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년 감독인생 강우석이 고산자를 만났을 때 [인터뷰]
- 입력 2016. 09.12. 08:55:07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중요한건 ‘왜 목판인가’ 하는 거예요. 김정호 이전에도 우리나라 지도의 윤곽이 잡혀 있었지만 (모두의 앞에서)지도를 펼치고 하는 그것이 말이 된다 하면 괜찮다고 봐요. 그가 지도를 그려야한다는 결심으로 산을 오르고 한다는 그런 내용이 곡해된다 하더라도 말이죠.”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강우석 감독을 만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제작 시네마서비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강 감독은 ‘김정호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지도를 사용할 수 있게 대동여지도를 목판으로 만들어 인쇄해 이를 백성에게 나눠주려 했다’며 그의 애민정신을 영화의 핵심이라 강조했다.
“(영화를 통해) 지도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게 아니다. (김정호는) ‘지도가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는 것, 그거 하려는 사람인데 그거 빼앗고 그러지 않나. 아무리 강자가 권력으로 짓밟고 해도 (목판을) 빼앗기지 않겠다며 사람들에게 다 보라고 알린다. 기자정신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도를 펼치는 장면을 시장통에서 할까 하다 없는 사람에게만 알리는 거 아닐까 싶었다. 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모두 다 보라는 뜻에서 광화문 한복판에서 했다. 영화에서 ‘우리나라가 저렇게 생겼나’ 하는 이도 있잖느냐. 독도도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 김정호가 먼저 그린 청구도엔 독도가 있다. 대동여지도 초본엔 독도가 없는데 나중에 (필사본에서) 발견한다. 청구도에선 독도를 남들 주는 걸로(앞서 제작된 다양한 지도와 지리지를 보면서) 집어넣었는데 여기선(대동여지도에선) 축척하느라 못 넣었거나 나중에 (필사본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소설가 박범신의 ‘고산자’를 읽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는 강 감독은 한편으론 자신이 김정호의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끝내 자신이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고 그렇게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후회할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지만 결국 뚝심으로 밀고 나가 관객 앞에 ‘고산자’를 내 놓을 수 있었다.
“감독으로서 (촬영이) 힘들지 않을 수 없다. ‘투캅스’ ‘공공의 적’은 육체보단 머리싸움이었으나 이건(‘고산자’는) 육체와의 싸움이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건 처음이다. 15~20초에 하나 찍으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안 되면 다른 곳을 찾았다. 나중엔 우리 차만 봐도 겁났다. 피곤한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르겠더라. 대동여지도를 바닥에 까는 장면처럼 ‘센 장면’을 찍고 나면 탈진했다. 몸과 머리가 다 탈진한 경우였다. 그래서 찾는 게 술이었다. 스태프에 가장 가까운 호프집에 차를 세우라고 했는데 늘 치킨집을 찾아오더라. 다함께 ‘치맥(치킨과 맥주)을 했다. 자주 마셔서 많이는 못 마셨지만 생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면 피로가 풀렸다. 스태프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치맥‘이다. 하도 가서 기겁을 한다.(웃음)”
그에게 소설 ‘고산자’를 읽고 영화화를 결심한 배경이 감독으로서의 욕심인지 상업영화로서의 성공을 직감한 것인지 물었다.
“관객이 많이 들어설만한 걸 원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얘기를 원했다. ‘투캅스’의 조선판인 ‘두포졸’은 전작을 이겼으면 했는데 이건(고산자) 한 번도 다뤄본 얘기가 아니고 실존인물을 연출해본 적도 없었기에 도전정신이 생겼다. 소설의 초반 이야기가 너무 가족사에 치우쳐 있고 힘든 얘기였는데 중반에서 엔딩까지가 좋더라. 목판 지도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 등 소셜네트워크가 분명했다. ‘왜 목판인가’라는 선명한 드라마가 있었는데 최정미 작가에 가볍게 풀자고 했다.”
