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성’ 천우희 “누구도 겪지 못한 일… 고로, 난 할 수 있었다” [인터뷰①]
- 입력 2016. 05.04. 19:42:54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멘붕’(멘탈붕괴) 이었죠.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땐 관객 입장에서 읽어요. 배역보단 영화 전체의 느낌을 알고 싶어 흐름을 읽는데, ‘대혼란’ 이었어요. 영화자체가. 어떤 게 맞고 틀린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생각하는 게 감독의 생각과 맞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감독님, 멘붕인데요?’라고 했더니 ‘네가 느끼는 게 맞다’고 단순하게 답하셨죠. 어떻게 하다 만든 거냐고 물으니 끝까지 대답을 안 해주셨어요. 이 영화가 ‘옳다’ ‘그르다’에 대한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말 하신 듯해요.”
배우 천우희는 영화를 본 후 ‘시나리오만큼 잘 나온 것 같다’는 평을 내렸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가장 놀랐다며 ‘멘붕’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그녀를 보자니 영화를 본 입장에서 당시 그녀의 심정이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갔다.
천우희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슬로우파크에서 영화 ‘곡성(哭聲)’(감독 나홍진, 제작 사이드 미러‧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을 주제로 영화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건을 목격했다는 여인 무명은 종구(곽도원)에게 자신이 모든 걸 봤다며 외지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뒤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이를 통해 무명은 종구를 더 깊이 혼란에 빠뜨린다. 지난 2004년 영화 ‘신부수업’에서 단역으로 데뷔한 그녀는 ‘한공주’(2013)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소녀 한공주를 연기하며 섬세한 감정이 돋보이는 열연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등 다수의 영화상을 휩쓸어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여배우로 떠올랐다. 이번엔 ‘곡성’에서 사건의 목격자인 무명 역을 맡아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오랜만에 재밌는 시나리오를 읽었다. 배우가 느꼈을 때 시나리오마다의 느낌들이 다른데 이렇게 강렬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느낌·장르는 처음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땐 도대체 어떨지, 시나리오가 그림·영상으로 완성되면 어떨지 궁금했고 얼른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내가 참여하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곽도원 선배가 시나리오를 세 번 읽고 나서 줄거리가 파악되고 누가 못 된 놈인지 까지 알게 됐다는데 혼돈속에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내 역할의 경우 그런 혼돈은 별로 없었다. 곽도원 선배가 연기한 종구가 가장 힘들었을 거라 느낀다.”
천우희가 연기한 무명은 비교적 분량이 적었지만 존재감은 놀라우리만치 컸다. 작은 체구의 그녀가 뿜어내는 강렬함·압도적인 존재감은 어디서 온 걸까.
“역할이 주는 존재감과 의미가 컸다. 한 번도 겪고 느끼지 못한 걸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도 겪지 못 한 것이기에 ‘고로’, 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표현방식을 생각하기 보단,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전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장에서 어떻게 연기할지가 아니라 그 점을 인지하고 연기하려 했다.”
‘곡성’을 통해 그녀는 자신을 극한으로 몰고 간 나홍진 감독과의 만남이 연기적 갈증을 해소하는 기회였다고 말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 감독과 다시 한 번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정말 다시 함께 하고 싶다. 나 감독이 남성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가진 것 같지만 섬세하다. 연기할 때 디테일을 알아준다. 의도를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든 정확히 봐줄 때 놀랍기도 하고 쾌감이 있기도 하다. 한 번 더 작업한다면 얼마든지 같이 하고 싶다. 이번 영화로 연기적 갈증을 해소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참 복을 받았고 힘든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선배배우와 감독을 작품마다 만나서 좋은걸 경험했다. 그게 좋은걸 알다보니 더 좋은걸 느껴보고 싶어진다. ‘곡성’을 한번 겪었으니 그만큼의 만족감을 갖고 싶을 거다. 그래서 또 연기를 하고 싶은 것도 있다. 더 갈구하고 더 하고 싶어진다.”
천우희가 생각한 무명의 연기 점수는 얼마나 될지, 그녀에게 작품의 우수성과는 별도로 자신의 연기에 대한 만족도에 대해 물었다.
“모든 작품마다 아쉬움이 있다. 이번 작품을 연기하고 나서 영화를 보니 ‘이렇게 했으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었다. 무명은 인물에 대한 상상을 무한히 할 수 있단 점에서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누구나 많이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었기에 만족감이 컸다. 내가 만들고 창조하기 나름이었다. 곽도원 선배와 만나는 신에선 거의 즉흥적으로 연기를 했다. 내가 연기 하는 방식이 그렇긴 하다. 시나리오를 보고 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의도를 표현하고 집중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현장에 가서는 초점이 안 맞을 때가 있다. 그땐 다 잊고 임하는 편인데 이번에 가장 원초적으로 연기했다. 나 감독님이 뚜렷한 주관이 있고 의도가 있다. 지시하지 않는다. 어떤 느낌을 가졌으면 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관객이 느꼈을 때 어떻게 느꼈으면 한다는 정도지, 구체적 지시나 요구는 하지 않는다. 연기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 ‘해보라’거나 ‘좋았다’ ‘아쉽다’는 부분을 추가적으로 애기해준다.”
이 같은 나 감독의 방식에 따라 그녀는 무명을 만들어갔다. 여백을 남긴 시나리오에 따라 대부분 즉흥연기를 했고 이는 모두 그녀의 머리와 감성을 통해 창조됐다.
“돌멩이를 던지는 장면 같은 경우 종구가 어떤 액션을 취할지 나도 모르는 거니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진 않았아요. 현장에서 주고받았죠. 즉흥연기를 포함해 모든 장면에서 여러 번 찍었어요. 연기 뿐 아니라 여러가지로 합도 맞아야하니까요. 나 감독이 완벽을 추구하기에 어떤 부분이 좋더라도 초 단위까지 맞추고 싶어 하는 철두철미함이 있어 여러 번 찍게 됐어요. 영화 마지막에서 종구와 무명이 대사를 주고받을 땐 3회차 였는데 6회차로 늘어날 정도로 시간을 들였어요. 골목이라 찍기 힘들었죠. 조명과 앵글을 잡기가 힘들었고 담 신이라 세팅도 꽤 오래 걸렸어요. 종구의 감정이나 정서에 대한 것도 나 감독과 곽도원 선배가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던거죠.”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