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아가씨’, 억압에서 벗어나는 사람의 아름다움과 용기 표현했죠” [인터뷰②]
입력 2016. 06.01. 11:31:26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각본을 쓰기 전, 한국 제목을 어떤 식으로 쓸까 회의하다 아주 초창기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당시 상류계급에서 하녀가 히데코(김민희) 쪽을 ‘아씨’ ‘아가씨’라 불렀죠. 이런 얘길 하다 발음도 글자 생김새도 쉽고 사랑스런 단어라 생각했어요.”

‘아가씨’라는 이 간단명료하면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 제목이 나온 배경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아가씨’란 영화제목은 해외에서 그대로 사용되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아가씨’를 직역해 ‘마드모아젤’이란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다. 미국에선 ‘하녀’ 대만에선 ‘하녀의 유혹’으로 바뀌었다.

박 감독은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아가씨’(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용필름)를 주제로 영화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가씨’는) 어찌 보면 오염된 단어기도하다. ‘술집아가씨’ 등으로 남성들에 의해 좀 오염된 단어이기도 한데 그런 오염으로부터 되살리고 싶은 아름다운 말이었다. 원작은 (제목이) 하녀 쪽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한국 제목은 아가씨를 가리키는 말이면 두 주인공이 동등하며 균형이 잡혀 좋다 생각했다. 영어제목은 반대로 뒤집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고 프랑스어 제목의 경우 내 의도는 아니지만 재미있어 보인다.”

‘아가씨’는 1930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박 감독이 이 시대를 영활의 배경으로 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일제 강점기라 해서 반드시 항일 이야기만 해야 하는 건 아닌 것이고 둘째, 어찌 보면 이 것도 항일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 행복해지며 끝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볼게 아니라 이 영화의 최대 악당인 코우즈키(조진웅)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고 그를 파멸시키는 이야기이니. 코우즈키는 보통 친일파를 뛰어넘는 슈퍼 친일파라 생각한다. 진짜 뼛속 깊이 일본을 숭배하고 사랑하며 일본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 사람과의 전쟁이다. 코우즈키는 히데코에게 어려서부터 낭독 학습을 시켰다. 말하자면 히데코를 만든 것이다. 영화에선 그런 억압을 깨고 나가는 거니까 (코우즈키와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히데코가 비록 일본인이지만 일본사람으로서 등장하는 게 아니고 결국 숙희(김태리)와 히데코가 여러 벽을 뚫고 사랑하며 하나로 결합되며 끝나는 이야기다. 반쯤은 말장난이라 볼지도 모르지만 넓게 봐선 항일영화라 봐도 되겠다. 식민지시대 한일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 갖고 만든 영화다.”

‘아가씨’는 결론이 명확한데다 해피엔딩이다. 상업 영화를 의식한 의도적인 엔딩은 아니다. 의외로 이유는 단순했다. 단지 감독의 개인적인 바람을 영화로 이룬 것이었다. 이 외에도 그가 원작을 각색하며 첨가하고 배제한 부분이 있을 터다.

“(원작인 ‘핑거스미스’) 소설을 읽으며 그걸 (해피엔딩을)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되더라. 여주인공 둘이 한편이 되고 둘이 진짜 행복한 사랑의 여행을 떠나는 걸로 끝내고 싶었다. 소설이 그렇게 끝났으면 했다. 뒤에 가서 출생의 비밀이 나오는 부분들은 바꾸고 싶었다. 지나간 어머니 세대 이야기라 분량도 그렇고 내게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현대 관객에게 호응을 얻을 만한 내용도 아니고.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통속 대중문화를 다룬, 전통에 입각해서 쓴 소설이기에 현대적으로 각색돼야 좋을 거라 생각했다. 먼저 1부에서 숙희가 정신병원에 가게 된 반전. 둘째, 같은 상황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 것. 셋째, (숙희가 히데코의)이(를) 갈아주는 장면. 넷째, 정사장면. 두 여성 사이의 첫 정사장면에서 (히데코가) ‘남자들이 원하는 게 뭐야’ 라고 유혹을 시작한다. 숙희는 ‘백작님이 이런 걸 좋아하실 것’이라며 유혹에 응한다. 서로 뻔히 알면서 (물론 숙희는 잘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모르는) 척하는 게임 같은 것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첫 관계에서의 부끄러움이라든가 떨리는 것 겁나는 것을 그걸로 없애는 거다. 어디까지나 이건 일인 것처럼. 그게 교묘한 재미가 있다.”

박 감독은 이번 영화를 자신이 가장 공을 들인,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 말했다. 그 중에도 그가 가장 애정을 느끼는 장면에 대해 묻자 그는 총 세 장면을 꼽았다.

