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복면가왕’, 이 요물같은
- 입력 2015. 07.13. 10:43:38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이쯤 되면 시청자를 ‘들었다 놨다’하는 요물이다. 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이 방송되는 일요일 초저녁과 다음날은 포털사이트와 각종 인터넷 연예매체가 ‘복면가왕’에 출연한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에피소드로 도배되다시피 하니 그런 표현이 무리는 아니다.
시청률 전문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2일 오후 방송된 ‘일밤’(‘복면가왕’ ‘진짜사나이’)의 시청률은 13.5%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5일 11.4%보다 2.1%포인트 상승한 수치. ‘일밤’은 ‘복면가왕’의 인기를 등에 업고 꾸준히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데 13%를 돌파한 것은 지난해 9월 14일의 13.9% 이후 처음이라 그 의의가 더욱 각별하다.
물론 ‘해피선데이’도 17.1%를, ‘일요일이 좋다’도 8.1%를 각각 기록하며 상승했지만 분위기 면에서는 확실히 ‘복면가왕’ 혼자서 ‘원 맨 쇼’를 펼치는 ‘일밤’이 돋보인다.
지난 방송 역시 대반전을 그렸다. NRG에서 고작 내레이션으로 유명했으며, 최근엔 뚱뚱해야 하는 이유(행여 바람피울지나 않을까 아내가 걱정해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을 확 빼서 예전의 ‘꽃미모’를 되찾음으로써 화제가 될 따름인 노유민이 반전드라마의 첫 장을 열었다. 의외로 그는 록의 감성을 기본으로 한 시원한 창법으로 시청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노래왕 퉁키’와 ‘냉혈인간 사이보그’는 등장부터 심상찮은 포스를 풍기더니 ‘역시나’라고 무릎을 탁 칠 만한 무대를 꾸몄다. 듀엣곡으로 도시아이들의 ‘달빛 창가에서’를 선곡한 이들은 노래의 펑키한 그루브를 충분히 타면서 솔로와 듀엣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가운데 청중까지 쥐락펴락하며 녹화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왜 ‘복면가왕’이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보다 훌륭한 가요예능 프로그램인지 확실하게 입증했다.
판정단의 평가로 복면을 벗게 된 사이보그는 판정단을 경악케 했다. 컬투 김태균이었던 것.
여기에서 그치면 ‘복면가왕’이 아니다. 다음은 ‘죠스가 나타났다’와 ‘비 내리는 호남선’의 대결. 가면으로 가렸지만 두 참가자의 비주얼은 훌륭했다. 판정단은 아이돌 멤버를 점쳤다. 게다가 죠스는 드러내놓고 호남선에게 호감을 드러내며 그녀가 보통 매력의 소유자가 아님을 암시했다. 죠스의 가창력은 나무랄 데 없었고 호남선 역시 가수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호남선이 가면을 벗어야 했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뉴스를 자주 진행해온 김소영 MBC 아나운서였다.
그녀는 TV ‘뉴스24’의 앵커와 라디오 ‘잠 못 드는 이유, 김소영입니다’의 DJ를 맡고 있다. MBC 뉴스의 간판 아나운서 중 한 명인지라 평소 점잖은 정장차림에 굳은 표정으로 진지한 모습만 보였던 그녀는 이날 짧은 치마에 짙은 화장의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예능 첫 나들이라는 그녀는 다소 상기된 목소리와 달뜬 얼굴을 해 더욱 매력적으로 비쳤다.
‘복면가왕’의 기획의 시발은 사실 단순하다. 종합편성채널 JTBC ‘히든 싱어’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오로지 편견에서 벗어난 실력으로 평가받자는 것이었다.
더구나 요즘은 외모와 인기지수로 순위를 거저먹거나 드라마와 영화에 정통파 배우에 비해 비교적 순조롭게 진출하는 아이돌이 대세라 이런 기획은 단순하고 커닝의 여지가 살짝 엿보였지만 어쨌든 시청자들은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알고 보면 ‘복면가왕’은 그 단순한 ‘가창력의 본질’ 하나로만 평가할 수 없는 ‘어마무시’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가면’이라는 아주 단순한 소품이 만들어낸다.
