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하정우 “백작, 알 수 없는 인물이라 흥미 느꼈죠” [인터뷰①]
입력 2016. 05.27. 11:54:08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어렸을 때 채플린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영화가 정말 재밌어요. 영화로 인해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죠. ‘할배’가 될 때까지 이런 인연과 작업을 이어갔으면 해요. 그 과정에서 연기가 깊어지고 노련해지고 그런 건 덤인 것 같아요. 어울리며 일해나간다면 언젠가 그런 걸 가져갈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배우 하정우에게 영화는 곧 삶으로 이어진다. 연기에 대해 당장 욕심을 부리기보단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어울려가는 과정을 즐긴다. 연기력은 그 과정에서 더불어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정우는 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슬로우파크에서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용필름)를 주제로 영화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정우는 이미 ‘믿고 보는’이란 수식어를 단, 관객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그의 맛깔스런 연기에 많은 이들이 그에게 애정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제 아무리 베테랑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뛰어난 모습을 유지하고 나아가 발전해 나간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정우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을 향한 칭찬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늘 자신을 다잡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태해지는 순간 냉정한 평가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도, 경력이 쌓여가는 것과 동시에 발전이 있어야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에 끊임없이 노력하려한다. 그런 그의 모습이 지금의 하정우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연기력이란 게 어떤 증명서를 발급 받는 게 아니라 계속 바뀌는 부분이다. 어떤 작품에서 캐릭터나 (여러 가지가) 다 맞아떨어졌을 때 그런(연기력을 인정하는) 이야기를 듣는 거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반대(되는) 평가를 듣는다. 연기에 대해선 ‘산 넘어 산’이란 생각이 들고 그게(연기력에 대한 칭찬) 영원할거란 생각은 안 한다. 어떻게 고비를 넘길까 생각하고 나이에 맞게 좋은 해석과 표현을 갖는 게 필요하다. 연기란 게 믿을게 하나도 없고 혼자 이뤄낼 수도 없단 생각이 든다. 그런(연기력을 칭찬하는) 이야기나 수식어에 대해선 많이 부끄럽고 경계하고 있다.”

‘아가씨’에서 사기꾼 백작 역을 맡은 그는 본인의 연기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대신 간단명료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했다. 단호한 어조에서 그가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단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언론 시사회에선 영화를 못 봤다. 내일 (VIP시사회에서) 보려 한다. 내가 (출연)한 작품이지만 칸에선 다른 배우들의 일본어 대사를 몰라 이해하지 못했다. 내일 보면 (영화를) 거의 처음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칸에선 그림만 봤다. (영화를) 다시 봐야겠지만 일단 주어진 시간 안에서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길어 준비한 시간이 많았고 그런 걸 다 감안했을 때 최선을 다했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아가씨’는 박 감독의 말대로 많은 공이 들어간 영화다. 배우들은 일본어가 많은 영화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일본어를 공부하고 연기에 필요한 일본의 예절 수업도 받는 등 많은 준비를 했다.

“‘암살’이 1월 30일에 촬영이 끝나고 바로 (‘아가씨’)의 준비에 들어갔다. 일본어 대사량이 많았기에 일본어 수업을 가장 먼저 받았다. 나와 조진웅, 김민희 김태리가 한 팀이었다. 수업은 일주일에 네 번이었고 진도가 어떻게 나가는지 항상 감독에게 보고가 됐다. 사무실 한쪽 벽에 네 배우의 이름과 날짜별 출결석, 진도, 현재 실력이 계속 업데이트 돼 압박감이 들더라. 계속 진도가 나가 읽는 수준까지 돼 리딩이 시작됐다. 일본어 리딩을 많이 했는데 중간에 일본 배우를 섭외해 전체를 녹음한 뒤 청취하고 (혹여나) 배우의 말투·억양이 밸까 또 다른 일본 배우를 섭외해 녹음을 하고 청취하는 등 시나리오의 대사를 집중 공략했다. 사무실 출근이 일주일에 네 번씩이다 보니 박 감독과 자연스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준비했다. 김민희 조진웅은 일본 차 예절과 기모노 입는 방식, 의자와 다다미방에 앉는 방식 등을 교육받았다.”

공교롭게도 ‘암살’이 끝나고 준비에 들어간 ‘아가씨’ 역시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였다. 두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서 하정우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두 영화에서 그가 체감한 시대의 모습은 같았을지, 달랐다면 어떤 점이 달랐을지 궁금했다.

“‘암살’의 경우 야외촬영이 많았다. 주로 직접 마주힌 사건이 많았고 직접 보게 되는 미술이나 거리의 사람들 등이 있어 조금 더 넓게 느껴졌다면 ‘아가씨’의 경우 실내로 들어온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시대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의상·헤어·소품·액세서리·집안의 가구·인테리어 정도에서였다. ‘아가씨’는 (배경이) 특별한, 한정된 공간이기에 ‘암살’에 비해 시대가 주는 느낌을 배우가 받긴 좀 어려웠다. 코우즈키(조진웅)의 저택은 한국·일본·서양식이 합쳐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독특했다.”

하정우가 ‘암살’의 하와이 피스톨에 이어 사기꾼 백작이 된 것의 시작점은 ‘암살’의 상견례 날이다.