“세 개를 얘기하고 싶다. 히데코의 첫 독회. 흰 기모노를 입은 히데코가 채찍질을 하고 상상 속 남자들은 엉덩이를 얻어맞고 히데코는 또 자기 목을 조르는 장면이다. 둘째, 숙희와 히데코가 한 편이 되는 신이다. (히데코가) 목을 매달 때 (숙희가) 구해준다. 셋째, 평화호텔이란 곳의 객실에서 (히데코가 백작에게) 와인을 먹여 재우는 신이다. 백작이 침대에서 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히데코를 겁탈하려 하고 그가 기절하기까지의 장면이 굉장히 긴 테이크로 이뤄졌다. 배우와 스태프가 호흡을 맞춰 잘 구성했다. 백작이 (자신에 대해) 굉장히 여잘 잘 다루고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고 히데코는 (와인을) 먹여야하는데 안 먹는다. 그럴 때 생기는 서스펜스를 관객은 안다. 백작이 히데코의 가슴을 애무할 때 흥분하는 척 얘기만 하다 백작이 안볼 때 싸늘한, 마녀 같은 표정을 짓는데 그 순간이 좋다. 음악이 아주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데 히데코가 목조를 때와 같은 곡이다. 정말 좋아해서 가장 좋아하는 곡을 같이 썼다.”

김민희 김태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지만 남자 배우들 역시 탄탄한 연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영화 전체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박 감독은 어떻게 백작 역에 하정우를, 코우즈키로 조진웅을 택하게 됐을까.

“예를 들면, 객실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에서 (백작은) 절묘한 경계에 있어야했다. 내가 원한 건 극단적으로 사악하거나 비열하기만 해서 너무 쉽게 단면적이고 상투적인 악당이 아니었으면 하는 거였다. 그래서 좀 어떤 때는 매력이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이 가기도 하고, 관객 입장에선 정이 갔는데 실망하기도 했으면 했다. 마치 자신이 에티켓을 지키는 양 ‘이제부터 속옷을 찢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원래는 ‘이제부터 속옷을 찢을거예요’ 였다. ‘찢겠습니다’라고 해보자 했더니 금방 알아듣고 ‘재미있겠다’고 말한 뒤 내가 원하는 그대로 해줬다. 우습기도 하고 매넌지 뭔지 이상하다 싶었다. 조진웅도 마찬가지다. 상상조차하기 끔찍할 정도의 악당이고 변태다. 측은해보일수도 있고. 병든 사람이니까. 그 시대 일본이라는 너무나 막강한 힘, 압도하는 힘에 굴복했을 뿐 아니라 숭배하게 된 내면이 취약한 인간이다. 그 사람(코우즈키)이 조선인들을 깔보고 하는 건 다 열등감 때문 아니겠나. 그래서 백작이란 사기꾼에게, 그의 일본귀족이란 신분에 넘어간 거고. 무턱대고 변태적이고 사악한 게 아니라 좀 더 복합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또 하나의 과제는 젊은 시절 늙은 시절을 다 연기해야 했던 거다. 그런 걸 고려했을 때 좋은 선택이었다.”

변태적 성향을 띤 코우즈키의 캐릭터와 박 감독의 전작에서 보이는 잔인한 묘사가 만나 가학적인 장면이 많을 것으로 기대 한다면 실망할 관객이 있을 지도 모른다. 가학적인 장면이 덜한 점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내는 반응도 있을 정도로 ‘아가씨’에서는 박 감독의 전작보다 잔혹성이 배제됐고 대신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더 많아졌다.

“어떤 사람은 손가락을 자르는 신에 대해 ‘끔찍하다’ ‘왜 그런 게 필요하냐’ 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엔 가장 잔인한 장면은 (히데코의 이모 역으로 등장한) 문소리와 어린 시절의 히데코, 두 여자 얼굴을 잡고 흔드는 장면이다. 내가 찍으면서도 진짜 싫었다. 몸이 오그라들고 외면하고 싶었다. 숙희(김태리)가 뱀 대가리를 휘둘러 깨는 쇠자가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선 그걸로 (조진웅이 문소리와 어린 시절의 히데코를) 때리는 걸로 돼있었는데 촬영 날 갑자기 바꿨다. 그 장면은 너무 모욕적이다.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하고 꼭두각시처럼 갖고 놀 수 있는 것 취급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두 여성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게 정말 기분 나쁜 장면이다. 조진웅이 괴로워하더라. 다행히 문소리가 알아서 잘 해줬다. 아이까지 덩달아 잘해줘 (조진웅이) 더 난폭해 보였다. 손을 땠을 때 문소리도 어린 히데코도 모욕을 참으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그런 표정이 기가 막혔다.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하는 건, 아끼는 책들을 잃고 분풀이를 해야겠단 마음에 코우즈키가 제책도구로 고문하는 게 어울리는 행동이긴 했지만 그리 자세히 보여주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조금은 색다른 정의를 내렸다.

“‘아가씨’는 억압에 맞서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억압은 아주 구조적이고 내면화된, 그렇기에 굉장히 철저한 억압이었으나 끝내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그것의 아름다움과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죠.”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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