에 해운대에 도착한 세 친구가 맞은 아침은 참담하다. 지영의 차가 처참하게 바뀐 것. 그럼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해운대에서의 ‘뜨거운 하룻밤’을 즐기자는 의욕을 불태운다.

한편 부산 경찰은 부산 유흥가를 중심으로 은밀하게 퍼지기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는 신종 마약을 단속하기 위해 특별 수사팀을 꾸리고 해운대로 형사들을 보낸다.

그 마약사범의 우두머리는 바로 기동. 그는 한 폭력조직의 보스에게 이 마약을 대량판매하기로 약속하고 먼저 돈을 받은 뒤 해운대로 부하들을 보내 마약을 전달한다. 하지만 부하들은 실수로 명석 일행을 접선자로 착각하고 잘못 건넨다.

세 친구는 지영이 명석에게 건넨 신용카드로 물 쓰듯 돈을 쓰고 휴대전화 메시지로 이를 감지한 지영은 명석을 잡기 위해 해운대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날 밤 술에 만취한 세 친구는 뜨거운 ‘원 나잇 스탠드’를 위해 각개전투를 하기로 약속하고,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역사’를 이루지만 다음날 일어난 그들은 기동에게 잡혀 있다.

그리고 기동은 지영마저 잡아 그들 앞에 보여주며 약이 든 가방을 가져오지 않으면 지영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뒤 그들을 풀어준다.

이후부터 이 영화는 마치 어지러운 실타래처럼 엉킨 세 친구의 지난밤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집중하며 추리물의 형태를 취한다. 명석은 간밤에 모처럼 지영과 뜨거운 밤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고, 달수는 평소 흠모해온 걸그룹 멤버와 황홀한 추억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으며, 해구는 모처럼 자신을 흥분케 한 횟집 사장 여동생과 그렇게 청춘을 되찾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사대는 이들 세 명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사진을 배포한 뒤 검거에 나선다.

영화는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빠른 속도로 전개되며 컷 전환에 스피드를 낸다. 하지만 다소 산만하고 자극적이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최대한 배제한 채 젊은이들의 인스턴트 식 감성에 맞추려 하지만 오히려 불친절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 차린 뷔페에 연결성이 잘 안 보인다.

김상진 감독은 우리나라 감독 중 코미디에서 단연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깡패수업’으로 누아르에서 녹록치 않은 실력을 보여준 김 감독은 ‘주유소 습격 사건’으로 대중이 원하는 웃음이 뭔지 잘 아는 영민함을 보여준 뒤 ‘신라의 달밤’에서 그 실력의 절정을 보여줬다.

그런데 ‘쓰리 썸머 나잇’은 감독의 진화와 노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일단 영화는 재미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이 한여름의 더위를 잊고 마음껏 웃기에 아깝지 않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나 ‘쥬라기 월드’를 본 뒤 후회할 거라면 이 영화가 ‘딱’이다.

‘주유소 습격 사건’이나 ‘신라의 달밤’이 상큼한 사이다였다면 ‘쓰리 썸머 나잇’은 마치 칵테일같다. 젊은이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뒤섞었지만 상큼한 맛은 덜하고 에너지음료수를 마신 것처럼 어지럽다. 차라리 예전의 김상진 식으로 ‘단순 무식’한 듯하지만 담백한 정서에 따라 기성세대에 눈높이를 맞췄다면 오히려 더 깔끔했으리란 아쉬움을 던져준다.

하지만 감독의 진화는 분명한 이 영화의 미덕이다.

찌질하기 그지없는 세 친구의 현주소와 그들의 일탈은 분명히 감독의 연출의 의도가 한층 깊어졌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콜센터에서 고객의 억지와 욕설에 응대하는 달수는 현재의 모든 ‘미생’을 대변한다. 달수는 고객이 막말을 하건 막무가내건 매뉴얼에 충실하지만 할 말은 한다. 그리곤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한다.

이제 갓 서른임에도 발기불능의 고민을 안고 있는 해구 역시 이 시대의 ‘갑’과 ‘을’의 처참한 현실을 날것으로 그려낸다.

명석은 말이 사법고시 준비생이지 두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루저’다. 여자친구에게 철저하게 빌붙어 살고, 사랑 없는 결혼을 결심한 뒤 그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명석은 연애도 결혼도 두려운 ‘구포세대’의 또 다른 ‘아수라 백작’의 얼굴이다.

감독의 재치는 세 친구의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명석은 결코 명석하지 않고, 고객으로부터 ‘오달수’로 오해받는 구달수는 ‘올드 보이’의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자’는 좌우명으로 사는 주인공 오대수(최민식)를 패러디했다. 해구는 정력의 대명사라는 물개지만 영화 속 해구는 발기불능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지만 뜻있는 부모나 지도자라면 보게 해도 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까발려야 한다. 15일 개봉.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포스터]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