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정’ 송강호, 디테일한 연기로 표현해낸 의뭉스러운 회색분자 [인터뷰]
- 입력 2016. 09.01. 09:51:28
- [시크뉴스 이보라 기자] “이정출이라는 인물을 통해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 삶의 방향성에 대한 부분들을 고민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영화 ‘밀정’ 속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은 황옥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로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 생존을 위해 친일과 항일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갈등한다.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영화다.
‘밀정’은 인물의 내면을 쫓아가는 영화로 속내를 감춘 복잡미묘한 인물인 이정출은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는 시선처리나 눈빛 등을 통해 드러난다.
“특히 이정출은 내면의 모습을 항상 감추고 있기 때문에 디테일한 연기들이 중요했다. 김우진(공유)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첫 시퀀스에서는 김장옥(박희순)의 목숨이라도 살려주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줬지만 냉철하고 냉정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은 김우진을 만났을 때 보여줬다. 그런 시점에서 눈빛이나 각도 이런 것을 통해 입체적인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이정출은 과거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하던 인물로 의열단의 핵심세력인 김장옥과 친구 사이였다. 하지만 그는 일본 경찰이 됐고 김우진과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을 만나 또 다시 친일과 항일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송강호는 그가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정출이라는 인물이 크나큰 개연성을 띄고 변심하지는 않는다. 이정출이 가진 내면의 마음의 짐이 조금씩 삐져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것이 켜켜이 쌓이다가 정채산을 만나 회유를 당하고 연계순(한지민)을 직접 고문까지 하는 것들이 마음에 켜켜이 쌓이면서 그런 디테일들이 큰 세계관을 만들어줬다. 그것이 김지운 감독의 선택이었고 방법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그 시대의 아픔과 그 시대를 살아왔던 깊이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큰 사건을 통해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것는 방법보다 켜켜이 쌓여가는 것들로 인한 인물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을 선택하신 것 같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들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밀정’은 송강호에게 좀 더 다르게 다가왔다. 송강호는 ‘밀정’ 시나리오를 보고 들었던 생각들에 대해 털어놨다.
“적도 아니고 동지도 아닌 것이 생존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시대를 관통했던 인물이 있었을 테고 그 인물들은 단순한 생각으로 시대를 관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내적인 회오리가 존재했을 텐데 그런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 가장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김지운 감독님이 그전에 해온 수많은 작품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것이 새로웠다. 작가적인 욕심보다는 오롯이 시대적 분위기와 아픔을 그리면서 관객과 대중적으로 소통하고 싶어하는 김지운 감독님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새로웠다.”
‘암살’ ‘귀향’ ‘동주’ ‘덕혜옹주’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 비해 ‘밀정’은 신파적인 요소를 덜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송강호는 “애초에 ‘밀정’이라는 영화가 신파적 요소를 갖고 출발한건 아닌 것 같다. 완성된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더 뜨거워지고 감정이 풍성해졌는데 처음 시나리오는 정말 건조하고 느와르풍의 영화였다”고 설명했다.
송강호는 ‘밀정’ 촬영 전 상해 임시정부를 방문했고 촬영하면서 서대문형무소를 처음으로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경험들은 송강호가 이정출을 연기하면서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정출은 막연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해 임시정부에 일반 관광객분들도 오시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울컥하면서 마음이 숙연해지더라. 서대문형무소도 이 나이에 처음 가봤는데 그 곳에서 비극적인 장면을 연기하면서 이런 곳에서 옥고를 치르시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을 선열들이 떠오르다보니 남다르게 느끼게 됐다.”
송강호는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시대를 살아온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유머를 포함하는 등 그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이러한 유머는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그 유머에는 송강호의 철학이 담겨있었다.
“관객들에게 쉬어갈 수 있는 장면을 마련해주기 위한 의도를 갖고 연기한 건 아니었다. 유머는 어느 때나 존재한다. 삶 자체에 희노애락이 다 들어가 있듯이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지 않나 싶었다. 행복한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 우울한 마음이 있듯이 유머도 계산적으로 한 것이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연기한지 20년이 넘어가는 그에게도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은 있었다. 현장에서 제일 선배라는 것이었다. 20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느끼는 어려움이었다.
“현장에 가면 어느덧 제가 제일 선배다. 배우, 스태프를 둘러봐도 제가 제일 선배고 심지어 제작자, 감독도 후배다. 이런 경우가 아주 자주 접하게 되는 현실인데 그런 지점에서 가장 어려운 건 전체적인 중심이 돼줘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적인 측면도 그렇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특히 그렇다. 힘들다기보다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지금 촬영 중인 ‘택시운전사’가 딱 그 경운데 그래서 좋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이보라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