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춘할망’ 사라져가는 할머니 자리에 대한 뼈아픈 각인 [씨네톡]
- 입력 2016. 05.20. 10:38:41
-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계춘할망’은 영화지만 그 어떤 사회고발 다큐멘터리보다 짠한 리얼리티와 애국심을 앞세운 억지스러운 드라마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 '계춘할망' 윤여정 김고은
‘계춘할망’의 스토리는 무겁지 않다. 문제아였던 손녀가 과거를 숨긴 채 할머니가 사는 제주도 집으로 12년 만에 돌아오고,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아냈다. 자극적인 사건 사고 없이 펼쳐지는 스토리지만, 제주도 풍광이 주는 따스함이 잊혀져가고 있는 가족애에 대한 서글픔의 깊이를 더하면서 김고은의 감정 변화가 더욱 짙게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효과를 준다.
문제아였던 소녀가 할머니를 통해 순화되는 과정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사고에 가족과 어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최근 한국 사회는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살인, 자신의 부모와 자녀를 죽이는 가족 살인 등 끔찍한 범죄행위가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문제 전문가들은 가정의 사회적 역할 축소를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사회질서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윤리 도덕을 가르쳐야 할 가정이 학교성적관리자로서 역할에만 충실하면서 범죄 인지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뿐 아니라 소가족제도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 또한 가정교육의 범위를 축소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자녀와 분리된 공간에서 거주하고 병증이 나타났다싶으면 자녀들 손에 이끌려 21세기 고려장인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에게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던 이야기를 듣고 자란 1, 20대는 이제 사라진 설화가 돼버렸다.
창 감독은 영화 기획의도에 대해 늦둥이로 연세가 많은 부모님에게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이 토대가 됐음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어린 시절에는 나이 많은 부모가 싫었던 적도 있었다”라며 죄의식으로 토로하기도 했다.윤여정 창감독 김고은
윤여정 역시 과거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파했다. 그녀는 “우리 증조할머니한테 제가 어릴 때 너무 잘못했어요. 시나리오를 읽는데 증조할머니가 생각나더라고요. 어릴 때는 자신이 먹던 걸 저한테 주는 증조할머니가 비위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근데 그 할머니는 나를 너무 사랑했죠. 이 작품은 나한테 증조할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했어요”라며 할머니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런 감정마저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감정변화라는 것이 ‘계춘할망’이 주는 함의다.
김고은은 이 영화에 대해 “할머니께서 잘 봤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극장이 추워서 힘들었다고도 하시고 또 많이 울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보면서 울었어요. 제 영화보고 제가 우는 게 창피해서 안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라며 할머니에 대한 아린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계춘할망’은 영화라는 형식으로 제작됐지만, 그냥 따뜻한 가족영화로 흘려보내기에는 현대 사회의 서글프도록 처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사라진 할머니 할아버지 자리를 다시 되돌려 놓지 않는 이상 사회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사고의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영화의 서정성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l.co.kr/ 사진=권광일 기자, 영화 ‘계춘할망’ 스틸컷, 콘텐츠난다긴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