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널’ 하정우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씨네리뷰]
- 입력 2016. 08.03. 19:09:48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김성훈 감독은 대범한 ‘풍자꾼’이다. 풍자와 유머. ‘터널’을 통해 두 가지를 모두 잡고자 하는 그의 목표가 통할 것 같다. 김 감독의 감각이 돋보이는 유머와 하정우의 쫄깃한 연기는 천생연분 궁합을 자랑한다.
‘터널’은 예상 보다 정면으로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다. 김 감독의 과감함은 관객의 속을 뻥 뚫는다. 그의 위트는 영화 초반부부터 시작해 러닝타임 내내 웃음 포인트를 제공하고 서양의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유머코드는 심플하지만 허를 찌르는 ‘한방’이 있다.
하정우의 유머 섞인 ‘쫄깃’한 연기는 빛을 발한다. 전작인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그랬듯 오롯이 연기 하나로 관객을 집중하게 한다. 단순한 행동 하나, 시선 하나로도 보는 재미를 주는 그의 맛깔스런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재미를 만들 수 없었을, 하정우에 최적화된 영화다.
자동차 영업대리점의 과장 정수(하정우)는 큰 계약 건을 앞두고 들뜬 기분으로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 홀로 갇히고 만다.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뿐. 그가 가진 것은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대형 터널 붕괴 사고 소식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정부는 긴급하게 사고 대책반을 꾸린다. 사고 대책반의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꽉 막혀버린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구조는 더디게만 진행된다. 한편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정수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통해 남편에게 희망을 전하며 그의 무사생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지지부진한 구조 작업은 결국 인근 제2터널 완공에 큰 차질을 주고 정수의 생존과 구조를 두고 여론이 분열되기 시작하는데… 과연 정수는 무사히 구조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끝까지 간다’(2013)로 관객의 심장을 조이는 연출을 보여주며 두각을 드러낸 김성훈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흔한 재난 영화의 공식을 깨고 통찰력이 담긴 유머요소를 집어넣음으로써 보다 가벼운, 독특한 재난 영화를 내놨다. 그런 가운데 사회비판적인 요소는 선명하게 담아내는 대범함도 갖췄다.
◆풍자 3단 콤보
“저 안에 사람이 갇혔다고요.” 영화 속 대사다. 사람이 갇혔단 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무심함이 새삼 드러나는 대사다. ‘생명’이라는 것이 간과된 요즘의 현실을 짚고 싶었다는 김 감독의 연출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영화 전반에는 사람에 대한 무심함이 얼마나 사회에 팽배해있는지가 드러나 있다. 터널 밖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수의 생존여부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일부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 언론인은 자신의 안위와 평안에 치중한 나머지 생명의 존엄에 대한 중요성을 상실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재난을 당한 정수와 정수를 구하려는 터널 밖 사람들의 대조된 모습을 보여주며 터널 밖 사회와 정부에 대한 무능함을 풍자한다.
먼저 이기적인 기자의 모습을 강조하며 언론을 비판하고, 허술한 구조 체계를 비판하며, 오만하고 어리석은 정부를 비판한다. 부실공사, 언론조작 등 각종 사회 문제를 한데모아 비판하고 정수의 시원한 외침을 통해 일부 국민의 마음을 대변한다.
정수의 아내 세현은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의 남편을 기다리다 사람들의 압박에 못이겨 포기하려 한다. 그녀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끝까지 남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지만, 구조 본부 대장 대경(오달수)은 투철한 직업의식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듯 세현보다 더 마지막까지 정수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생명의 존엄성을 ‘나 홀로’ 아는 듯한 그는 영화에서 가장 정의로운 인물이자 정수에겐 어둠 속의 한줄기 ‘빛’ 또는 ‘희망’ 같은 존재다. 어찌 보면 아직은 사회에 정의가 남아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인물일 수 있겠다.
◆하정우의 치열한 생존기
정수의 생존기는 영화의 핵심이 되는 볼거리다. 하정우를 대체할 배우가 떠오르지 않는 배역이다.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놀랍다.
처음 터널에 갇힌 정수는 당황한 모습이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상황에 적응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밖에서 그를 구조하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놓인 당사자보다 더 심각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터널안의 여유 있는 정수의 행동이 더 우스워 보이는 효과를 불어넣는다.
특히 하정우가 홀로 펼쳐 보이는 다양한 감정연기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의 연기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한데 정수는 하정우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영화에 재미를 주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극중 통통 튀는 대사 중엔 하정우의 재치 있는 애드리브가 포함된 것도 있다. 연기는 두말할 필요 없다.
상황에 동요해 당황하는 얼굴, 처절한 모습, 절망하고 슬퍼하는 감정의 표현 같은 것들은 많은 연기자들이 적절히 표현해낼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절묘하게 유머 포인트를 잡아 최대치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건 하정우 만의 장기다. 그런 그의 장점이 이 영화를 살린 가장 큰 요소다. 오는 10일 개봉. 러닝타임 126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