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상감독 say] 나홍진 감독의 잔혹 리얼리티 속 ‘럭셔리 의상의 함의’
- 입력 2016. 07.14. 18:08:14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추격자’ ‘황해’ ‘곡성’은 단어 하나만으로 영화의 무게가 온 몸과 신경으로 전달된다. 묵직한 영상과 외면하고 싶은 인간사가 뒤섞인 나홍진 감독의 연작인 이 세편의 영화는 제목을 듣자마자 뇌리에 박히는 첫인상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추격자' '황해' '곡성'
살인 피 도망, 평범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라면 평생 한번 접할까 말까한 키워드를 떠올리게 되지만, 낯설음에서 오는 거부감이 아닌, 외면하고 싶은 거북함이 작동하는 것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리얼리티 때문이다.
◆ 나홍진 감독의 하이퍼 리얼리티 속 ‘의상 철학’
나홍진 감독과 이 세편의 영화를 함께 한 채경화 영화의상 감독은 “나홍진 감독은 제아무리 시골사람이라도 옷을 입었을 때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옷태’를 중시한다”라며 옷 하나하나에도 철저한 나 감독의 철칙에 대해 언급했다. 이와 함께 현실보다 더 실제 같은 하이퍼 리얼리티를 완성하는데 의상에 예상치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공개했다.
나 감독의 영화에는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서로 대립각을 세운다. 잔혹한 살인이 등장하고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이 선과 악이 뒤엉킴에도 세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 모두가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치열함 때문이다.
◆ 스토리 보다 충격적인 ‘브랜드 리스트’
‘추격자’(2008년)는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과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 ‘황해’(2010년)는 조선족 김구남(하정우)과 살인청부업자 면가 면정학(김윤석)을 주인공으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 삶을 그린다. ‘곡성’은 경찰 종구와 무속인 일광(황정민)이 극의 중심을 이뤄 전작들에 비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듯하지만, 역시나 사건 속에 그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영화 '추격자' '황해'
채 감독은 “나홍진 감독 영화에는 럭셔리 브랜드 의상을 많이 사용했다”면서 생각지도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그녀가 밝힌 브랜드 리스트는 어둡고 음친한 영화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상상 그 이상이다.
김윤석은 ‘추격자’에서 ‘폴스미스’ 재킷, ‘듀퐁’과 ‘페라가모’ 셔츠를, ‘황해’에서 ‘제냐’ 재킷을 입고 나온다. 상대적으로 하정우는 가격대로 나뉘는 브랜드 평가기준에서는 김윤석에 비해 낮지만, ‘황해’에서 쓰고 나온 모자는 ‘DKNY’ 제품이고, 옷은 ‘랄프로렌’ ‘리바이스’가 그나마 가장 가격대가 낮은 제품이었다는 것.
또 ‘곡성’에서 황정민이 입고 나온 트레이닝 슈트는 ‘아디다스’가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한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 그 브랜드 그 제품이어야 했던 ‘절대불가 이유’
어두운 밤이 대부분인 배경에 흙탕물이 튀고 찢기는 극한의 상황을 담아낸 영화에 굳이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카메라에 담겨 관객에게 전달될 때까지 놓쳐서는 안 되는 리얼리티 때문이다.
‘추격자’에서 김윤석 의상 콘셉트는 ‘부패해서 쫓겨난 전직 경찰’이었고, 그런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럭셔리 브랜드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원래는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루이비통’ 셔츠를 생각했다”면서 김윤석에게 누구나 다 알법한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입힌 이유를 납득시켰다. ‘곡성’은 방향이 좀 달랐다. 황정민의 플라워 자수 와펜이 들어간 트레이닝 슈트는 곡성이라는 지역과 영화가 함의한 ‘꽃’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
이처럼 채 감독은 주인공들에게 영화의 콘셉트와 극 중 캐릭터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그에 적합한 브랜드와 제품을 선택했다.
그녀는 “사실 공포나 스릴러는 옷 벌수가 많지 않다. 감정을 전달하는데 상대적으로 옷의 벌수가 적은 것이 도움이 된다. 그만큼 디테일 표현이 중요하다"면서 “배우에게 옷을 입히는 것으로 의상팀의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관객에게 보이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결국 완성도는 일반 사람들이 옷을 선택하는 기준과 같다. 소재와 패턴이다. 그런데 이게 영화에서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나홍진 감독의 작품은 그녀가 영화의상을 담당해 화제가 된 ‘써니’ ‘쎄시봉’ ‘굿바이 싱글’ 같은 영화와는 극단적으로 다른 장르다. 채 감독은 이에 대해 “겁이 진짜 많다. 그런데 공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더욱 철저하게 관객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한다”라며 그녀가 애착 가는 작품들임을 강조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추격자’ ‘황해’ ‘곡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