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수라’ 주지훈 “멀티캐스팅, 달라진 관객의 시선에 감사하죠” [인터뷰]
- 입력 2016. 09.22. 21:54:45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관객에 감사하죠. ‘멀티캐스팅’이란 게 배우들 입장에서 할 일이 늘어난다는 거니까요. 이제는 관객이 주·조연을 안 따지잖아요. 예전 같으면 주연급 배우가 조연을 했을 때 그 배우의 위치가 낮아진 걸로 생각했을 수 있겠지만 이제는 관객의 시선이 달라졌죠. 덕분에 영화도 풍성해 졌고요.”
22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주지훈을 만나 영화 ‘아수라’(감독 김성수, 제작 사나이픽처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른바 ‘원톱 배우’인 주지훈이 영화 ‘아수라’에서 막내로 돌아가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를 비롯해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정만식 등 화려한 배우라인업으로 ‘멀티캐스팅’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 영화에서 그는 ‘원톱’은 아니지만 주·조연에 대한 편견을 덜어낸 관객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해했다.
그는 영화에서 한도경(정우성)을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 후배 형사 문선모 역을 맡았다. 한도경 대신 형사를 관두고 박성배(황정민)의 수행팀장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순수함을 잃고 악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다. 캐릭터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선모(주지훈)가 자기도 모르게 계속 태풍에 휘말려가는 캐릭터라 공감이 됐다. 자의로 휘말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주지훈 정우성은 ‘형제와도 같은’ 선후배 형사를 연기했지만 누구나 생각하는 정의로운 형사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의 ‘형사 같지 않은 모습’엔 김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다.
“처음에 감독님이 실제 경찰 분을 섭외해 만나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마음을 바꿨다. 촬영 전에 나와 우성이 형이 (경찰을) 만나게 해 주려고 했는데 온전한 ‘캐릭터’가 아닌 형사를 흉내 내는 모습이 나올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경찰의 피로도를 그린 영화는 아니니까.”
극 초반 순수하던 선모는 생각 보다 쉽고 과감하게 악에 물든다. 그런 모습이 관객의 입장에선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선모가 악해지는 과정을 관객을 설득시킬 만큼 충분히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주지훈의 생각은 좀 달랐다.
“어떤 일에 빨려드는 게 생각보다 쉽게 된다. 그래서 선을 지키고 공동사회를 살아가려 예의를 지키는 것 아닌가. 모두의 인생에서 죽을 것 같은 일들이 하나씩 있었을 거다. 의도와 다르게 늘 다가온다. 선모 캐릭터에는 가볍게 다가갔다. 특히 선모캐릭터는 박승배에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가느냐하는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있는데 난 반대로 봤다. 내 눈 앞에서 쉽게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쉽게 발을 뺄 수가 있을까.”
선모는 형사였다. 그러나 살인 앞에서도 주저함이 없는 모습이다.
“뉴스 등에서 살인 사건들을 보면 치밀한 계획범죄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우발적이고 외부 스트레스에 약한 존재다. 선모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도경이 가로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그런 (우발적인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 아닌가 한다. 우리는 모두 착하다. 뭐든 열심히 한다. (영화에서) 악행은 악행인데 뭔가 일이 주어졌을 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최면에 걸린 듯 열심히 한다. 선모를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기에 그런 선모의 감정 표현은 좀 덜 됐을 수도 있다. 이게 (분량 면에서) 멀티캐스팅의 단점인가 싶다.(웃음) 신인배우나 알려지지 않은 분이 (선모를 연기) 했다면 부족하단 생각을 했을까. 내 캐릭터에 관심을 주시기에 (그런 면들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선모는 선에서 악으로 변질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순수함과 악랄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두 가지 얼굴이 드러나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특징 없는 얼굴을 지녔다고 표현했지만 그 얼굴 속에 미묘한 표정을 담아낸다.
