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여주는 여자’ 씁쓸함을 넘어 절망으로 치닫는 노년의 일상 [씨네리뷰]
- 입력 2016. 09.27. 09:26:24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사는 게 창피해. 죽고 싶어. 나 좀 도와줘.”
‘100세 시대.’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 마냥 좋기만 할까? 오히려 죽음을 간절히 바라는 노인들이 있다. 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 자신도 언제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게 껍데기만 나이가 들었다. 나이 듦의 쓸쓸함과 현실이 그들을 사지로 내몬다. 살아 있지만 삶의 생동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니다. 벗어나고 싶은 지옥이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가 다음 달 6일 개봉된다. ‘죽여주는 여자’는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40회 홍콩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고 호평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이재용 감독은 영화를 통해 노인문제를 화두로 던졌다. 노인들의 소외된 삶, 재정적 빈곤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화를 세상에 내놨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는 ‘안락사’ 역시 소재로 등장한다.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자녀) 문제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트랜스젠더, 장애인 등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 역시 한군데 모아 사회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단상을 보여준다.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노인들 사이에선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 소문을 얻으며 박카스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트랜스젠더인 집주인 티나(안아주), 장애를 가진 가난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 성병 치료 차 들른 병원에서 만나 무작정 데려온 코피노 소년 민호(최현준) 등 이웃들과 함께 힘들지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죄책감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더 깊은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이재용 감독은 노인의 성, 죽음 등 음울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신파에 기대지 않았다. 위트가 엿보이는 대사와 인물들의 덤덤한 태도는 눈물은커녕 웃음이 새어나오게 하고 우울함이 아닌 유쾌함을 느끼게 한다. ‘박카스 할머니’는 사회에 알려지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 바 있다. 하루 3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할머니’의 존재는 충격적이고 그 마저도 벌어야만 하는, 노인의 성매매가 생겨난 배경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노인에 대한 가족의 무관심, 나아가 사회의 무관심은 결국 비참한 노년기를 보내는 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
영화에서 표현된 노년의 일상은 단조롭고 그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고요하다. 사회와 단절된 느낌마저 든다. 노인들만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이지만 그마저도 병들거나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세대가 처한 상황을 지켜보며 별다른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자녀들은 떠나고 노인들은 홀로 남아 쓸쓸하게 남은 생을 살아간다. 그 남은 삶마저도 단축하고자 ‘죽여 달라’고 부탁할 만큼 절망적인 일상을 이어간다. 몸이 말을 안 듣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가 존엄성을 잃는다. 소영 처럼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서도 성매매를 하며 살아갈 만큼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도 존재한다. 반면 극중 늙은 부모를 외면하는 젊은 세대는 차갑기만 하다. ‘박카스 할머니’를 취재하려는 젊은 감독은 얄밉게 그려진다. 이들은 외롭고 절망스런 노인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노인 문제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강조한다.
이 영화는 노인 빈곤, 노인 자살률이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한다. 생의 마지막 단계를 살아가는 노인이 사회적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의 부재로 겪는 비극을 수면위로 다시 한 번 끌어올려 이 사회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다. 이토록 충격적인 내용이 ‘소설’이 아닌 ‘현실’이란 점은 가혹하고 또 가혹하다. 다수의 우리들이 아름다움이 아닌 비극이 존재하는 삶의 마지막 단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서 소름 끼치는 절망감이 몰려든다. 영화 전반적으로 내내 적막감이 감돌면서 노인의 눈에 비친 세상의 고요함이 전달된다. 신파적 배경 음악도 없다. 카메라는 소영의 시선을 대변하며 관객이 노년의 쓸쓸함을 이해하게 한다. 두어 번 외국인 상점이 나올 때 흘러나오는 잔잔하고 이국적인 음악은 평화롭고 유쾌하게 다가오지만 그 이질적인 느낌이 주는 묘한 고독감도 있다. 이태원이란 곳에 모여든 변두리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노인 문제와 더불어 거론된 안락사 문제는 최근 서양사회에서 뜨겁게 논의되는 이슈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인위적으로 목숨을 거두는 것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대립한다. 하지만 안락사 찬반여부를 떠나, 보다 앞선 문제는 안락사를 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 영화에서 재우(전무송)는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자연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의 질문이 아니다. 죽음을 재촉하고 싶은 노인의 절망감 섞인 고민이다. 이것이 많은 노인들의 고민이란 게 실로 충격적이다. 이 감독은 실제 노인 자살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례를 소영이 ‘죽여주는’ 세 노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러한 사실성을 통해 그는 이 같은 사회 현상을, 비록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여겨질 수 있음에도 그것을 감수하는 용기를 내어 수면 위로 올리려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 분위기에 잘 녹아들었다. 윤여정은 ‘여배우들’(2009)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2012)에 이어 세 번째 이 감독과 만났다. 이 감독은 윤여정에게 성과 죽음을 파는 쉽지 않은 배역을 안겼다. 두 사람의 신뢰로 영화가 완성됐고 윤여정은 이 영화를 통해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첫 영화인 ‘화녀’로 시체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은 지 45년 만의 해외영화제 주연상 수상이다. 6.25때 월남해 공장 생활, 가정부, 양공주 등을 거치며 혈혈단신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온 소영은 남다른 이웃과 가난해도 떳떳하게 사는 65세 여성이다. 자기 삶이 어렵기에 더더욱 남의 어려움을 외면 못 하는 그녀는 배고픈 길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길에서 만난 코피노 소년 민호를 데려와 밥을 먹이고 보살핀다. 죽기보다 고달픈 삶을 사는 단골 고객들의 도움 요청에도 거절하지 못해 결국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되는 인물이다. 윤여정은 전반적으로 덤덤한 가운데 디테일을 살린 연기로 노련미를 빛냈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한, 소영의 이웃 도훈(윤계상)은 늘 밝다. 성인용 피규어를 만드는 일을 하며 월세도 밀릴 정도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풍성하다. 정 많고 따뜻한 청년의 모습이 윤계상이란 배우에게 잘 맞는 옷처럼 맞아 들어간다. 소영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집 주인은 트랜스젠더 티나(안아주)는 미모와 넉넉한 마음을 갖췄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 된 안아주라는 배우는 첫 영화임에도 자연스런 연기를 해낸다.
‘죽여주는’ 여자, 다리 없는 남자, 트랜스젠더 그리고 코피노 소년은 한 지붕 아래 모여 소외된 이들 끼리 서로를 의지한다. 노인들은 노인들 끼리 의지한다. 마치 그들만의 세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단절된 세상에서 함께 살아간다. ‘죽여주는 여자‘는 그런 그들이 처한 상황과 어려움에 대해 한 번쯤 관심을 가져주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이 되고 싶은 영화다. 러닝타임 111분. 청소년 관람불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