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테랑’, 액션은 ‘굿’ 코믹은 ‘음’[시네프리뷰]
- 입력 2015. 07.22. 09:20:34
-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액션키드 류승완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짝패’(2006)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등으로 대표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짝패’는 누가 봐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을 오마주했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파티장에서의 액션 몹신은 브라이드가 야쿠자 여두목 오렌 이시를 이자카야에서 치는 장면이다.
주인공을 맡은 류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의 연기력을 차치하고 액션물로서 이 영화는 엄청난 수작이고 할리우드의 주류세력에 코웃음 치는 악동 타란티노에 대한 존경이다.
하지만 그는 직설화법의 코미디에는 약간의 소질이 있을지 몰라도 B급 유머에 대한 감각은 제로다. '짝패'에서 그가 직접 외친 '이제 전쟁여유' 수준을 지켰어야 좋았다. ‘다찌마와 리’가 중편이었을 땐 나름대로 봐줄 만했지만 장편이 되자 저질 코미디로 전락한다. 물론 감독은 ‘부당거래’로써 바로 실수를 만회한다. 그리고 ‘베를린’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베테랑’은 아쉽게도 극명한 장단점이 공존한다. 어설픈 ‘다찌마와 리’가 앞부분에서 펼쳐지지만 곧 ‘부당거래’로 돌아오고 하이라이트에선 ‘짝패’까지 보여준다.
서울 광역수사대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다혈질이다. 그는 상사이자 둘도 없는 친형과 같은 오팀장(오달수) 홍일점 미스 봉(장윤주) 등과 힘을 합쳐 러시아인이 낀 외제차 사기꾼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대형화물차 운전기사 백 기사(정웅인)의 도움을 받는다.
승리감에 도취된 도철은 매니지먼트사 대표인 후배의 초청으로 자신이 고문이 돼준 드라마 ‘여형사’의 제작기념 파티장에 가서 잘나가는 신진그룹 회장 아들 조태오(유아인) 실장을 만나는데 그에게서 진한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백 기사는 원청업체로부터 밀린 돈도 제대로 못 받은 채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 당하자 전 소장(정만식)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본전도 못 건지자 실질적으로 오 소장을 고용한 태오를 찾아간다.
태오는 마약에 찌들어있고, 후처의 아들이란 핸디캡 때문에 적자인 이복형과 이복누나에게 회사의 지분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처지. 게다가 선천적으로 폭력적이고 안하무인이며 죄의식이 없는 냉혈한이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항의 차 방문한 백 기사를 보곤 오 소장을 부른 뒤 그로 하여금 폭행하게 만든다. 그리고 백 기사는 건물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뒤 코마 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다.
이 소식을 들은 도철은 병문안을 갔다가 백 기사의 아들의 목격담을 듣곤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신진그룹의 힘은 막강했다. 관할 서에선 이미 뇌물과 압력이 감지될 정도로 그의 열정을 방해하는가 하면 태오의 오른팔인 최 상무(유해진)가 거액으로 자신과 아내를 회유하려 든다.
블론디의 ‘Heart Of Glass’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위장수사에 나선 도철과 미스 봉의 힘찬 발걸음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인트로는 썩 좋았지만 범인검거 과정에서 ‘나 어떡해’를 배경으로 뮤직비디오 같은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유머감각은 어색하다.
본격적인 도철과 태오의 대결이 펼쳐지기 전까진 다소 지루하다. 도철의 돌발행동과 이를 저지하려는 듯하다 결국 동조하고 마는 오 팀장까지 설득이 아닌 일방적 명령으로 만류하려던 광역수사대장(천호진)이 갑자기 눈감아주는 변화는 매끄럽지 못하고, 세 사람이 각자의 옛정을 강조하며 우정을 호소하는 설정의 유머 역시 낯이 화끈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1만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한참 남는다. 그건 소신과 의리다.
도철의 아내(진경)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아들과 널브러져 자는 도철이 지겹고, 매번 전세담보대출금에 대한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 게 번거로울 정도로 삶이 척박한 그녀지만 최 상무가 가져온 샤넬 ‘신상’과 그 안에 담긴 5만 원 권 다발을 ‘소 닭 보듯’ 물리치는 장면을 통해 류 감독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
도철의 ‘회사’로 단숨에 내달은 그녀는 도철에게 주먹질을 해대며 “네가 나한테 최소한 쪽팔리게 살게 하진 않겠다고 약속했잖아”라며 그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반어법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울먹이며 외친다. “내가 진짜 쪽팔렸던 게 뭔지 알아? 그건 바로 그 순간 내 맘이 흔들렸다는 거야”라고. 이 정도면 감동을 넘어선 감격이다.
이 영화는 류승완 표 액션이란 포장지만 벗기면 ‘소수의견’이고 ‘극비수사’다. 도철은 태오에게 ‘죄짓고 살지 말라’고 말하고 태오는 도철에게 ‘날 이길 수 있겠어’라고 비웃는다.
오 팀장은 태오를 잡겠다고 미쳐 날뛰는 도철을 제지하며 “너 지금까지 경찰이 재벌을 잡아들인 적 있어? 그건 검찰이 하는 일이지, 경찰이 하는 게 아냐”라고 피맺힌 절규를 쏟아낸다.
‘베를린’에서 ‘돈의 맛’에 잔뜩 취했던 류승완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액션 키드’로 되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첫 장편상업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의 신선한 치기를 되찾았다.
사실 소재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별로 새롭지 않다. 막무가내 형사 도철은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과 닮았고, 태오는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숱하게 봐온 안하무인 재벌 후계자의 전형이다. 그리고 칼이나 총은 물론 돈보다 훨씬 약한 ‘민중의 지팡이’를 휘두르는 게 고작인 형사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재벌가 아들의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싸움 역시 ‘사골국물’같은 설정이다.
권선징악이 당연한 사회질서유지의 근간이고 그게 법으로 지켜지는 게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감독의 자조 섞인 큰 한숨과 더불어 그것을 ‘소신’과 ‘의리’로 이겨내는 일개 형사들의 활약은 답이 뻔히 보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황정민과 유해진이야 믿고 보는 배우지만 유아인의 일취월장한 연기력은 극의 몰입도와 재미를 한껏 살려준다. 2년 전 ‘깡철이’에서 어설픈 연기로 영화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유아인이 아니다. 그건 당연히 류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고, 그래서 유아인의 다음 영화 ‘사도’에 대한 기대를 부풀린다. 15세 이상 관람 가. 내달 5일 개봉.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 사진=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