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 연기를 탐닉하는 배우 “작가였기에 가능했던” [인터뷰]
입력 2015. 10.20. 17:25:50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다중인격이 정신병리학에서는 질환으로 분류되지만, 배우에게 다중인격의 발현 가능성은 신의 선물일 수 있다.

몇몇 배우에게만 붙여지는 ‘천생’이라는 수식어는 일반적인 시선을 비껴가는 이러한 남다름 때문이다. 고원은 반듯한 이목구비에 가늘지만 개성있는 얼굴선과 무표정에서 배어 나오는 지적인 아우라가 배우라기보다는 그녀의 또 다른 타이틀인 작가에 더 근접해 보인다.

그러나 자신은 배우임을 강조하는 그녀는 작가 역시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며 작가와 배우의 선을 명확하게 그었다.

작가로서 고원, 배우로서 고원, 여자로서 고원, 극 중 캐릭터로서 고원. 고원이라는 이름 하나에 주워진 각기 다른 역할들을 혼선 없이 명민하게 소화해내는 그녀 역시 다중인격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배우로서 고원은 현실에서의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다른 자아를 끌어내는 순간 쾌감이 절정에 다다른다며 ‘천생 배우’로서 면모를 드러냈다.

◆ “작가이기에 힘들 수밖에 없었던”

고원은 배우가 되기 위해 작가가 됐지만, 주위의 시선이나 평은 전혀 다른 각도로 그녀를 파고들었다.

그녀가 작가로 참여한 영화 ‘인연’의 정지영 감독은 미래를 위해 작가가 될 것을 충고했고, 영화 ‘게임의 법칙’의 장현수 감독은 영화 ‘짓2 : 붉은 낙타’(이하 ‘붉은 낙타’)를 보고 “무슨 작가냐 배우나 해라”라며 전혀 다른 견해를 내놨다.

그녀는 이처럼 엇갈리는 평가에 대해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작가로서 고원과 배우로서 고원 중 무엇이 더 좋다는 어떤 것을 통해 저를 처음 접했는지 아닌지로 갈립니다. 그러나 저는 배우가 되기 위해 작가가 됐고 배우가 제가 살아있는 이유입니다. 배우를 해야 제가 살 수 있습니다”라며 시나리오 작가라는 역할에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은 심정을 피력했다.

고원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20대 시절 그런 과정이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 작가가 아닌 배우 고원을 일으켜 세운 ‘고흐의 연인, 창녀 씨엔’

그러나 작가였기에 그녀는 배우라는 자신의 천직을 진정성 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 작가를 오가던 고원은 자신이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은 연극 ‘고흐+이상, 나쁜 피’에서 고흐의 연인인 창녀 씨엔 역할을 하면서 배우로서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됐다.

씨엔은 실제 고흐의 연인인 실존 캐릭터이지만, 고흐가 씨엔의 천박함에 지쳐 떠난 것과 달리 극 중 씨엔은 천박한 모습 뒤에 숨겨진 강한 내면을 가진 순수한 인간 그 자체로 그려진다.

고원은 “씨엔은 천박할 대로 천박하지만, 쓰레기에서 피어난 꽃처럼 삶을 이해하는 여자입니다. 천박한 듯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인간과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죠”라며 “3명의 자녀를 낳고 임신한 상태에서도 몸을 팔지만, 아기를 낳는 순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살기 위해 몸을 팝니다. 육체는 피폐해졌지만, 정신은 피폐해지지 않은 씨엔이 제 연기의 원형입니다”라며 자신이 재해석한 씨엔에 대해 설명했다.

이처럼 그녀가 배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데는 이성적인 통제력이 요구되는 작가로서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그녀는 “글을 쓸 때는 이성으로 통제 가능한 상황이지만, 막상 연기를 하면 진짜로 얻어 맞은 것처럼 아픕니다. 책을 읽는 것과 책 속의 상황을 직접 겪는 것이 다른 것처럼 오감으로 느껴져서 뒤집히고, 슬픔이나 기쁨을 느낄 때 화학적인 몸의 반응은 전혀 달라집니다. 제가 그 캐릭터로서 그때그때 그 순간 살아있어야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그게 아니죠”라며 캐릭터에 온전히 나를 던지는 몰입의 쾌감이 주는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을 피력했다.

◆ 작가 타이틀을 뺀 배우 고원이 된 순간, ‘붉은 낙타’ 유가인

20대 때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수동적인 배우가 싫었던 고원은 30세를 넘긴 나이에 다시 ‘붉은 낙타’의 여주인공 유가인 역할을 맡으면서 한참을 돌아 다시 배우가 됐다.

그녀는 ‘붉은 낙타’가 삶의 전환점이 됐다고 밝혔다. “‘붉은 낙타’ 유가인은 결핍이 있는 여자입니다.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결핍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유가인의 입장이 돼서 일기를 썼습니다. 유가인에게 몰입하게 되면서 자유 연상처럼 ‘내가 어땠을까, 어렸을 때는…’ 그렇게 유가인의 입장이 돼서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라고 영화 촬영 당시 경험을 설명했다.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이게 내 트라우마였구나 하는 순간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붉은 낙타’ 유가인으로 살면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몰입된 상태에서 유가인으로 살았습니다”라며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붉은 낙타’ 이후 4편의 영화를 연이어 촬영한 고원은 한 달에 한 편씩 촬영하는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 순간을 어떤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시나리오 쓰면서 연기에 대한 욕망, 연기관 같은 것들이 목구멍까지 넘어올 정도로 쌓여있었습니다. 이게 한꺼번에 분출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며 배우로 살고 있는 현재의 충만감을 피력했다.


◆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배우 고원”

고원은 아직 작가라는 역할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그녀가 시니리오를 쓴 영화 ‘인연’은 정지영 감독에 의해 오는 11월 2일 크랭크인된다.

그러나 작가보다 배우 고원의 행보가 더 숨 가쁘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수상한 언니들’ ‘위험한 중독’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내년도에는 예술영화, 상업영화 등 장르별로 총 3편의 영화 출연이 확정돼있고 현재 출연 여부가 거론되는 작품들이 더 있다.

그녀는 “제 개성이나 매력을 보이고 싶다거나, 제 방식대로 하고 싶기보다는 캐릭터 그 자체로 사는 게 좋습니다. 그 캐릭터가 돼서 최대한 깊은 감정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라며 전혀 다른 성향의 수많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배우 이자벨 위페르처럼 살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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