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상 감독 권유진, 영화를 숨 쉬게 하는 패션 스토리텔러 [인터뷰]
입력 2015. 11.24. 17:20:17

영화의상 감독 권유진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드라마와는 다른 영화를 향한 끌림은 12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을 채우는 수많은 장치가 치밀하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응집력에 있다.

짧게는 12부작에서 평균 16, 20부작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친절한 설명으로 채워졌다면, 영화의 수많은 생략과 상징에도 관객은 장면 장면에서 설명되지 않는 스토리를 읽어낸다. 관객이 자기 주도 학습처럼 스스로 찾아내 이해해야 하는 과정에 기꺼이 동참하게 하는 힘은 대사가 아닌 장면이 품은 함의가 매력적인지에 달려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이하 ‘광해’) ‘명량’(2014) ‘국제시장’(2014) 제목만으로도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이 영화들은 치밀하게 얽혀 전개되는 스토리가 불과 2시간 10분여 안에 다 담겼다.

사극과 시대극 장르로 구분되는 이 영화들의 이러한 함축을 가능하게 한데는 의상의 힘이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흥행은 물론 예술성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이 영화들이 해인엔터테인먼트 권유진 영화의상 감독을 거쳐 갔다.



#1.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사실성’

권유진 감독은 영화를 맡고 시작하는 첫 작업으로 영화가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 파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의상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사회적 정치적 배경은 물론 당시 국제 정세까지 꼼꼼하게 체크합니다. 사극의 경우는 평균 17편에서 20여 편의 논문을 읽고, 주변 국가의 동향까지 파악 합니다”라며 철저한 고증과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요소들을 추출해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장르마다 특성이 있지만, 사극의 경우 포인트를 잡아야 하고, 시대극은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뿐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것들까지 끄집어내야 제대로 사실성을 살릴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하 ‘놈 놈 놈’) ‘광해’ ‘명량’ ‘국제시장’ 같은 작품들이다.

‘놈 놈 놈’에서는 이병헌을 주축으로 ‘창의파’와 ‘상구파’를 각각 열강과 아시아 약소국가로 설정해 잘 빠진 테일러메이드 슈트를 이병헌에게 입혔다. 앞뒤 길이가 다른 모닝슈트, 뒤로 재껴 단추를 채우는 롱재킷은 이런 배경으로 탄생했다.

‘광해’는 광해군(이병헌)의 목에 바짝 당겨 있는 단령에 시대배경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는 앞깃이 길게 빠지지만, 조선 초기 복식에 맞게 깃을 바짝 올렸다.

‘명량’은 일본 장수들의 투구와 갑옷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도도(김명곤)는 옆으로 삐져나온 투구로 사실성을 살렸다. 일본 역사에서 흔적을 찾기 어려운 구루지마(류승룡)는 그가 숭배했을 거라고 예상되는 그 보다 앞선 시대를 산 ‘전쟁의 신’으로 불렸던 다케다 신겐의 갑옷과 투구를 차용해 제작했다.

이처럼 철저한 고증과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 의상을 제작하지만, 의상감독으로서 ‘상상력’이 완성도를 더한다.

그는 “고증대로만 하면 재미가 없죠. ‘놈 놈 놈’ 같은 경우는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던 작업이었습니다. 송강호가 쓰고 나오는 고글을 제작하기 위해 고무가 생산된 시기까지 체크하는 등 사실에 입각했지만, 캐릭터 각각의 의상이나 소품 구성에는 제 상상력이 들어갔습니다”라며 사실에 근거한 상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설명했다.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 광해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창이 (이병헌, 위), '명량' 구루지마(류승룡), 와키자카(조진웅), 도도(김명곤) (아래)


#2. 비현실적인 사실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팀워크’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항상 최적의 결과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경우 총 170여벌의 양복을 제작하고, 각각의 캐릭터를 고려해 디테일과 톤 하나하나에 차이를 뒀지만, 그것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다.

그는 “영화의상은 현장에서 일반인의 눈으로 보는 것이 완성품이 아닙니다. 의상을 준비하면서 조명감독, 촬영감독과 어떤 톤으로 갈지, 어떤 조명을 쓸지 충분히 상의합니다. 의상은 배우가 입었을 때, 조명을 비출 때, 카메라가 들어갈 때 상황 상황마다 계속 바뀝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스크린으로 보이는 결과물이 바로 영화의상입니다”라며 이런 변수들의 예측까지 포함된 것이 영화의상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광해’는 고증 그대로 옷의 색채를 살리기 위해 조명을 최대한 자제하고, 설정된 색채를 살릴 수 있는 조명을 선택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반면 영화 ‘도리화가’(2015)는 진채선이 처음 대원군 앞에서 소리를 하는 장면을 제외하고 색채를 톤다운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3. 강력한 팀워크의 중심 ‘배우의 힘’

영화 '최종병기 활' 박해일, '악마를 보았다' 최민식, '광해:왕이 된 남자' 한효주,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한지민(왼쪽부터 시계방향)


이러한 모든 노력이 보상받기 위해서는 배우의 힘이 절실하다. 배우가 이런 모든 것을 담을만한 역량이 있는지는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변수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배우의 힘에 대해서는 담담했다. 그는 “배우는 확확 바뀝니다. 류승룡은 영화 ‘최종병기 활’(2011년) ‘명량’ ‘도리화가’ 세 작품을 함께 했는데 영화마다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특히 ‘도리화가’에서는 철저하게 수지를 받쳐주는 그림자로 자신을 감췄습니다”라며 함께 작업한 배우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는 최민식, 박해일을 가장 인상적인 배우로 꼽았다. 두 배우 모두 생각이 많은 성향을 가졌는데, 특히 최민식은 ‘몰입도가 굉장히 높은 진지한 배우’라고 설명했다. 또 한지민, 한효주는 다양한 변신이 가능해 매력적인 배우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한지민은 21세에 출연했던 영화 ‘청연’(2005년) 작업을 함께 하고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당시 감독이 ‘한지민을 섹시하고 카리스마 넘치게’라고 주문했다는 말을 했더니 ‘저한테 없는 거를 달라고 하면 어떡해요’라고 응수했습니다”라며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극 중 클레비지 룩을 연상하게 하는 봉긋하게 모은 가슴을 노출한 한복과 날렵한 고무신 코의 설정이 한지민의 변신을 가능하게 했다.

영화 마다 권유진 감독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그러나 그는 배우가 변신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 듯 영화의상 역시 매번 달라지는 작업에서 설득력 있으면서도 새로운 캐릭터와 상황을 도출해내는 작업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화마다 작업했던 당시 상황을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직업인 ‘영화의상 감독’의 관점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92세의 나이에도 아직 영화의상 감독 1세대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그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애착과 진정성이 그의 몸과 정신, 작업실 전체를 채우고 있다.

권유진 감독 작업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 영화 '최종병기 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광해, 왕이 된 남자',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악마를 보았다' '명량'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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