형식은 복면가수 두 명이 듀엣곡으로 겨룬 뒤 준결승 진출을 가리고, 그렇게 준결승에 오른 3명이 우열을 가려 최종적으로 가왕과 겨뤄 몇 대 가왕을 뽑는다는 것이다. 그 점수는 연예인과 일반인으로 구성된 99명의 판정단이 매긴다.
죠스와 호남선의 대결에서 보듯 연예인 판정단의 개그맨 3명은 별다른 생각 없이 호남선에게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이건 대세에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바로 이 프로그램만이 지닌 재미다.
복면가수들의 경연이 끝나면 연예인 판정단은 그들의 노래 실력과 몸매 등의 외모로 나이와 직업 등을 예상하는 가운데 질문도 던지면서 ‘포위망’을 좁혀간다. 여기에 더해 MC 김성주는 어릴 적 사진 등의 힌트를 던져주며 추리를 돕는 듯하지만 이건 추리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몰아감으로써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미끼’다. 판정단과 시청자는 더욱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따름이다.
여기에 더해 김성주는 복면가수에게 장기자랑까지 시킨다. 정말 노래 오락 추리 등을 적절하게 안배한 재치와 묘수가 돋보이는 구성이다.
물론 탈락한 복면가수의 정체를 가리기까지 조금 지루한 면이 없는 게 아니다. 시청자들의 안달증세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지만 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유치하단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예능이다. 예능에 뭔 점잖은 예의와 질서와 배려가 필요할까? 시청자 출연자 제작진 등이 불편하지 않을 수준의 극대화 장치가 나쁘지만은 않다.
그렇게 이 프로그램은 ‘가면’ ‘평등’ ‘반전’ 등으로 주는 ‘깨알재미’와 경이로운 재미가 최대치다.
가면은 시청자에게만 재미를 주는 게 아니다. 김소영 아나운서가 얘기했듯 예능 첫 나들이인 그녀는 매우 떨렸지만 이 가면 덕에 가창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가면 없이 평소 모습대로 아나운서로서 무대에 섰다면 그런 ‘끼’는 충분히 표출될 수 없었고, 그날만큼의 가창력 역시 발휘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경연자에게 ‘릴렉스’한 상태에서 마음껏 경연을 즐길 권리와 즐기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건 이미 ‘나는 가수다’를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수십 년 노래를 불러온 참가자들은 ‘처음으로 떨린다’고 입을 모으곤 했다. 하물며 본업이 가수간 아닌 김소영이나 김태균의 경우 맨 얼굴로 가수들과 실력을 겨룬다고 상상할 때 그건 승패 문제를 떠나 자신이 가진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지의 우려로 수준이 떨어진다.
그리고 가면이 갖다 주는 화두이자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평등이다.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서는 순간 기존의 지명도도, 인기도도, 외모도, 직업조차도 모두 백지상태가 돼 모든 경연자가 평등이란 위치를 갖게 된다.
마지막 잘 만든 공포영화와 다름없는 반전이 주는 전율과 소름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강점이자 평등과 이어지는 메시지다. 지금까지 비 가수 직업군은 언감생심 가수와 노래대결을 벌일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수가 제일 잘 하는 게 노래니까.
그런데 의외로 재야의 고수가 많았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보듯 신보라는 노래를, 김기리는 랩을, 김희원은 창을 각각 잘 한다. 아직 그들이 ‘복면가왕’에 출연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가수집단 외의 뛰어난 가창자들이 많다는 증거다.
그건 은근한 가수들을 향한 압박이다. 가수가 아님에도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이돌 중에 노래를 못 부르는 멤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조롱이고 훈계다.
만약 아이돌 중에 노래 실력이 처지는 멤버와 개그맨 김재욱에게 가면을 씌우고 경연을 시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게 ‘복면가왕’이 가진 무궁무진한 소재개발의 여지와 그로 인해 발생할 끝없는 재미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MBC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