‘가볍게 풀었다’는 그의 말 처럼 영화 ‘고산자’는 확실히 소설과 차이를 보인다.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은 강 감독의 손을 거쳐 한층 밝아졌다. ‘웃음’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영화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박범신의 당부가 그랬고, 강 감독의 생각이 그랬다.
“(박범신 작가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객석에 대고 ‘감독이 나보다 한수 위’라고 하더라. 영화 속 우리나라의 풍광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고 돌탑 쌓은 것을 확 짓밟는 장면에선 공권력을 짓밟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쉬운 점으로는 김정호의 어린 시절의 사연을 그렸으면 좀 더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라 얘기했는데 그렇게 한다면 두 시간 안에 이야기를 완성하진 못했을 거다. (박범신 작가에게) 감사드리는 건, 우리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원동력 되는 표현이 있었는데 ‘박범신의 고산자가 아닌 강우석의 고산자’를 찍어달라고 했다. ‘모든 감독이 원작에 짓 눌려 변형을 할 줄도 모르고 자신만의 것을 못 담는다. 너무 짓눌려 있다. 원작을 보는 느낌이 들면 안 된다. 원작처럼 무거운 것 보단 편하고 재밌게 찍어달라’고 했다. (코믹 요소를 넣는 건) 성격이기도 하고, 코믹 요소가 동반되면 뒤가 훨씬 세질 것이라 생각했다. 코미디 영화를 많이 해본 경험에서 온 생각이다. 김정호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넣은 것도 목판지도 제작에만 미친 것처럼 묘사하면 ‘무슨 사람이 그렇겠느냐’는 의구심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이웃 같은 그런 사람이 그런 위대한 일을 하면 더 잘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체관람가’를 염두에 두고 찍었다. 원작대로면 12세도 안 된다.”
영화에선 메인스토리가 시작되기 전, 장대한 대한민국의 절경이 초반에 프롤로그로 한꺼번에 지나간다. 강치를 제외하곤 CG(컴퓨터그래픽)를 사용하지 않았다. 무려 9개월 동안 계절의 변화까지 기다려 가며 실제 발품을 팔아 찍은 풍광은 오히려 CG처럼 보일 정도로 선명하고 아름답다. 그는 힘겹게 담아낸 이 놀랍고 경이로운 풍광을 영화 초반에 한꺼번에 흘려보냈다.
“메인스토리가 시작되기 전, 김정호 선생이 제주도 송악산에 오르고 마라도를 갈 때 지도를 펼친다. 완성된 지도를 갖고 답사하는 구나’라고 알면 좋은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도를 그리러 가는 것처럼, 식민사관으로 본다. 백두산을 놓고 보면, 대동여지도를 펼쳐놓고 있으면 거기를 안 찍을 수 없다. 여정은 묶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간 중간 풍광이 나오고 다시 지도를 만들고 하는 장면이 있으면 집중도가 떨어질 것 같아 여정이 담긴 풍광을 프롤로그에 묶어 넣었다.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으로 훑자’ 했다. 백두산은 크랭크인하기도 전에 찍었다. 광화문에서 지도를 펼치는 장면은 감동이 올까, 지도 펼치는 장면이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김정호가 지도에 왜 이렇게 몰두하고 왜 미쳐 돌아다니느냐에 대해선 그가 어릴 때 물과 산을 좋아했다는, 그에 대해 평해 놓은 기록이 있다. 스스로 호를 고산자(古山子), 즉 ‘옛 산의 아들’이라 지었는데 얼마나 대한민국 산하를 좋아하면 그렇게 지었을까 해서 (그가 지도에 몰두한 이유는 상세히) 안 넣어도 좋지 않나 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생겼습니까?’라는 대사나, 잘못된 지도 때문에 아버지와 일행이 떼죽음을 당한 설정 뒤엔 어떤 일을 해도 용인된다 생각했다.”
대중이 아는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위인이다.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지도학자로, 지식인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고산자’의 김정호는 지식인이라기 보단 개척자에 가깝다. 이에 대해 강 감독은 ‘김정호가 지식인임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며 ‘그의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는 강조를 안 해도 은연중에 드러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의 지식인으로서의 모습 보단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적인 면을 조명하는 데에 보다 중점을 둔 이유를 밝혔다.
