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혜옹주’ 권유진 vs ‘인천상륙작전’ 오상진, 시대극을 말하다 [영화의상 대담]
- 입력 2016. 08.17. 12:10:00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영화는 사실과 허구를 조합하는 재해석의 예술이다.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스텝들마다의 각기 다른 생각들이 재해석을 통해 하나의 메시지로 응집돼 폭발력을 갖게 된다.
권유진 감독, 오상진 실장
이렇게 구축된 메시지는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이퍼 리얼리티에서 판타지까지 전혀 다른 장르라고 해도 관객과의 공감은 대중예술인 영화에서 필요충분요건이다. 이런 이유로 판타지에 충실하기 위해 사실성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하이퍼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재해석을 하지 않을 경우 난공불락의 상황으로 빠져든다.
더욱이 근대사를 다룬 시대극에서 고증의 재현과 영화적 재해석의 조율은 미적 완성도와 스토리의 사실성 부여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8월 대표 화제작으로 꼽히는 영화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집계 기준 박스오피스 1, 2위에 나란히 오르면서 시대극의 영화적 상품가치를 입증했다. 또 다른 화제작 ‘터널’이 개봉한 후 12일에서 14일까지 집계 결과는 한 단계씩 밀려 2, 3위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톱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작과 끝의 긴 시간을 다룬 ‘덕혜옹주’와 첩보부대라는 낯선 소재를 다룬 ‘인천상륙작전’은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사제지간으로 얽혀 있는 두 명의 의상감독 손을 거쳐 완성됐다.
‘덕혜옹주’는 한국 영화에서 처음으로 영화의상을 독립 분야로 개척한 이해윤 의상감독의 아들이자 현재 활동하는 의상감독 중 원로이면서도 활발하게 현업에서 활동하는 권유진 감독이, ‘인천상륙작전’은 그 밑에서 영화의상 이력을 쌓은 오상진 실장이 맡았다.
이 두 영화는 각기 다른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권유진 감독과 오상진 실장은 시대극이라는 장르에서 쉽지 않은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1. 영화의 시작 ‘재현’, 고증을 거친 99% 리얼리티
권유진 감독은 사극과 시대극에 대해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역사적 사실이 명확한 시대극은 바꿀 수 없는 결과를 전제하고 있어 극의 긴장을 불어넣기가 쉽지 않다.영화 '덕혜옹주'
따라서 시대극은 전체적인 스토리 구도에서 치밀한 장치들을 필요로 하고, 그런 이유로 시대적 상황적 설정을 설명하는 장치로서, 또 인물 개개인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의상이 기여하는 역할이 절대적이다.
특히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처럼 대중이 더욱 또렷하게 기억하는 근대사의 경우 의상은 이중 삼중고를 떠안게 된다.
권유진 감독은 “부담이 엄청나다”라는 말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될 만한 시대극을 작업하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원판이 명확한 영화이기 때문에 원판보다 안 나올 수 있다는 경우의 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오상진 실장은 맥아더 장군을 다루는 데 따른 심리적 불안이 있었음을 언급했다.
그녀는 “맥아더 장군 역할을 맡은 리암 니슨이 미국 할리우드 배우다. 맥아더에 대한 사실성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발달한 미국 퀄리티에 비교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며 “‘한국 영화의상이 이 정도밖에 안 돼’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영화 '인천상륙작전'
#2. 영화의 힘 ‘재해석’, 콘셉트 살리는 1%의 허구
그러나 제아무리 비교될 자료가 명확한 시대극이라고 해도 영화의상의 재현과 재해석이 뚜렷한 비율로 나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재해석이 허구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사실 재해석은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분석한 후 어디에 힘을 실을지, 캐릭터마다 감정선은 어떻게 설정할지에 따라 첨가와 제거가 반복되면서 이뤄진다.
