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룡 배우 혹은 감독, 싸움꾼과 예술가의 유쾌한 만남 [인터뷰]
- 입력 2016. 03.28. 14:50:56
-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손등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뼈에 5백 원짜리 동전 크기로 두껍게 박힌 굳은살과 오른쪽 눈 밑 광대 부위에 움푹 파인 상처가 감독 차룡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틈 없이 단 1초 만에 ‘싸움꾼’으로 각인했다.
그러나 그가 첫 마디를 내뱉는 순간 뇌가 오작동하기 시작했다. 급한 성격이 드러나는 짧은 문장으로 툭툭 던지는 말투에 배어있는 순수함은 마치 80년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간 느와르 영화 속 한 장면과 오버랩됐다. 그리고 대화가 점점 무르익으면서 기막힌 반전으로 이어졌다.
◆ 싸움꾼 차룡+예술가 차룡=라스트 맞짱
차룡은 배우와 감독을 겸한 영화 ‘라스트 맞짱’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04년 목포를 배경으로 두 싸움꾼의 치열한 삶을 그린 이 영화는 한국판 정통 느와르를 표방하며 촬영에서 포스터까지 아날로그 코드를 유지했다.
시대 코드를 엇나간 듯 보이는 아날로그 판 액션에 대한 그의 고집은 타고난 예술적 감성이 더해지면서 ‘마지막 싸움꾼들의 이야기’라는 콘셉트를 명확히 했다.
“복고 스타일이죠. 제작도 필름으로 했어요. 그래서 오래 걸렸죠. 2, 3년 기획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촬영만 2년이 걸렸죠. 4계절을 담아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진짜’ 싸움꾼은 칼을 쓰지 않는 건달로, 이것이 곧 그가 굳이 ‘복고’를 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건달은 칼을 쓰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칼 없는 건달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영화에서도 칼을 쓰는 건달이 나오고, 현실에서도 칼부림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죠. 이 영화는 실제 싸움꾼인 목포 건달 이야기입니다. 실화죠. 배우들이 직접 대역이 없이 리얼 액션을 합니다. 영화를 찍는 내내 많이 다치고 CG도, 피아노 줄도 없었죠. 실전에서 싸우듯이 연기해 오히려 영화라는 점을 실감하게 어렵습니다”
이 영화가 내건 ‘내 인생에 칼은 없다’는 인간 차룡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차 감독은 싸움꾼으로 10대를 보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보이기 시작한 뛰어난 그림 소질이 극장 간판 포스터 그리는 일을 거쳐 그의 첫 영화 ‘라스트 맞짱’ 포스터 기획에서 포스터 속 영화 제목을 직접 붓글씨로 디자인하는 열정으로 이어졌다.영화 '라스트 맞짱'
그의 예술가적 본능은 그림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배우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그는 힘겨운 타향살이에서 기타를 들고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했고, 몇 년씩 일한 선배들과 달리 기타 하나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타고난 감각을 발휘했다.
20살이 돼 빛을 발하기 시작한 음악적 감성은 전문가들보다 더 탁월한 예민한 소리 감각을 갖게 했다. 소리 하나하나에 예민해진 그의 귀는 ‘라스트 맞짱’의 효과음에서 배경음악까지 아날로그 코드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 ‘잘 나가는’ 싸움꾼, 그리고 그의 가족
‘열 가지 재주 가진 놈이 저녁거리가 없다’라는 속담이 있듯 차 감독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았다.
타고난 싸움꾼처럼 보이지만 그는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사실 그와 한 두 마디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싸움꾼 특유의 ‘독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무슨 일이든 강한 승부욕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남을 해하는데 쓰지는 않았다는 것.
이처럼 10대부터 다져진 ‘진짜’ 싸움꾼 기질은 그에게 ‘깡’을 키워줬고, 그 깡은 그를 감독으로 성장하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항상 그를 “오 매매, 우리 막둥이”로 불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막내아들 차룡을 걱정했다. 싸움꾼으로 평생 어머니 마음을 애끓게 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가수 배우 같은 딴따라 생활을 하는 내내 어머니는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는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말이 느려지고 말끝이 흐려졌다.
“어머니가 영화 개봉을 보지 못하고 가셨죠. 촬영 때마다 누나랑 같이 밥해주셨는데. 마지막까지 우리 막둥이 만나러 가야 한다고 하셨다고. 식사하실 때도, 주무실 때도 제 걱정이셨죠”
모든 어머니가 그렇지만 어머니에게 차 감독은 앞서 떠나보낸 큰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겹친 애틋한 존재였다.
◆ 인생의 라스트 씬, ‘영화감독’ 차룡
그는 이런 어머니의 남다른 삶의 역경을 영화로 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라스트 맞짱’을 찍어 놓고 또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서 만화 3천 컷을 그렸습니다. 이 영화가 끝나면 제 어머니 얘기를 영화로 만들 겁니다”라며 액션 영화를 하나 더 제작한 후 어머니의 삶을 그린 작품 준비에 들어갈 계획임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은 감독으로 마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액션 배우로 끝장을 보고 싶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죠. 영화감독 차룡으로 알려지고 싶습니다. 영화에 인생을 다 바쳤고, 영화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3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인생의 첫 행운이자 기회였고, 싸움꾼으로서 삶이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전환점이 됐다. 결국, 그는 영화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감독 차룡에게는 소위 최근 매스미디어가 열광하는 정제된 세련됨은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친 순수함이 있다. 이는 말끔한 영화에 열광하는 와중에도 흥행코드 제로의 다큐멘터리 성향의 영화에 공감하는 대중의 진정성에 대한 갈증과 맞닿아있어 ‘영화감독’ 차룡으로서 그의 라스트 씬에 기대를 걸게 한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