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모의 테마토크] ‘용팔이’는 돌팔이가 될 것인가?
- 입력 2015. 07.31. 14:37:51
- [시크뉴스 유진모의 테마토크] 내달 5일부터 시작되는 SBS 새 수목드라마 ‘용팔이’가 시작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다.
지난 30일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열린 이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정웅인이 촬영현장을 ‘최악’이라고 표현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
그는 “촬영장에서 스태프를 보면 지나치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매우 미안하다”며 “보통 드라마는 첫 회 방송 전 3~4회 분량의 촬영이 끝나는데 우리는 벌써 라이브 방송이 될 정도”라고 말했다. 또 “상당히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보면 비주얼이나 드라마 내용 모두 퀄리티가 높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황은 정웅인의 발언과 오 PD의 불참뿐만 아니라 공개된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도 포착됐다. 불과 4분짜리 영상을 채우지 못해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그만큼 찍어놓은 게 많이 부족하단 증거다.
제작진의 한 명은 “1회는 다 찍었지만 아직 2회는 그렇지 못하다”며 “3~4회를 동시에 찍고 있으니 이번 주 안으로 4회까지 모두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사전촬영 단계에서 연출자가 교체되는 등 내홍을 겪은 이 드라마의 짜임새가 보장되리란 기대감은 많이 떨어진다. 그 제작진의 증언대로라면 1~2회는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의 스케일이 큰 신이 많다. 남은 며칠간 4회 분량을 짜임새 있게 완성하는 게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드라마는 한신병원 일반외과 레지던트 3년차 김태현(29, 주원)과 이 병원 12층 제한구역에 장기입원 중인 한신그룹 상속서열 1위 한여진(30, 김태희)의 사랑을 소재로 꽤나 묵직한 사회적 주제를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태현은 배경은 내세울 게 없지만 나름대로 실력은 갖춰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조직폭력배들을 불법으로 치료해주면서 돈을 챙기고 있다. 그런 그가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자 병원 간부에 의해 위기에서 탈출하지만 여진을 돌보라는 임무를 부여받으면서 복잡한 일에 꼬이게 된다.
제작진은 시청자의 수준이 꽤 높아진 점을 간과한 듯하다. 요즘 미니시리즈에 회당 수억 원씩의 제작비를 쏟아 붓는 이유는 상향조정된 시청자의 눈높이 때문이다. 게다가 플랫폼의 다변화로 지상파 방송사가 더 이상 어드밴티지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각 플랫폼의 드라마의 수준이 동반상승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KBS와 MBC 양대 방송사가 독식하던 시절 방송사 내 스튜디오에서 ‘뚝딱’ 가내수공업 식으로 드라마를 마구 찍어대던 시절에야 ‘생방송’ 수준의 제작방식이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미 드라마에 영화제작 시스템이 도입된 지 오래다.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원래의 시놉시스나 대본을 수정해야 하는 드라마의 특성상 완벽한 사전제작은 불가능할지라도 20회 기준 4회 이상은 튼실하게 찍어놓고 방송을 시작해 시청자의 요구를 기준해 전체의 틀을 만드는 게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방송’이란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게 드라마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보수에 시달리는 스태프는 물론 작품에 몰입해야 하는 배우들의 불만도 크다. 충분한 분량의 대본을 확보해야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작진과 호흡을 잘 맞춰 질 높은 드라마를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긴다면 재미도 완성도도 모두 놓치기 마련이다. 드라마는 제작사 입장에선 편성이 절반인지 몰라도 시청자 입장에선 재미가 우선이다. ‘생방송’은 쇼는 재미있을지 몰라도 드라마는 다르다.
왜 영화가 시나리오 한 권 만드는 데 수년씩 걸리고 프리프로덕션만 수개월씩 걸리는지 그리고 후반작업만 해도 3개월이 기본인지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한 회당 1시간이 넘는 드라마를 일주일에 2편씩 내보내야 하는 현실에서 오직 시간만 계산한다면 일주일에 영화 한 편씩 찍어내는 셈이다. 영화는 시나리오 집필 단계를 자르더라도 프리프러덕션부터 극장에 내걸리기까지 최소한 1년은 걸린다.
정웅인은 20년 경력의 이른바 산전수전공중전 등을 다 치른 베테랑이다.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최악’이란 표현을 썼을 리 없다. 그건 작가나 제작진을 향한 불만의 토로다.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정웅인 같은 중견배우들이 작품에 꼭 필요한 이유는 젊은 주인공들의 부족한 연기력과 표현력을 보완해주고 길을 잡아주는 길라잡이로서 기둥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 기둥뿌리가 드라마의 시작도 전에 언론을 향해 ‘최악’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그동안 50편에 가까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 중에서 현장 사정이 가장 나쁘다는 의미로의 해석이 가능하다. 오죽하면 스태프에게 미안할 정도였을까?
그는 이 드라마의 책임자가 아니다. 그냥 주조연일 따름이다. 그런 그가 스태프에게 미안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미안하다고 했을 땐 열악한 속사정이 어떤지 가늠이 가능하다.
‘첫 단추’는 매우 중요하다.
[시크뉴스 유진모 편집국장 ybacchus@naver.com/ 사진=권광일 기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