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악과 악의 연결고리가 만들어낸 그들만의 세계 [씨네리뷰]
입력 2016. 09.22. 07:41:17
‘청불’ 노린 악인 지옥도 ‘인간과 짐승 사이’
악과 악의 연결고리, 그들만의 세계
목적을 위해 악해지나, 악해지고 싶어 핑계를 대나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해지는 건지, 악해지고 싶은 내면의 욕망이 목적을 만나 폭발한 건지 알 수 없는 한 편의 ‘지옥소설’ 같은 강렬함을 맛보고 싶다면 악인들만의 세계를 그로테스크하게 펼쳐낸 ‘아수라’를 추천한다.

‘아수라’가 오는 28일 개봉한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은 데다 제 41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돼 호평을 받으면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를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던 영화로 꼽았다. ‘센 영화’의 기운을 물씬 풍기는 이 영화에선 김 감독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둡고 거친 분위기에 농도 짙은 기괴함이 섞여있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이권과 성공을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 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뒷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악에 계속 노출되는 사이,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핑계로 돈 되는 건 뭐든 하는 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 한도경. 그의 약점을 쥔 독종검사 김차인(곽도원)과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은 그를 협박하고 이용해 박성배의 비리와 범죄 혐의를 캐려 한다. 각자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한도경의 목을 짓누르는 검찰과 박성배. 그 사이 태풍의 눈처럼 돼 버린 한도경은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후배 형사 문선모(주지훈)를 박성배의 수하로 들여보낸다. 살아남기 위해 혈안이 된 나쁜 놈들 사이에서 서로 물지 않으면 물리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영화는 초반부터 대단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스크린에 첫 화면이 뜨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을 이끌어낸다. ‘악인들의 지옥도’를 표방하는 만큼 유혈이 낭자하는 자극적인 장면이 많은 것도 집중도를 높이는 데 크게 한 몫 하지만 단지 잔인성을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빠른 장면 전환, 감각적인 카메라 워크, 적당히 긴장감을 불어넣는 배경음악, 배우들의 호연 등 전반적으로 빠지는 곳 없이 충실히 채워졌다.

한 편의 ‘악인 지옥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영화는 인간의 가장 악하고 추한 면을 정치인, 법조인, 경찰공무원 등을 통해 극단적으로,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도입부에선 정치인과 법조인의 갈등을 슬쩍 비추면서 권력층의 갈등을 다루는 흔한 전개를 예상하게 한다. 권력층은 나쁘고 약한 자는 선하다는 극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공식을 비틀어 모두가 악한 모습을 보인다. 그야말로 지옥도다.

이 영화는 선(善)을 완전히 배제했다. 누구도 정의를 부르짖지 않는다. 악행에 대한 두려움을 몇몇 인물을 통해 은밀히 드러내긴 하지만 아주 작은 떨림에 불과하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철저히 이기적이다. 이와 같은 설정은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수라’는 크게 부자연스럽단 느낌을 주지 않는다. 여기서 연출과 연기의 힘이 드러난다. 판타지적인 면이 용인되는 ‘악인 소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 악한 인간은 짐승을 닮아있다. 인간과 짐승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괴물과도 같다. 악한 사람은 더 악해지거나 자신 보다 더 악한 사람에게 굴복한다. 그런 괴물 같은 기괴함은 사람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당연히 인간의 악함에 대한 한계는 알 수 없지만 영화 후반부로 가면 악함이 악함을 낳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물고 물린 이들의 관계 속, 악인들이 모여 누가 더 악한지 대결이라도 하듯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다.

‘아수라’의 악은 이익을 좇지만 초점은 욕망과 이익이 아닌 악함 그 자체에 맞춰져 있다. 관객을 가르치려는 마음은 ‘제로’에 가깝다. 인물들은 잔인하지만 대체로 담담하게 악행을 저지른다. 양심이나 정의를 들먹이지 않는다.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려 억지 노력을 하지 않는다. 선을 추구하는 세계에 사는 ‘우리들’로선 훌륭한 교훈이 담긴, 정의로운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질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선 영화 속 세계를 동일시하기 보단 마치 악인들의 세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혹은 하나의 독특한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영화엔 남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남성들’은 그 면면이 화려한 배우들로 채웠다. 정우성 주지훈 황정민 정만식 곽도원이 차례로 등장하며 하나씩 보여주는 개성 있는 연기는 보는 맛이 있다. 연기파들인데다 각자의 스타일과 매력이 달라 다양함을 맛볼 수 있다. 김원해 김종수 김해곤 윤지혜 오연아 윤제문 등 조연진들 마저 빈틈을 허락지 않는다. 특히 한도경의 정보원인 작대기를 연기한 김원해는 화면에 나올 때 마다 시선을 독차지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요즘 영화’들이 빠뜨리지 않는 웃음요소도 넣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한방’이 있다. 탁월한 유머감각 하나는 여러 번의 잔잔한 편치 보다 강렬하다. 러닝타임 132분. 청소년 관람불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