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김인권 “지도 펼치는 바우, 기분 좋은 부담감” [인터뷰]
입력 2016. 09.13. 15:15:45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광화문에서 지도를 펼치는 장면이 중요하기에 모든 스태프들이 다 한 번씩 저와 얘기를 나눴어요. ‘광화문 신을 이렇게 만들고 있다’며 내게 보여주기도 했죠. 기분 좋은 부담감이었어요. 보조출연자들이 둘러싼 가운데 광화문에 지도가 펼쳐져 있으니까 느낌이 ‘울렁’하면서도 확신이 들었죠. ‘이 장면 오래 남겠구나’ 하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김인권(39)을 만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감독 강우석, 제작 시네마서비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고산자’에서 그는 김정호를 도와 대동여지도의 목판 제작을 돕는 조각장이 바우를 연기했다. 특히 광화문에서 대동여지도를 펼쳐 온 백성에게 공개하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 이 중요한 장면을 연기한 그는 속이 울렁일 정도의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배우로서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현장에 나가서 지도책을 어떻게 펼칠까 했는데 스태프가 다 세팅을 한 다음날 정말 화창했다. 지도책 펼치는 장면은 영화 찍는 내내 기분 좋은 부담감이었다. 모든 스태프가 지켜봤고 날씨도 좋고 촬영 후반에 찍어 감정선 잡기도 편했다. 펼치는 데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김정호 선생이 남긴 유산을 펼쳐지며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데 대동여지도의 예술혼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정말 기억에 남는 촬영 현장이다.”

김인권이 처음 바우란 인물을 만난 건 지인의 정보를 통해서다. 그토록 출연하고 싶었던 강우석 감독의 영화인데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배역이라니, 구미가 당기고도 남았을 만하다.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작은 역할 아니다’란 강 감독님의 말이 수락의 표현이었다. 안 보이는 역할인줄 알았는데 감사했다. 강우석 감독님 작품에 내가 덤볐다. 그전에도 강 감독님 작품을 하고 싶어 언저리서 맴돌았다. 하고 싶어도 참여 못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 꼭 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김정호 옆에 바우란 역이 있다. 네게 잘 어울린다’는 정보를 얻고 반가웠다. 시나리오를 구해 읽고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 행사도 다니고.(웃음) 1990년대, 내가 배우를 시작할 때쯤엔 소속사에서 접촉 한 게 아니라 배우가 영화사 가서 물 갈고 청소 열심히 하고 감독 집 앞에서 무릎 꿇고 그런 열의를 보여야 출연이 됐다. 강 감독님 영화의 캐스팅에 있어서도 그 시절에서 힌트를 얻어 열의를 다 했다. 후문에, 바우 역으로 20대 아이돌 제안이 많이 들어갔는데 감독님이 제치고 ‘김인권 같은 애 데려오라’고 했다더라. 그래서 날 데려갔다고 한다.”

‘고산자’는 9개월 동안 마라도에서 백두산까지 전국을 돌며 촬영했지만 예상과 달리 배우들에겐 비교적 촬영이 수월했던 영화다. 김정호 역을 맡은 차승원이 앞선 인터뷰를 통해 ‘고생 많이 했겠단 말을 들으면 살짝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 유준상도 그랬지만 김인권 역시 ‘정말 편했다’며 강 감독의 배우들을 배려하는 모습에 대해 연신 칭찬했다.

“현장은 정말 편했다. 워낙 감독님이 정확한 분이라 안 쓸 장면은 아예 안 찍는다. 이런 말 하면 농담인줄 아신다. 진짜 찍은 건 (영화에) 다 나온다. 테이크를 많이 안 간다. 감독님의 연출이 정확해 내가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감독님의 카메라 앞에 서면 저절로 바우가 된다. 광화문 신은 촬영 후반이라 추워져서 힘들 줄 알았는데 정말 따듯해졌다. 하늘이 도와주는 따스한 느낌에 감동 받았다. 백두산에서도 하늘이 열리고 구름이 둥글게 감쌌다. 그렇게 되기 십지 않은데 촬영한다고 열려있는 모습 같았다. 우연이었지만 하늘과 교감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광화문 신도 그 전날 지도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불었는데 다음 날 바람 한 점 없이 맑았다. 거의 두 세 테이크 만에 촬영이 끝났다.”

‘고산자’ 출연 배우들은 입을 모아 강우석 감독을 칭찬했다. 강 감독과 꼭 작업하고 싶었다는 그의 얘길 듣자니 대체 뭐가 그를 그리도 간절하게 했을까 싶었다. 배우 입장에서 강 감독은 어떤 매력을 지닌 인물인지 물었다.

