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OOK] ‘올레’ 아재패션 본색 ‘39세 공감 일탈여행기’
입력 2016. 08.25. 11:06:32

영화 '올레' 박희순 신하균 오만석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코스로 출근해 사무실 의자에 앉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해진 시간에 컴퓨터 화면을 켜는 순간 문득 ‘내가 여기 왜 있지?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거지?’라는 뜬금없는 의문이 몰려올 때가 있다.

영화 ‘올레’는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던져지는 사전 징후를 포착하지 못해 결국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인으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세 명 친구, 39세 남자들의 뜬금없는 제주도 일탈 여행기를 그린다.

대기업 과장으로 평탄한 삶을 살던 중필은 미혼이라는 이유로 희망퇴직자 명단이 오르고, 잘 나가던 뉴스 전문채널 아나운서 은동은 간암 선고를 받고 퇴직을 선택한다. 13년차 고시생 수탁은 사법고시 폐지로 최소한의 희망마저 사라진다.

불혹, 40세를 불과 몇 달 안 남긴 이들에게 찾아온 현실은 감당하기에 너무 버겁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의미를 담으려는 어설픈 진지함을 허락하지 않는 이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영화적 진지함에 대한 강박증을 벗어던지면서 획득한 리얼리티는 아재 본색을 재치 있게 담아내 더욱 배가됐다.

◆ 아재패션 본색 1. 2016 버전 검은색 정장


어느 날 갑자기 대학시절 만인의 연인이었던 선미가 전한 부고 소식으로 제주도에 가기 위해 공항에서 이들 셋이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얼마나 리얼한 39세 아재들의 속내를 보여줄지 기대를 높인다.

상갓집을 가야 하는 명분은 있지만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블랙슈트를 입고 등장한다. 서울근교도 아닌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없는 여행길에 나섰지만, 이들은 손에 든 짐도 없이 빈손에 검은색 정장이 전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옷장에 걸어 놨던 문상용 검은색 정장을 대충 걸쳤던 20세기 아저씨가 아닌 2016년 버전의 아재 취향에 맞춰 블랙 슈트 안에 세심한 설정을 숨겨 놨다.

영화의상을 담당한 오상진 실장은 “중필과 은동은 직업과 성격이 명확하게 달라 블랙 슈트 역시 그에 맞춰 제작했다”면서 “중필 역의 신하균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대기업 과장으로 영국 젠틀맨 스타일의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느낌을 살렸다. 반면 은동 역의 오만석은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로 신하균에 비해 포멀 코드가 강조된 이탈리안 스타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신하균은 영국 젠틀맨룩의 정석인 몸에 딱 맞는 재단과 이런 피트를 살리기 위해 하드한 원단을, 오만석은 상대에게 편하게 보이는 인상을 주기 위해 흐르는 듯한 원단을 사용했다는 것.

언뜻 그냥 보아넘길 수 있지만, 이러한 세심한 설정이 사회적으로 평탄한 길을 걸어오던 이들이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서 느끼는 절망의 깊이를 관객에 전달한다.

◆ 아재패션 본색 2. 2016 버전 하와이안 셔츠

상갓집 문상으로 내려 온 제주도에서 이들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일탈 여행기가 시작된다. 공항에서부터 ‘섹스’를 외치던 수탁 역의 박희순은 렌트한 오픈카에 친구들을 태워 그의 최후 일탈에 동참하게 한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수탁이 바라마지 않던 여자 헌팅이 계속 꼬이면서 하루 이틀 여행이 길어진다. 결국 그들은 단벌 정장을 벗어 던지고 게스트하우스에 걸려있던 하와이안 셔츠로 갈아입고 본격적인 일탈을 감행한다.

하와이안 셔츠 역시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촌티 폴폴 나는 착장이 아닌 몸에 적당하게 여유 있는 피트에 하프팬츠와 깔 맞춤까지 고려해 딱 2016년 39세 남자들의 감성에 맞게 스타일링 수위를 조절했다.

오 실장은 “지난해 5월 하와이안 셔츠 유행이 오기 직전에 촬영해 원하는 디자인을 찾을 수 없어서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원하는 컬러를 찾아 제작했다”고 과정에 대한 밝혔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하와이안 셔츠와 하프팬츠의 조합은 2016년 여름, 직장인 남성들의 일탈을 자극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영화는 아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재영화지만, 남자들이라면 200%, 성인여자들은 100% 공감 가능한 유머코드로 상영시간 103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무엇보다 통상적인 뻔한 설정이 아닌 시대 흐름에 나름 유연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개성을 드러낼 줄 아는 2016년 아재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세심한 설정들이 몰입도를 높인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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