“‘바닐라 반 초코반’의 믹스 아이스크림을 생각한다.(웃음) 그 순간에 집중한다. 선모 캐릭터를 연기함에 있어선 ‘구강액션’이라고, 인물들이 서로 얘기하는데 한사람도 진심이 없다. 대사는 이미 외운 대사인데 표정연기를 하는 거다. 시퀀스를 알고 감독님과 얘길 나눠 어떤 의도인지 아니까 내가 지으려는 표정이 아닌 게 나와 조명을 죽였다. 내 얼굴이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 감독님이 디테일하다. 예를 들면 기어서 총을 갖고 와서 내 앞에 달려있는 조명 앞에서 대사를 하며 조명에 얼굴이 얼마나 나왔다가 들어가는지 까지 요구사항을 설명한다. 그 디테일함엔 이유가 있다. 이유도 모르고 이것저것 해보는 게 아니다. 형들이 젊은 감독들이 김 감독님의 그런 점을 따라갔으면 하더라.”
어느 새 그는 배우 데뷔 10년, 스크린 데뷔 8년차다. 요즘의 그는 어떤 마음일까.
“(데뷔작) ‘궁’(2006) 때는 못 즐겼는데 마음이 넓어졌다. 지금 당시의 모습을 보니 귀엽고 풋풋하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놀랐다. 당시엔 모델 일을 오래해 ‘이런 게 좋은 건가’하며 의구심을 갖고 했었다. 몇 년 전 부터 ‘센 캐릭터’로 이미지를 굳히게 된 것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난 좋다. 일단 멜로가 거의 없다. 결국 관객의 선택인데 멜로가 흥행이 안 되니까 투자 배급도 힘들어진다. 어제 술 마시면서 정민이 형이 따뜻한 작품을 하고 싶다고 얘기 하더라. 옛날 송승헌 서유정 최불암 선배님 등이 나왔던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같은 그런 따뜻한 얘기가 너무 없다고. 우리 영화가 범죄액션이긴 하지만 다른 작품들 역시 다 자극적인 면이 있다. 우리도 좀 더 다양한 영화를 관객이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극이 악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많은 악인들로 채워져 있기에 영화를 보는 입장에선 그 가운데 가장 악한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접 출연한 주지훈은 황정민이 연기한 박성배를 가장 악한 사람으로 꼽았다. 두 번째는 곽도원이 연기한 김차인이다.
“(가장 악한 인물은) 박성배다. 되게 순수한 악이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라는 식이다. 모르고 하는 건 고칠 수 없기에 무섭다. ‘비스티 보이즈’(2008)에서 하정우 선배가 그러지 않나.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그런 느낌이다. 그 다음은 김차인 인듯하다. 검사니 정확히 법을 아는 사람일 거다. 그러니 악인이라 볼 수 있다. 오히려 도경의 경우 나름 정당성이 있다. 악한 짓을 할 때도 이유는 있다. 그런데 김차인 검사는 법을 알면서 그렇게 행동한다. 검사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데 어쨌든 불법이고 공권력이 있다고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선모는 악인이라기 보단 그렇게 되고 싶었으나 대부분이 되지 않는 캐릭터라 볼 수 있다.”
‘아수라’는 단순히 ‘악인들의 지옥도’를 그린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형상만을 묘사한 것 같다. 깊은 의미가 없더라도 영화는 폭력에 내포된 처절함을 확대해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는 게 주지훈의 설명이다.
“앞서 감독님이 기자회견을 통해 말했듯 비주얼이나 미장센에 조금 압도되는 게 있어 가려질 수 있지만 그걸 감수하더라도 그런 처절함을 표현한 영화에요. 도경의 내레이션에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라는 부분이 있죠. 작은 것도 누군가엔 굉장한 폭력인데 그런 처절함을 과장되게 표현한 작품이에요. 드라마 ‘또 오해영’을 보면 주인공이 이름이 같은 예쁜 친구와 비교되면서 자격지심을 느끼고 상처받는 그런 걸 보여주죠. 그런 것처럼 이 작품도 영화적으로 더 재미를 주고 다양한 걸 크게 그린 거라 할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내레이션처럼 다들 불쌍한 인물들이죠.”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