“‘암살’ 상견례 날 박 감독이 ‘이런 이야기 준비하는데 같이 했으면 한다’며 ‘두 달 뒤 시나리오 보내겠다’는 말을 했고 연락처·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재밌는 게 당시가 8월 셋째 주였는데 ‘10월 15일 날 시나리오 보내겠다’고 하더라. 15일에 바로 ‘오늘 네게 처음 보낸다. 잘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문자가 왔다. 제목이 ‘아가씨’라 해서 무슨 내용인가 하고 읽었는데 굉장히 잘 짜인 상업적 스릴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역할도 작품 안에서 꼭 필요한 캐릭터란 느낌이 들었고 바로 소속사 이야기해 진행했다.“

그는 ‘아가씨’에 캐스팅 된 첫 주연 배우다. 출연을 결심한 뒤 박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가씨’의 퍼즐이 맞춰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출연 결정) 이후 박 감독과 종로의 경양식 집에서 둘이 만나 어색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 혼자 먼저 캐스팅이 됐는데 ‘두 여배우는 신인으로 가겠다’고 하더라. (신인 여배우) 오디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촬영 때문에 못가고 최종 여섯 명의 프로필을 봤다. 거긴 김태리가 없었다. 그런데 박 감독이 고민을 하더라. 계속 오디션을 보다 몇 주 후 ‘드디어 발견한 것 같다’며 처음 김태리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암살’ 안성 세트에서 퇴근길에 ‘김민희가 됐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좋다’했다. 생각지도 못했다. ‘퍼즐이 맞춰져 가는구나’ 싶었다. ‘암살’ 마지막 촬영을 하고 가는데 (조)진웅 형이 ‘나 그거(‘아가씨’) 하기로 했다’고 하더라. 생각도 못했다. 코우즈키 나이대의 배우가 해야 어울릴 거라 생각했었다.”

‘아가씨’에서 하정우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대사를 하며 능청맞게 연기를 한다. 물론 많은 준비와 주위의 도움이 있었다.

“일본어 (대사) 같은 경우, 현대 일본어가 아니었기에 의견이 분분했다. 일본어 학과 교수님이 오랫동안 현장에 나와 단어와 어미 하나하나를 감수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일본어를 잘 알지 못하지만 (옛 일본어가) 더 ‘각’이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도 시대극에서 (들으면) 딱딱하고 각이 있는데 일본어도 그랬다. 백작이 문어체적 표현을 많이 쓴다. ‘수은이 기화했을 때’란 대사를 보면, (보통은) 그런 말을 잘 안하는데 그게 박 감독의 글에서 느껴지는 맛이다. 백작 캐릭터가 영화에서 가장 현대인처럼, 능글맞게 리듬감을 가져가며 구어체적 말투를 사용한다. 처음엔 굉장히 생소했다. 말의 맛을 살리며 어떻게 부드럽게 전달하느냐 하는 게 처음에 많이 고민이 됐다. 반복적으로 익혀 뱉으면 스피드도 빨라지지만 거기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적정 톤을 맞추는 게 어려웠고 후반 녹음을 통해 다시 손본 부분이 있다. 일본어 대사 같은 경우 모든 배우가 다시 후반작업을 통해 삼엄한 분위기 하에서 마지막에 조율을 했다.”

하정우의 눈으로 본 백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어떤 매력을 봤기에 백작을 택했을까.

“작품을 고르는데 있어 첫 번째로 생각하는 건 영화 스토리다. 스토리가 좋으면 캐릭터도 같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스토리가 별로면 아무리 좋아도 캐릭터가 별로다. ‘아가씨’의 이야기에 내가 끌린 것 같다. 어쩌면 ‘암살’(의 하와이 피스톨)과 백작의 캐릭터는 통하는 것 같다. 둘 다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 내가 흥미를 갖는 것 같다. 백작 같은 경우 사기꾼이고 나쁘다기 보단 안쓰럽더라.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 안쓰럽다. 어떻게 이렇게 자기의 태어난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겉모습만 따지면서 살아갈까. ‘가격을 보지 않고 와인을 주문하는 태도’라는 대사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백작이 아이 같았다. 이름도 고판돌에서 후지와라 백작으로 바꿨다. (그러나) 그런 게 이해되는 남자다.”

필기로 꽉 채운 그의 대본은 유명하다. 이번 영화의 대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험생 교재 같은 모습으로 변신한 그의 대본을 통해 재치 있고 능청스런, 매력 있는 백작의 모습이 탄생했다.

“공부란 게 그런 것 같다. 은연중에 떠오른 것, 감독이 이야기 한 것에서 힌트를 많이 얻는다. 휴대전화에 그런 걸(메모) 많이 저장한다. ‘연구하자’ ‘공부하자’ 해서 한다기보단, 갑자기 누군가가 보석 같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매번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가 채워지는 것 같다. 그런 걸 정리해서 감독과 시나리오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아이디어 어떠냐’고 말한다. 선택은 감독이 하는 거니 주연배우로서 (아이디어를) 던지는 거다.”

과거 그는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100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힌바 있다. 그런 그의 목표는 여전하다. 대체 그가 왜 ‘100편’이란 목표를 세운 건지 물었다.

“100편 찍는 게 목표예요. 국가대표 축구선수도 100경기를 뛰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잖아요. 100편의 작품이면 어디 가서 강의라도 할 수 있잖아요.(웃음) 상징적 숫자예요. 선구안이 정말 뛰어나 10타수 10안타 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작품을 통해 연마하고 학습해 깨달음을 얻으면 훨씬 의미가 있죠. 다작을 통해 연마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완벽함이란 것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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