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 “160편의 작품, 그래도 참 잘 해왔구나 생각하죠” [인터뷰②]
입력 2016. 06.25. 18:10:09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영화가 어려웠을 때, 그래도 그때 ‘참 잘 해왔구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일부러 사회성 있는 작품을 선택했는데 그런 것도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가져오는데 일조했다 할 수 있죠.”

59년의 연기 경력. 160편의 작품 활동. 정작 본인은 거창하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안성기는 배우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길을 걸어왔다.

안성기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라운드인터뷰를 갖고 영화 ‘사냥’(감독 이우철, 제작 빅스톤픽쳐스)을 주제로 영화와 배우로서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많은 배우들이 힘을 쏟아 해나가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개선하는 데에 시발점은 된 것 같다. 작품 한편을 하고 나서 또 한편을 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던 시기가 있었다. 작품 한편을 해서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개런티가 낮았고 영세한 제작사가 워낙 많았다. 유명배우가 동시에 여러 편을 안 할 수 없었다. 어딘 가엔 출연하고 어딘 가엔 출연하지 않을 수 없어 한편씩 한단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배우들은 (외모에) 변화를 줄 수가 없었고 작품에 녹아나지 않아 ‘그 배우’는 늘 ‘그 배우’였다. 그때 시스템 자체가 한편씩 해야겠다고 해서 우겨가며 할 수 없었다. 그런 것을 개선하는데 있어서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오랜 시간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는 영화계의 변화를 지켜봐왔다. 영화계·영화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며 자신이 걸어온 굴곡의 길에 대해 회상했다.

“영화 쪽이 점점 좋아졌다.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연극영화과에는 수능에 떨어진 사람들도 오는, 끼 있고 공부가 안 된 사람이 다 모인 곳이란 인식에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 시대엔 좋은 친구들이 많이 영화계 들어오다 보니 인식이 좋아졌다. (작품을 택하는데 있어)배우로서의 성향도 있지만 70년대 후반에 영화 쪽이 끝까지 가있던 상태였다. 80년도부터 살아나기 시작했고 그때 영화를 평생하려 생각했다. 당시 영화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 영화의 위상이 형편없었다. ‘일평생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할 수 없다’ 생각해 영화하는 사람을 좋게 생각하고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부터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심사숙고해서 하고 꼭 그 시대에 하고 넘어가야할 이야기다 싶은 작품들을 계속 선택해가며 했다. 그래서 현실 참여적인, 사회성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그러다보니 나 개인보다 이 영화 자체 가 가진 의미를 많이 생각했다.”

그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현실 참여적 영화를 주로 해 왔다. 이 한 명의 배우가 자신만의 기준으로 뚝심 있게 영화인으로서의 자세를 지켜온 결과는 한 사람이 이룬 것 치곤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90년대 중후반을 넘어가며 ‘쉬리’(1998) 이후 영화가 산업화 되어가며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매김했다. 예술성도 예술이지만 오락성을 강조한 부분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다보니 영화 속에서 의미 하는 게 구태의연한 것 같기도 했다. 지금 현재 굉장히 다양하고 의미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 있고 제작자·연출자의 성향에 따라 작품을 기획·제작 한다. 배우역시 영화는 재미있어야 하고 재미가 먼저라 생각하면 그런 취향의 영화를 선택하게 됐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 예전부터 우리나라영화의 굴곡을 같이해와 그런(심사숙고하는) 부분이 많이 몸속에 녹아있다.”

재미 보단 현실 참여적 영화를 선호한다는 그는 수많은 영화를 찍었다. 그는 과거 자신이 참여한 영화를 돌아보며 그 영화가 담은 메시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현실 참여적 영화는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부터 시작해 이장호 감독의 영화는 무작정 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상경한 세 명의 청년의 서울에서의 삶을 얘기했는데 그때 갑자기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며 거기서 생기는 괴리감과 빈부격차를 이야기 했다. 70년대엔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칠수와 만수’(1988)는 연좌제(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에 대한 이야기로, 친척 부모 중 이북성향이 있으면 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다룬 영화다. 그 외 ‘남부군’(1990)은 빨치산의 시각으로 만든 영화고, ‘하얀전쟁’(1992)에서는 베트남전쟁에 나간 용맹한 국군을 보여줬다. 전쟁의 후유증, 고통 이런 것들을 다뤘다. 경찰의 비리를 다룬 ‘투캅스’(1993), 성공 위주로 가다가 결국 나락에 떨어지고 마는 ‘성공시대’(1988)가 있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꿔 미국에 불법 이민을 가서 결국 성공을 못하는 비극적 결말을 내는 ‘깊고 푸른 밤’(1985)도 있다. ‘고래 사냥’(1984)은 젊은이의 이상을 찾아 가는 이야기다.”

최근 CGV아트하우스가 개관한 ‘안성기 헌정관’이 생겼다. 한국 영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그의 과거의 노력과 그와 함께 그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영화인들의 현재의 뜻이 담겼다.

“헌정관은 날 통해 독립영화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뜻이다. 내 영화를 한 번씩 상영 한다는 건 좀 문턱을 낮춘단 의미다. 나를 소개하고 올리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기 힘든 독립영화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거다. 같이 영화를 보며 GV도 하고 그런 시간을 마련하면 사람들이 많이 와서 좀 더 같이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헌정관의 의미가 독립 영화에 대한 것이고 개인에 대한 건 아니라 생각한다.”

독립영화의 발전에 힘쓰고 영화계 환경을 개선시키는데 힘써온 그에게 최근 영화계의 큰 버팀목으로서 느끼는 점이나 부담감 등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또래 동료가 없다는 게 외롭다. 문성근 김명곤 등 비슷한 또래 배우가 있는데 본업에서 떠나 있다 보니 거의 외톨이가 되다시피 됐다. 요즘 배우들은 같이 올라가다보면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 그러다보면 선의의 경쟁이 돼 더 멋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난 그런 경쟁 없이 부전승으로 올라가다보니 좋긴 한데 가끔 외롭다.(웃음)”

그는 평생 영화를 할 마음을 먹은 뒤부터 ‘제대로’ 영화를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오랜 세월 살아왔다.

“영화를 평생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결국 성인이 돼 선택한 게 영화다. 어렸을 때야 그런 판단력이 없었고 ‘잘한다’ 하니 한 거다. 한 40년 전부터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어를 전공해 졸업하고 베트남에 가려 지원 했는데 파병금지로 더 이상 파병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우리 입장에선 베트남이 공산화 돼 베트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사용 할 수 없는 언어를 전공했기에 취직이 안됐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내 의지대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 160개의 작품을 했다. 어려서 한 70편 했고 이후에 한 90편 했다. 조금 나온 것도 다 포함해서인데 대부분 영화 중심에 선 영화다. 쉬지도 못하고 끌려 다니며 할 때가 있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 영화인으로서 살아온 그는 아직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그를 오랜 세월 ‘좋은 영화인’으로 인식되게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초심 같은 것, 이건 나에 대한 약속이죠. ‘사람은 상황·환경이 변해도 마음은 변하지 말아야 된다’ ‘느낌은 한결같아야 된다’는 (생각 같은)게 있어요. 인기 등에 휘둘리면 그 휘둘리는 느낌을 상대방이 보게 되니까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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