“김정호는 평가에 의하면 실학자이자 지리학자 과학자 수학자 예술가다. ‘제 나라 백성이 아니면 누굴 믿습니까’라는 대사를 보면, 감옥에 잡혀가도 나라가 아니라 백성을 위하는 거 아니냐. 관객이 김정호에 대해 많이 배운 사람이라 느낄 수밖에 없다. 그건(김정호가 지식인이란 건) 전문가가 하는 얘기다. 지도를 그릴 때의 차승원(김정호 역)의 표정을 보라. 그가 똑똑하단 걸 설명 안 해도 관객이 알 거다. 아무나 독도를 보며 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육적 가치도 있다. 대동여지도에 대해 나도 잘못배우고 많은 사람이 그랬다. 어느 변호사가 제목을 보곤 내게 ‘너무 다들 아는 내용인 것 같다’고 하기에 ‘뭘 아느냐. 영화보고 말하라’고 했다. 나중에 ‘목판이었냐’며 놀라더라. 목판에 대해 ‘팔기위해 만든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영화에선 희화화 했는데, 공형진이 맡은 신원이란 인물이 김정호의 최대 후원자였다. 신원이 흥선대원군의 오른팔인데 김정호의 지도 제작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단 논리가 나온다. 흥선대원군은 이 지도를 나라가 소유해야하며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지도로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강 감독은 코믹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는 웃음을 좋아하고 웃음을 전파하고 싶어 한다. ‘고산자’에서도 곳곳에 코믹 요소를 심어 넣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몸을 푼 그는 이날 ‘조만간 코미디 영화를 내 놓을 것’이라 말했다. ‘웃음’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긴 호흡으로 설명했다.
“다른 건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하기 싫은 게 있다. 남보다 잘하는 것 같지 않아서다. 내게 ‘아가씨’를 찍으라고 하면 이민 갈 거다. 가수 조용필에게 클래식을 하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실미도’ 각본이 영화계에 20년을 돌며 여러 사람에게 갔다. 감독들이 다 책 놓고 가더라. 내가 찍는 걸 반대하기도 했는데 난 이미 실화인 실미도 사건에 ‘꽂혀’있었다. 촬영을 하기로 하고 후회했다. 너무 힘들었다. 섬에 아무것도 없었고 나무만 무성했다. 찾아낸 사진엔 부대가 있더라. 그래서 나무를 다 베고 ‘실미도’를 만들기로 했다. 난 꽂히면 간다. 그런데 아무리 좋아도 내가 자신 없으면 못한다. ‘투캅스’야 전공이니 들이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공공의 적’ ‘실미도’ 다 마찬가지다. ‘이끼’는 스릴러인데 웹툰이 정말 재미있어 만들었다. 웹툰이 거의 영화 영상이었다. 윤태호 작가를 만나 ‘내가 하겠다’고 했다. 전공이 아니라 좀 힘은 들었다.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등 영화제 상은 휩쓸었지만 ‘맘고생을 많이 해 위로해주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80~90년대 영화에서 포맷 포맷을 가져오는 감독들이 많기도 하고 ‘강우석 키드’를 자칭하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많다. 그런 현상을 보며 28년 감독 인생을 살아온 대선배인 그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보다가 나 혼자 빙긋 웃곤 하죠. ‘내 영화를 계속 보고 있구나’ (싶어서). 지들이 ‘강우석 키드’라 하는데 뭐라 할 수 없어요. 다른 성격의 감독도 나와야하는데 아쉽긴 해요. 박찬욱 처럼 뚝심 있게 가든지 나홍진 보세요. 누구 얼마나 더 죽이려는지.(웃음) 손님(관객)은 들었는데 감독을 알지 못하는 영화가 많아요. 관객이 덜 들어도 감독이 관심을 많이 받는 영화를 하는 감독들이 나중에 사고 쳐요. 다음 영화가 궁금한 그런 감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해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