권 감독은 “사극은 고증이 절대적이다. 조선 시대는 전기 후기가 다 다르다. 그런데 가장 신경 쓰이는 장르는 시대극이다”라며 영화의상에서 시대극이 유달리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시대극은 사진이 자료로 남아있다. 그런데 사진대로 입혀놓으면 스타일이 살지 않는다. 영화 작업을 할 때마다 고증과 현실과의 경계에서 고민하게 된다. 고증을 완전히 무시하면 안 되고 그렇다고 퓨전이 되는 것은 더욱 싫고. 고증을 따라는 하되 거기에 포인트 하나를 잡는다”고 밝혔다.
권 감독에 따르면 재현이 중요한 사극에서마저 재해석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 그는 “영화 ‘광해’의 경우 당시 소매가 땅에 끌리도록 길었는데 길었다는 느낌만 주고 배우가 연기하는데 불편하지 않고 왕의 카리스마가 살 수 있게 소매 길이를 조정했다. 그래도 길이가 길어서 제작진과 배우 모두 낯설어했다”라며 고증과 재해석의 조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설명했다.
덧붙여 “덕혜옹주는 고증보다 영화적 요소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단 덕혜의 어린 시절 궁중 생활이나 고종과 찍었던 가족사진은 100% 고증에 충실했다”고 밝혔다.
오 실장은 “군복은 재해석이 특히 더 조심스럽다. 군복 마니아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들의 질문과 비난 세례가 이어지기 일쑤다”라며 전쟁 영화 의상 담당자로서 남다른 고충을 토로했다.
그녀는 “북한 군복은 소련군복을 그대로 받아 입어 이걸 그대로 재현할 경우 서양과 동양 체형이 다른 데서 오는 어색함이 있었다. 이에 이재한 감독이 북한장교 림계진 캐릭터를 또렷하게 부각하기 위해 독일군복 특유의 착용감을 살리자고 제안해 이를 적절하게 조합했다”고 제작과정을 밝혔다.
#3. 영화의 완성, 캐릭터 살리는 20%의 가치
2014년 영화 ‘국제시장’에 이어 2016년 8월 ‘덕혜옹주’로 대하 서사극 대가로서 면모로 보여준 권 감독은 영화에서 의상의 역할에 대해 “연기는 배우의 몫이고 의상은 조력자다. 영화에서 의상의 역할은 20%다”라며 배우가 의상에 앞섬을 강조했다.
그는 “의상은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 캐릭터를 표현하는 도구로, 20%가 적절하다”라며 의상감독으로서 철칙을 언급했다.
실제 작업에서 심각한 감정신의 경우 귀걸이와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는 다 뺀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는 “배우의 눈과 표정에 집중해야 하는데 액세서리는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감정 전달을 깨뜨려버린다. 사극이나 시대극에서는 더 심각해진다. 시대를 표현해주면 되는데 갑옷이 요란하게 은색 금색으로 치장하게 되면 게임 캐릭터처럼 보이게 된다”라며 의상이 배우보다 더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증이 요구되는 시대극에서 영화의상 20%는 배우를 낯선 시대 배경으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따라서 현대극과 달리 시대극에서 의상의 설득력은 20%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권 감독은 “‘덕혜옹주’에서 손혜진의 연기는 최고였다. 여배우는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는데 조선 귀국이 저지당하자 오열하는 장면은 정말 그렇게까지 할지 몰랐다”라며 배우의 힘을 확인했던 경험에 대해 밝혔다.
오 실장은 “이범수는 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셨다. 감정적으로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총을 직접 쏠까, 아니면 하룡에게 대신 쏘게 할까’가 끝까지 화두였다”라며 서슬 퍼런 잔인한 장면이 완성되기까지 배우 이범수의 갈등을 언급했다.
귀족적 선을 유지해오던 손예진은 이 장면에서 시녀 복순이 떠오르는 살짝 넉넉한 품의 코트를 입고 머리를 헝클어뜨림으로써 덕혜를 더욱 절박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냈다. 이범수는 좀 더 강한 군인 이미지를 위해 독일군 느낌을 원했고 재해석된 군복이 그런 감정을 싣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은 호불호가 엇갈리는 영화다. 그럼에도 이 두 영화가 흥행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받쳐주고 있는 영화의상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스토리에 힘을 실어주고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영화의상이 이 두 영화에서는 그림자 배우처럼, 주연 배우는 아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영화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 영화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