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훈 “홍길동, 피터팬이 보여요” [인터뷰①]
- 입력 2016. 05.01. 22:04:06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영화의) 배경 자체에 CG(컴퓨터그래픽)를 많이 구현하려 했어요. 연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거의 없었죠. 감독이 구현하려 하는 그림에 따라 카메라 동선 조명의 위치를 잘 찾아가야 했어요. 쉽지 않았지만 그 역시 알맞게 표현됐을 때 홍길동이 극대화됐고 모니터 하며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내가 잘 맞춰야한다 생각했는데 그걸 해냈을 때 희열이 있더라고요. 좋았어요.”
이제훈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웨스트19(west 19th)에서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감독 조성희, 제작 영화사 비단길)을 주제로 영화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악당보다 악명 높은 홍길동을 연기했다.
고전 속 홍길동과는 사뭇 다른 영화 속 홍길동은 불법 흥신소인 활빈당의 수장이자 사립탐정. 겁도 정도 친구도 자비도 없다. 거짓말도 잘 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잘 알아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홍길동이 사회정의를 위해 악당을 혼내주는 정의로운 인물이라면 영화에서의 홍길동은 어머니를 죽인 원수 김병덕(박근형)에게 복수하기 위해 20년 동안 그를 추적해 똑같이 갚아주려 하는, 개인적 복수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다크 히어로’다.
지난 2012년 10월 입대해 2014년 7월 군 복무를 마친 이제훈은 스크린 복귀작으로 ‘탐정 홍길동’을 택했다. ‘파수꾼’(2010, 감독 윤성현)의 이제훈에게 반한 조성희 감독은 이제훈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이제훈 역시 조 감독의 전작을 보고 그의 영화에 출연하고자 마음먹었다. (조 감독은 이제훈의 팬이다. ‘파수꾼’에서의 이제훈의 연기를 모은 짧은 영상을 한 영상 사이트를 통해 아직도 가끔 보고 있다.) 앞서 조 감독은 자신과 가까운 사이인 윤성현 감독이 ‘파수꾼’을 찍을 때 이제훈과 인사를 나누며 안면을 텄다. 당시 조 감독은 ‘짐승의 끝’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 감독을 보고 출연하게 됐다. ‘남매의 집’(2009) ‘짐승의 끝’(2010)도 그렇고 특히 ‘늑대소년’(2012)을 보며 ‘한국에 어떻게 저런 세계관을 가진 감독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대체할 수 없는, 그만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있다. 그가 시나리오의 독특한 설정을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해낼지 궁금했다. 조 감독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반했다. 할 때부터 그랬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니 출연하길 잘 했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훈은 지난 3월 종영한 케이블TV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장기 미제 전담팀 프로파일러 박해영을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그는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소화했고 내레이션 역시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마저 그는 많은 대사와 함께 내레이션을 한다. 프로파일러나 탐정이란 캐릭터가 추리를 많이 하고 생각이 많고, 추리나 생각은 주로 내레이션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레이션을 많이 하는 캐릭터가 한국영화에선 거의 없더라.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대사는 많았지만 하면서 즐거웠다.”
이 영화의 중심은 홍길동이란 캐릭터다. 즉 사건보단 인물이 더 강조된다. 조 감독은 언론 시사회와 인터뷰 등을 통해 줄곧 캐릭터의 독특함을 강조했다.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캐릭터를 분석하는데 있어 연기를 하는 배우가 많은 공을 들이는 게 당연했다. 홍길동은 어릴 적 받은 충격으로 20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편안하면서도 예리하고 날카로운 두 얼굴을 지녔다. 이제훈은 이 복합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했을까.
“홍길동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 처해진 상황에서 (위기를) 타개하려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것들이) 홍길동의 독특한 매력이 아닌가 싶었다. 즐기며 한 것 같다. 복수의 대상을 만났을 때 심정 같은 경우 ‘내가 정말 어머니를 죽인 복수의 대상 앞에서 용서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생각했다. 쉽진 않았던 것 같다. 상황의 감정에 충실하려 했다.”
‘탐정’ 하면 떠오르는 ‘시가’가 아닌 ‘캐러멜’을 좋아하고, 아이들에게 거칠게 대하다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이후 성숙해지는 홍길동에게선 전체적으로 미성숙한 어른이 보인다. 그런 홍길동을 보며 이제훈은 ‘피터팬’을 떠올렸다.
“홍길동이 어른이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 아이들에게 무섭게 대하고 몰아붙이면서 ‘죽여 버릴 거다’ ‘시끄럽다’ 같은 대사를 한다. 나중엔 점점 아이들과 소통이 되면서 뭔가 마음도 열리고 변모해 가는데 그런 부분에서 ‘피터팬’의 느낌이 났다. 미장센에 있어 느와르가 강한 부분이 있기에 시가를 피울 것 같은데 캐러멜을 먹는 그런 부분은 재밌지 않은가.”
‘미성숙한 어른’ 홍길동을 연기하며 그는 처음으로 아이들과 호흡을 맞췄다. 연기였지만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모질게 대하기가 힘들었고 예상 못한 리액션에 당황하기도 했다.
“연기를 할 때 대사와 리액션에 있어 캐릭터에 맞게 잘 표현하려 준비해 갈 때가 많다. 그런데 아이들과 연기할 땐 그런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연기는 예상할 수 없다. 엉뚱한 반응을 하니 당황스러웠다. 아이들 눈을 통해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을 나도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차 안에서 ‘나 좋은 사람 같으냐’ ‘죽여 버린다’ 같은 대사를 하는데 말순이가 캐러멜을 내밀며 대사를 던지니까 할 말이 없더라.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진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악랄한 생각을 하며 연기를 해야 하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에이 모르겠다’하며 나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계산된 게 아니다. 아이들 덕분에 길동이에게서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나 한다.”
아이들과 연기를 하기 위해선 연기 외적인 노력도 필요했다. 그는 난생 처음 연기란 걸 하게 된 아역배우와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런 아역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감독과 그는 무던히 애를 썼다. 그리고 그 결과 홍길동과 말순의 케미가 영화를 통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한다. 동이 역을 맡은 아역배우 노정의는 여러 작품을 거쳐 이미 촬영이나 연기하는 부분에 있어 어느 정도 능숙하고 잘 하는 친구다. 말순이 같은 경우 감독님이 사진만 보고 데려온 친구다. 수많은 스태프가 지켜보고 있는데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했다. 나도 처음에 벌벌 떨면서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아이는 오죽할까 했다. 그래서 감독과 내가 말순이를 적응시키려 같이 놀면서 과자도 나눠먹었다. 현장에서 구워준 감자 고구마도 동이·말순이와 나눠먹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나도 해맑게 지냈다.”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