“천재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연출자이신 것 같다. 한 컷 한 컷 컴퓨터처럼 정확하다. 최근 배우들이 자신의 스타일대로 (연기) 하는 양식이 됐는데 강 감독님 입장에선 그게 중구난방인거다. 강 감독님이 사극을 만났는데 감독님의 사극이 꼭 보고 싶었다. 내가 꾸며갈 대사가 전혀 없고 감독님의 성격이 저절로 내게 와서 감독님이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리듬을 만들어준다. 절대 배우를 지치게 안한다. 찍을 것만 찍는다. 매료됐다.”

바우는 김정호의 조력자이자 가족 같은 인물이다. 지도 제작을 돕고, 김정호가 오랜 기간 집을 비우면 김정호의 딸 순실(남지현)과 이웃 여주댁(신동미) 곁을 든든히 지킨다. 바우가 항상 김정호의 곁에 있는 인물인 만큼 김인권은 차승원과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길었다.

“좋았다. 밀도 있는 현장이었다. 그 어떤 현장보다도 강 감독님의 현장이 짧지만 강한 밀도를 갖고 있었다. 다들 정신이 현장에 가있었다. 즐겁긴 하지만 농담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연출자를 믿고 감독님이 ‘액션’ 하면 모두 초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정말 마술처럼 힘이 생겨 집중하게 됐다. 차승원 선배와 내가 마치 끌려가듯 김정호와 바우처럼 지냈다. 차승원 선배는 개그로 긴장을 풀어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개그인데 계속 한다. ‘삼시세끼’에서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다. 거기선 유해진 선배와 주고받는데 난 받질 못하니 차승원 선배 혼자 계속 연상 작용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낸다. 나도 슬금슬금 녹아들어갔다. 단점은 굳이 꼽자면 상대적으로 너무 멋지시니까. 목소리도 너무 좋으시고 하니 불편했다.(웃음)”

그는 특히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현장에서 긴장했다고 털어놨다. 반면 여유 있는 차승원의 모습이 부러웠다는 그에게 촬영 때마다 매번 긴장을 하느냐고 물었다.

“강우석 감독님 현장이다 보니 특히 더 긴장이 됐다. 조감독 조명감독 등 다 충무로 어른들이 었고 분위기가 남달랐다. 남지현과 나는 막내그룹이었다. 편한 현장 가면 나도 편안하게 있긴 하는데 이번 현장만큼은 정말 긴장됐다.”

그 역시 원작 소설을 읽었다. 어둡고 슬픈 원작은 지문이 길어 머릿속으로 영상화 되지 않았다. 이것이 영화화 돼 영상으로 봤을 땐 그 근사함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의 말대로 스토리 역시 차이가 있었다. 박범신 작가가 강우석 감독에게 당부한 대로 영화는 소설을 단지 영상화 한 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강 감독의 방식으로 재탄생했다.

“원작 소설에선 아무런 사건 일어나지 않는다. 지문이 정말 길다. 소리 내서 읽어야 할 정도다. 안 그럼 머리에서 날아갈 정도로 어려웠다. 소설을 읽는 문학적 맛이 있었다. 반면 비주얼 적으로 영상화 되는 맛은 적었다. 영상으로 근사하게 나왔다. 스토리의 중심점도 다른 것 같다.”

이후 그는 차기작 ‘순이’와 ‘타이칸: 불멸의 수호신’의 촬영을 앞두고 있다.

“‘순이’는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난 추적해 나가는 형사 역인데 집요하게 파는 이런 역할을 정말 해보고 싶었다. 심성 착한 베테랑 역할이고 학대당한 딸에 감정이 전이된다. 스릴러라 무섭기도 하고 시나리오가 재밌다. '타이칸‘은 마셜 아트를 소재로 한 액션영화로 우리나라에서 제작해 아시아에 배급한다.”

지난 1999년 영화 ‘송어’로 데뷔한 차근차근 필모를 쌓아 어느새 17년차 배우다. 시종일관 겸손한 그의 모습에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어떤 배역을 맡고 싶은지, 어떤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지를 들었다.

“운이 좋았다. 처음부터 완전 단역은 아니었다. 어렸을 땐 용기가 좀 넘치는 시절이라 감독 영화제작 연출 겸 주연작 등을 내놓고 싶었다. 지금은 그런 말씀을 드리기가 조심스럽다. 완벽한 청사진이 없는 한 입 밖으로 내는 건 어리석은 느낌이다. 쌓아가다 보면 훗날 자연스럽게 뭔가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려서부터 이소룡·성룡의 무술영화를 좋아해 호기심이 있어요. 영화라면 코믹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는 코믹첩보액션물을, 드라마라면 굉장히 고위층 회장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국장, 본부장, 서글픈 멜로나 천재의사, 대통령 그런 역할을 내가 하면 웃길 것 같아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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