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운 감독 “‘밀정’은 새로운 시도, 실낱같지만 희망적 메시지 담았다” [인터뷰]
- 입력 2016. 09.02. 10:46:52
- [시크뉴스 이보라 기자] “경계선에 선 사람들을 통해서 모순된 그 시대를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밀정’은 그동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암살’ ‘동주’ ‘귀향’ ‘덕혜옹주’ 등과 확연한 차이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경계에 선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영화다.
김지운 감독은 경계선에 선 인물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 “그 시대의 모순을 집약한 인물이 밀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항일과 친일을 왔다갔다하고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나를 그 인물을 통해 제기했다. 불합리, 모순, 아이러니를 집약한 인물 형태가 밀정이었고 ‘이 사람의 내면의 변화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윤리 가지고 갈 것인가’가 ‘밀정’의 주제다.”
‘밀정’은 인물의 내면을 쫓아가는 영화로 인물들의 시선 처리나 눈빛 등을 통한 표현이 섬세한 연기가 중요했다. 김지운 감독은 이를 위해 배우들에게 스몰액팅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연기자들의 상상력과 판타지를 존중하고 믿었다. 그러면서 제가 조금씩 톤을 맞춰가는 정도였다. 아주 섬세하게 연기 디렉션을 줬고 배우들에게 요구한 게 스몰액팅이었다. 그 대전제는 이안에 누군가 밀정이라고 전제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럼 자연스럽게 표현들이 섬세하고 미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 모르게 저 사람과 내가 뭔가 주고받으려면 이안의 공기를 아주 민감하게 감지해야하고 이 사람의 시선을 바꿔야할 게 아닌가. 그런 것들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일차적인 연기가 아니기 때문에 묻혀갔을 수도 있겠지만 섬세한 연기들을 보여줬기 때문에 전반부에서 인물들의 팽팽함, 긴장감들이 그런데서 생겨났다.”
‘밀정’은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등 영화는 배우의 연기와 그 앙상블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훌륭한 배우들의 앙상블에 무임승차하면서 따라간 느낌”이라고 겸손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인 미장센같은 것들에 더 집중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기차시퀀스를 들 수가 있는데 그 시대의 세파를 견뎌내던 이정출과 김우진(공유) 두 인물을 기차 안에 집어넣고 그 안에서 그들의 신념 등을 표현하려 했다. 김우진은 시대의 세파를 온몸으로 가로지르면서 돌파해나가는 신념의 인간으로서 기차를 왔다갔다했고 이정출은 그 시대를 겪으면서 갈팡질팡하는 인물을 그 안에 넣었다. 또 폭탄을 옮기는 운송기관인 기차를 이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역사 시간성으로 보고 대면하고 있는 두 인물의 변별력을 통해서 주제를 전하려 했다.”
‘밀정’에서 기차시퀀스는 브릿지 역할을 한다. 김지운 감독은 “기차시퀀스는 ‘밀정’의 하이라이트이자 분수령”이라며 기차시퀀스에서 보여줬던 미장센에 대해 설명했다. ‘밀정’에서 기차시퀀스는 첩보물로서 액션을 통한 재미를 주는 장면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하시모토가 식당칸에 가는 장면에서 하시모토의 뒷모습, 이정출과 김우진의 위축된 모습으로 권력과 역학이 바뀌어버리는 걸 표현했다. 천천히 뒤돌아보거나 승무원이 병을 딱 땄을 때 깜짝 놀라는 모습 등으로 초긴장상태의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 대사나 플롯이 없어도 장면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것들을 미장센을 통해 표현했고 그런 것들은 제가 해야하는 것들이었다.”
영화 ‘조용한 가족’ ‘반칙왕’ ‘달콤한 인생’ ‘장화 홍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등 매번 특유의 미장센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던 김지운 감독은 ‘밀정’에서도 역시 그만의 미장센으로 색다른 스파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블루, 블랙 등 차가운 색감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와 또 다른 분위기를 냈다. 또 ‘밀정’이 다른 영화와 다른 분위기를 갖는데는 음악도 한몫했다. 장면과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사용하면서 아이러니를 유발했다.
“재즈같은 경우는 비극적인 장면에서 오히려 감미로운 음악을 넣으면서 비극성을 더 강조해 아이러니를 유발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런 감각적인 이유뿐 아니라 1920년대는 스윙재즈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 있고 선열들은 그런 감미로운 음악 등을 향유할 수 없었지 않나. 그런 상태를 더 비극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래서 같은 시대 음악을 사용하게 됐다. 볼레로도 마찬가지로 20년대 처음 나왔다. 연회장의 문이 열릴 때 음악을 더 밀어붙여 감정의 환기, 정서적인 연결감 등 새로운 감정을 야기시키려 했다.”
김지운 감독은 언론시사회 당시 “처음에는 콜드느와르라는 장르로 설정하고 스파이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만들다보니 명칭과 다르게 뜨거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기차시퀀스 이후 크게 달라진다. 또 '밀정'은 그가 그동안 해온 영화와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영화다.
“스파이극으로 전개되다가 의열단의 생존의 문제가 그려지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그러면서 인간을 들여다보게 되는 지점들이 생기면서 전반부는 차갑고 치밀한 전개로 이어지다가 의열단의 생존의 위협의 순간을 그리면서 사람을 그리게 됐다. 의열단을 다루고 있어서 그랬는지 약간 뜨거워졌다. 스타일 고수나 영화적 자의식을 넣기보다는 사람을 따라가면서 결말을 지은 부분들이 저한테는 다소 새로운 시도였다. 중간에 기차신이 있는데 기차신 전과 후의 다른 온도가 보여졌으면 했다. 그런 지점에서 새롭게 보시는 부분도 있고 감독이 다르게 영화를 모색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도 드셨을 것 같다. 제 영화가 다소 어둡고 언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가 많았는데 ‘밀정’은 실낱같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보라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