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STORY] ‘도리안 그레이’ 창작이란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 입력 2016. 09.08. 13:16:39
- [시크뉴스 조혜진 기자] “배질 홀워드는 내가 생각하는 나이고, 헨리 워튼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이고, 도리안 그레이는 내가 다른 시대에서 되고픈 나이다”
‘도리안 그레이’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원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강상 도리안 그레이와 그가 사는 세상을 그린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한국 최초로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됐다.
당대 가장 아름다운 인간 도리안 그레이 역에 김준수가 캐스팅 되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 배질 홀워드 역에 최재웅, 도리안을 통해 자신의 본능을 대리로 경험하는 인물 헨리 워튼 역에는 박은태가 열연했다. 마지막으로 도리안 그레이의 첫 사랑이자 첫 파멸의 대상인 시빌 베인 역에 신예 홍서영이 출연을 확정하면서 탄탄한 라인업이 완성됐다.
헨리 워튼과 도리안 그레이가 블랙과 화이트로 대조를 이루는 의상을 입어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김준수가 보여주는 도리안의 수려한 손동작, 화려한 춤, 유혹적인 몸선들이 관객의 집중도를 높인다. 뮤지컬 ‘투사 기법’으로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영상을 막에 투사하는 것 역시 순간 집중력이 높이는 것에는 확실하게 일조했다.
또 엄청난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는 ‘흥행 괴물’ 김준수가 수려한 외모와 순수한 성품을 가진 미소년에서 치명적인 향락과 유혹에 빠져 파멸하게 되는 도리안 그레이 역에 캐스팅되면서 티켓의 흥행이 보장됐다.
그러나 긴밀하게 이어지는 연출의 연결고리들이 헐거워 김준수가 아닌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재탄생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던 관객들이라면 실망을 감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도리안 그레이가 파멸과 향락의 길로 빠질 수밖에 없던 이유와 배질이 가진 도리안을 향한 안타까운 연민과 사랑이 어떻게 켜켜이 쌓이는지 관객들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개연성 없는 전개가 아쉬움을 남겼다.
◆ 연계성 없는 전개 1 ‘도리안을 파멸로 이끄는 헨리 워튼’
옥스퍼드 출신의 냉정한 천재이자 차가운 이성을 스스로 억제하며 ‘도리안’을 통해 자신의 본능을 대리로 경험하게 되는 인물인 헨리 워튼. 그는 순수한 도리안 그레이의 영혼을 유혹과 향락을 추구하는 쾌락주의자로 만들게 되는 결정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뮤지컬 속에는 도리안 그레이가 쾌락을 추구하게 된 확실한 ‘방아쇠’가 없다.
헨리 워튼은 오직 말로서 그를 유혹한다. 헨리는 도리안에게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은 오직 유혹에 굴복하는 것뿐이야”라거나 “저 초상화 속은 젊음과 아름다움은 한순간이야. 현재를 즐겨”라는 말들로 그를 쾌락의 길로 유도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떤 헨리의 행동에 의해 도리안이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입 발린 말로 인해 수동적으로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도리안 그레이에 관객들은 완벽하게 몰입할 수 없다.
‘완벽한 외모와 착한 심성을 모두 갖춘 인간’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위해 도리안 그레이를 이용하는 헨리 워튼은 끝내 그의 변화를 모두 지켜보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처음과 달리 흉측해지는 도리안 그레이를 보는 헨리 워튼의 혼돈 섞인 마음 또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과 장치가 부족했다.
◆ 연계성 없는 전개 2 ‘배질과 도리안의 사랑’
극 중 모든 사건의 시작은 배질이 도리안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면서 시작된다. 배질이 그림 속 도리안 그레이에 대해 “육체와 영혼의 완벽한 조화”라고 설명한다. 이후 헨리는 배질의 작업실에서 초상화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도리안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화려한 언변으로 ‘쾌락’과 ‘향락’을 추구하게 되면 더욱 즐겁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한다. 도리안은 끝내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야”라고 말하며 쾌락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
쾌락을 추구하며 흉측하게 변해가는 도리안 그레이의 영혼을 눈으로 목격하는 배질은 자신의 그림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일어난 것 같아 힘들어 한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전개로 그려진다. 하지만 공연 후반 배질과 도리안은 뜬금없는 동성애 로맨스를 그리게 되고, 베드신까지 이뤄진다.
이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오게 된다. 갑작스럽게 초상화를 찾는 배질에게 “왜 그렇게 초상화에 집착해. 사실은 날 사랑하는 거 아니야, 배질?”이라고 말하는 도리안은 치명적이고 매혹적이며 섹시하다. 곧이어 배질은 “그래, 맞아. 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고 두 사람이 끌어안으며 무대의 조명이 꺼지게 된다.
탄탄히 쌓인 두 사람의 사랑이 아닌 갑작스러운 감정 찌르기와 고백으로 인해 이뤄지는 동성애 로맨스는 관객들의 당황스러움을 불러 오기에 충분했다.
◆ 그럼에도 ‘도리안 그레이=김준수’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연출진이 ‘도리안 그레이’ 역에 김준수를 캐스팅해야만 했던 이유는 공연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화려한 춤이 곁들여지는 1부의 마지막과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큰 ‘수려한 외모와 순수한 영혼을 가진 미소년’ 도리안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김준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캐릭터 소화력은 완벽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리안은 자칫 잘못 연기하면 허영과 자만심에 가득 찬 인물로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김준수는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눈빛으로 평면적인 도리안 그레이라는 인물들 채워 넣고, 자신의 특기이자 장점인 춤과 노래로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도리안의 감정 변화를 모든 뮤지컬을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다. 김준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마지막 자살의 순간까지 아름다운 도리안 그레이를 연기했다.
[조혜진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 씨제스컬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