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상감독 say] ‘올레’ 신하균 오만석 박희순 ‘블랙 슈트’, 남자 취향 읽기
- 입력 2016. 08.31. 15:36:28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여름 소작을 표방한 영화 ‘올레’는 불혹 40을 앞둔 39세 세 남자의 일탈 여행기로 콘셉트 그대로 소소한 재밋거리가 여기저기 배치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힘들게 일상을 버텨온 고시생 13년차 수탁 박희순, 대기업 과장 중필 신하균, 뉴스전문 케이블TV 아나운서 은동 오만석 세 대학동창들의 일상은 짠 내 가득하지만,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가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는 평범한 39세 남자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가운데 툭 튀어나오는 상황이다.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으로 그려지는 이 영화는 그래서인지 세 명의 주인공의 의상 역시 현실 남자들의 공감할만한 치밀한 설정으로 리얼리티를 높였다.
대학생 시절 퀸카였던 선미로부터 걸려온 부고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내려가게 된 세 친구는 문상의 기본 요건인 블랙 슈트 차림으로 인천공항에서 만난다.
이들이 입은 블랙 슈트는 언뜻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재에서 패턴까지 다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는 마구잡이로 던져진 것이 아닌 극 중 역할과 최근 주목받는 ‘아재 패션’의 주역인 30대들의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근거한 것이다.
신하균은 대기업 과장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출근길에 마주치는 김밥 파는 아주머니를 모른 척하지 못하는 심성을 가진 바른 사나이다. 따라서 정장도 몸에 착 달라붙는 패턴으로 트렌디함을 놓치지 않으면서 각을 살려 가벼워 보이지 않게 해 극 중 캐릭터를 살렸다.
영화의상을 담당한 오상진 실장은 “신하균은 폭이 넓은 라펠과 몸을 꽉 조이는 피트로 영국 젠틀맨 느낌을 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오만석은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로 신하균과 달리 편안해 보이는 느낌으로 같은 블랙슈트지만 전혀 다른 설정이 들어갔다. 오 실장은 “신하균에 비해서는 포멀하게 제작했다. 이탈리안 클래식에서 모티브를 따와 원단도 흐르는 듯한 느낌을 선택했고 피트도 살짝 여유를 줬다”고 밝혔다.
극의 갈등 유발자 박희순은 이들 둘과는 완전히 다른 빌려 입은 정장으로 사회로부터 분리된 고시생의 아픔이 깔려있다. 상갓집을 가야함에도 검은색 정장을 가지고 있지도 살 여유도 없어 옆방 고시생에게 체크패턴 재킷과 슬랙스의 콤비네이션 슈트를 빌려 입은, 39세 남자라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체면치레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다.
오 실장은 “애초 콘셉트는 시골 영감 같은 옷이었다. 터질 듯이 꽉 끼는 사이즈에 소매와 바지 길이 맞지 않아 깡똥하게 올라가도록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박희순의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든 탓에 원하는 느낌이 완벽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애처로울 정도로 마른 몸과 몸에 맞지 않은 작은 옷이 문드러진 속과 과도한 여자에 대한 집착의 이중적 모습을 살려냈다.
남자들은 정장에 매우 예민하다. 여자들이 옷을 선택할 때 유행이 무언인가에 집착한다면 남자들은 옷의 패턴이 자신에게 맞는지에 더 집중한다. 따라서 한 번 자신에 맞는 패턴으로 제작된 옷을 찾으면 해당 브랜드에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
중필과 은동 역을 맡은 신하균과 오만석은 이런 남자들의 정장에 대한 까다로운 취향을 잘 녹여냈다. 또 세련된 아저씨를 상징하는 ‘아재 패션’으로 최근 트렌드까지 받아들이는 여유를 보여줬다. 박희순은 경쟁 사회에서 매몰돼가는 수탁을 몸에 맞지 않는 정장으로 절묘하게 풀어내 ‘올레’의 웃음코드에 진정성을 부여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