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산자, 대동여지도’ 눈물겨운 김정호의 애민사상 [씨네리뷰]
- 입력 2016. 09.07. 09:44:29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은교’로 유명한 소설가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古山子)’가 강우석 감독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소설을 뼈대로 많이 다른 내용이 나왔기에 영화화란 말 보단 재탄생이란 말이 더 정확하겠다.
김정호란 인물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극히 적어 영화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감독의 상상력이 영화를 이끌었고 때문에 그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할 수 있다.
강우석 감독의 스무 번째 영화이자 첫 사극 도전작인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제작 시네마서비스)‘가 7일 관객을 찾는다. 지도가 곧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시대,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두 발로 전국 팔도를 누빈 고산자 김정호(차승원). 하나뿐인 딸 순실(남지현)이 어느새 열여섯 나이가 되는지도 잊은 채 지도에 미친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에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지도에 몰두한다.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들과 나누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대동여지도의 완성과 목판 제작에 혼신을 다하지만 안동 김씨 문중과 대립각을 세우던 흥선대원군(유준상)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손에 넣어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데… 과연 김정호의 뜻은 이뤄질까.
‘고산자’는 역사적 사실을 고증한 영화가 아닌, 감독의 해석으로 창조된 영화다. 역사적 기록에 의한 사실은 김정호란 인물이 있었으며 그가 지도를 만들었다는 정도에서 그친다. 인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한 인물이기 때문에 내용은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동안 김정호의 삶이나 열정이 주는 감동은 미미하다. 실존한 위인의 삶과 업적이 실제가 아니란 것을 전제로 하고 영화를 보기 때문이다.
김정호란 인물에 대해선 식민사관에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사실 확인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영화를 보는 동안은 심지어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 인물 자체를 제외하곤 김정호에 대해 다룬다는 것에 대한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영화에서 다루는 큰 줄기는 지도꾼 김정호의 지도에 대한 열정, 딸을 향한 부정, 지도와 딸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그 모든 걸 포괄하는 애민사상이다, 강 감독은 김정호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지도를 사용할 수 있게 대동여지도를 목판으로 만들어 인쇄, 백성들에게 나눠주려는 애민사상을 지닌 인물이란 해석을 전제로 연출했다. 이 애민사상은 상당히 짙어서 딸이나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다.
일반적으로 관객은 영화가 지도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지도꾼으로서의 김정호의 모습을 가장 중점적으로, 디테일하게 다룰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의례 위인에 대해 궁금해 하는 바는 그 인물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당초 김정호가 실제 조선팔도를 돌며 지도를 만들었느냐 기존의지도만을 참고해 만들었느냐하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기왕 그가 전국을 돌았다는 설정이라면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지도를 그려내기 위해 팔도를 돌며 지형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그가 겪는 고난과 시련 등 대동여지도의 탄생 과정을 집중 조명하는 것이다.
영화의 홍보에 있어서도 마라도에서 백두산까지 최남‧북단을 CG(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두 실제 발품을 팔아 촬영했음을 강조한 만큼, 뛰어난 영상미를 느낄 수 있는 장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다면 금상첨화다.
많은 관객이 기록엔 없지만 그가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지도를 만들었는지를 상상하고 장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지도를 만들어가며 위대한 업적을 이뤄가는 그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을 누리려는 기대감을 갖고 극장을 찾을 터다. 그러나 팔도 비경을 담은 영상은 초반부에 한꺼번에 스치듯 지나가면서 그의 업적을 따라가려 우리나라 곳곳을 찾아가 촬영했다는 의미의 무게감을 떨어뜨리는 꼴이 돼버렸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조금 의아하게도 영화는 정치에 무게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지도꾼’이란 단어에서 떠오르기 쉬운 설정은 아니다. 김정호의 지도 이야기라기 보단 그의 애민정신을 강조하는 가운데 정치세력과의 갈등을 다룬다. 지도 제작보단 정치적 이유로 고초를 겪고 마지막 까지 애민정신을 불태운다. 여기에 딸과의 이야기로 감동코드를 더했다.
강 감독은 언론시사회 후 기자회견을 통해 “유머러스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삼시세끼’ ‘네비게이션’등 다소 과감한 소재로 웃음 소재를 심어 넣었는데 이것이 조금은 몰입을 방해하면서 흐름을 깬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특별히 흠 잡을 데가 없다. 차승원은 배우 자신이 의도한 대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위인의 이미지 보단 인간적인 김정호의 모습을 표현했다. 흥선대원군을 연기한 유준상 역시 카리스마를 적절히 드러냈으며 바우 역의 김인권, 순실 역의 남지현, 여주댁 신동미 등도 무난히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 냈다.
식민사관을 의식한 탓인지 전반적으로 구성이 밋밋한 면이 없지 않다.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가고 그 과정과 결말은 지극히 감독의 시선으로 본, 철저히 감독에 의한 영화다. 러닝타임 129분. 전체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