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오직 재미에 충실한 상업대작 [시네프리뷰]
입력 2015. 07.14. 13:55:31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영화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 최동훈 감독의 필모그래피다. 이쯤 되면 이름만 믿고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임이 확실하다. 그런 그가 무려 180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신작 ‘암살’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배우도 화려하다.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뿐만 아니라 오달수 조진웅 최덕문 등을 비롯해 특별출연의 조승우까지 연기파들이 열연을 펼친다.

1911년 독립군 염석진(이정재)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오히려 그로 하여금 조선총독부 총독을 구함으로써 출세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일본군에 쫓긴 석진은 인국의 아내(진경)의 도움을 받아 다락에 숨게 된다. 아내는 노골적으로 인국을 비난한 뒤 아직 젖도 안 뗀 쌍둥이 딸들을 데리고 석진과 함께 탈출하지만 인국의 명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죽는다.

세월이 흘러 1930년대 석진은 상하이에 마련된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이 돼있다. . 양대 독립운동 세력인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의열단의 김원봉(조승우) 단장은 상하이에서 만나 경성에서 조선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와 강인국을 암살하기로 결의하고 석진을 부른다.

석진이 작전에 투입하는 요원은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전문가 황덕삼(최덕문)이다. 그런데 이 첩보를 접수한 일본군은 세 요원을 처치하기 위해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영감(오달수)을 고용한다.

상하이 한 호텔에서 옥윤과 하와이 피스톨이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되고 그 인연은 나중에 큰 사연이 된다. 하와이 피스톨이 작전 지역인 경성에 나타나고 그에 의해 요원들의 암살작전은 뒤엉키게 된다.

역시 감독은 이 수많은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각자 뚜렷하게 살리는 데 강점을 보인다. 철저하게 양면성의 생존본능을 보이는 석진, 돈을 안 주면 애국이고 뭐고 없다더니 나중에 가장 애국적인 인물로 변해가는 속사포는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다.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상관도 쏴 죽일 정도로 다혈질인 옥윤의 투철한 애국정신은 확실하게 교훈을 준다. 하지만 돈이 최고의 가치관인 하와이 피스톨이 단 한 번 본 옥윤에게 반해 한 순간에 애국자로 변모하는 설정은 설득력도 당위성도 부족하다.

그리고 최근 연기력이 일취월장해 이번에 처음으로 각별한 도전에 나서는 전지현의 캐릭터를 풀어내는 솜씨와 소화력은 각기 다른 쪽에서 판이해 감탄과 실망을 동시에 안겨준다.

영화의 스케일은 확실하게 커서 눈이 호화롭다. 당시의 상하이와 경성의 도시 풍경부터 열차까지 미술과 소품 등은 물론 미장센까지 심혈을 기울인 성의가 한껏 묻어난다.

하지만 이 훌륭한 외형은 천편일률적이다 못해 반전까지 쉬운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에 묻힌다. 감독은 이 영화의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작가주의에 상업적 의도가 스며들 때 작품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잭 스나이더를 뛰어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런 식의 기대는 가질 법하지만 한계는 있었다.

다만 어지러운 현실에 교묘하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애국정신과 명분에 대한 감독의 웅변은 돋보인다. 하와이 피스톨이 옥윤에게 묻는다. “그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됩니까”라고. 그러자 옥윤은 “모르죠, 그렇지만 일본에게 알려줘야죠.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고 답한다.

하와이 피스톨은 옥윤에게 말한다. 예전에 7명의 매국노의 아들들이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온 뒤 각자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죽이고 뿔뿔이 흩어졌다고. 그리고 그는 그 트라우마로 독립운동가도 매국노도 아닌, 무국적의 아나키스트가 돼 오로지 돈만 주면 조선인인건 일본인이건, 매국노건 독립군이건 가리지 않고 죽이는 하와이 피스톨이 된다.

여기까지의 설정도, 한순간에 그가 애국심에 불타는 것도, 나름대로 설득력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동기가 한 번 보고 반한 옥윤에 대한 애틋함에 있다는 게 이 영화의 허점이다. 예전 작품에서 교과서적 메시지가 없는 대신 만듦새만큼은 보장했던 감독은 상업적 의지와 더불어 애국심에 집착하느라 정작 완성도를 놓쳤다.

공교롭게도 각 주인공들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젊었을 때 그 누구보다 다혈질로 조국의 해방을 위해 분노를 불태우던 석진은 일본군에게 잡힌 후 살해 위협에 사시나무처럼 떨며 비겁하거나 치사하더라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살아가고자 하는 이중인간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그건 대표적인 매국노 인국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자신의 매국행위를 비판하는 가족에게 “다 가족과 민족을 위해 한 일”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그리곤 그는 아내를 죽이는 천륜에 대한 배반행위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한다. 그게 다 가족과 민족을 위해서라고.

속사포는 원봉이 불러 암살 임무를 맡기자 돈을 달라고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하와이 피스톨에게 당한 뒤 그는 옥윤 못지않은 투쟁정신과 애국심으로 임무수행에 충실하며 동료들을 구하는 살신성인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덕삼의 입을 통해 외친다. “역사에 이름은 남아야 되지 않겠어?”라고. 그가 절체절명의 순간 오히려 웃으면서 옥윤에게 "대장, 우리 작전 성공한 거죠?"라고 묻는 장면은 가장 압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최근 흥행에 성공한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의 주제와 맞닿아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도 소신을 애국심이란 이음동어로 표현해낸다.

1000만 관객의 ‘도둑들’부터 멀게는 ‘범죄의 재구성’까지 최 감독의 영화가 주는 재미만 찾고자 한다면 충분한 만족을 느낄 만하다. 중간에 여러 군데 웃음을 자아내는 코드도 적절하게 녹아있긴 하지만 최 감독은 유머에 그리 강하지 않고, 새삼스러운 애국정신의 고취는 초반 석진을 롱샷으로 잡는 오블리크 앵글처럼 다소 일그러져 있다.

그건 1달 뒤면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조들이 목숨 걸고 되찾으려 했던 주권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아는지 모르는지 헷갈리는 현실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독립군-일본군 첩자-일본군 간부-한국 경찰 간부 등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설정은 실존인물일 수도 있다. 15살 이상 관람 가. 22일 개봉.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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