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양복점에 켜켜이 쌓인 남성 시대社
입력 2016. 09.12. 13:39:40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지난 11일 8회 시청률이 30.2%로 30%대를 돌파했다.

시대 흐름을 비껴가는 양복점이 주말드라마에 의례 등장하는 ‘가족과 사랑’을 녹여낸 장소로서, 이웃과 어우러지는 장소로서 호소력 있게 다가서고 있다. 무엇보다 가정에서 사라지는 아빠의 자리를 일깨우고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양복점은 남성의 완벽한 드레스업 코드인 신사복을 맞춤 제작하는 곳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양장점과 함께 기성복이 대중화되기 전 부와 감각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 근대 양복점 남성사, 신사의 품격

우리나라에 양복점이 처음 문을 연 시기는 조선 고종 건양 1년, 1896년이다. 광화문 우체국 앞 일본인이 운영했던 히마다 양복점은 1876년 한일수호조약과 함께 양복이 보급되면서 필요에 의해 생기게 됐다.

양복점은 근대사에서 유행 발신지로서 기능하던 양장점과 달리 ‘품격’이라는 측면이 더 강조돼왔다.

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양복을 지어주며 부모와 자식 간에 진정한 의미의 성년식이 이뤄졌던 장소였다. 또 아들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격조 있는 선물이 아버지를 모시고 양복점에 가서 직접 치수를 재서 맞춘 양복이었다.

부모와 자식의 애틋함뿐 아니라 멋과 격을 아는 신사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모던보이들의 아지트로, 단순히 옷을 맞추는 것뿐 아니라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이처럼 신사의 자존심이자 사회적 상징으로서 양복점은 초고가 수입브랜드 유입과 다양한 가격대의 로컬 신사복 브랜드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 현대 양복점 남성사, 다름의 욕망

외환위기를 전후한 세기말 신사복은 로컬 브랜드 기준 정장 가격이 백만 원대를 넘어서는 고가에서 10만 원대까지 극과 극이 공존했다.

이 시기에 100수 200수의 출, 퇴근복으로 불가능할 법한 관리가 쉽지 않는 최고급 원단의 양복이 데일리 정장에 사용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기본 공임비도 안될 법한 10만 원대의 초저가 정장이 나오는 등 극단적 이분화 현상이 일어났다.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벌어진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은 대량소비사회의 획일화에 대한 강박증으로, 명동 및 신사동 등 몇몇 상권에 적은 규모이나마 존재했던 시내 양복점들을 일망타진해버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복점이 재평가 받고 있다. 비즈니스캐주얼 수요 증가로 급감한 슈트 수요가 회복조짐을 보이면서 슈트 선택에 유독 까다로운 남성들이 맞춤 슈트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맞춤 양복점 프렌차이즈가 유통망을 확장하는가 하면 디자이너 부띠끄 형식의 맞춤 양복점이 마니아를 층을 늘려가는 등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7,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만해도 동네에 하나쯤은 꼭 있었던 양복점의 복귀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상위 1% 내지는 특수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서 맞춤 양복이 자리를 잡아가 양복점이 역사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변화로 여겨지고 있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월계수 라사’ 회생 스토리는 이 같은 양복점의 역사적 흐름을 함께 하면서 남성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남자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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