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OOK] 아수라, ‘지옥의 문’ 여는 드레스코드 ‘투버튼 슈트’
입력 2016. 09.27. 13:56:48

영화 '아수라'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인생은 지옥이다. 그럼에도 삶을 버틸 수 있는 것은 현실은 지옥과 다르다는 자기위안과 적어도 내 인생만큼은 무탈하다는 자기최면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아수라’는 이러한 최소한의 방어막마저 무너뜨림으로써 현실은 정글보다 더 잔혹한 생태계임을 각인하다.

아수라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보고 형상화 한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지옥의 문이 1840년에 완성된 예술 작품이라는 이유로 관객과 거리두기가 되는 반면, 아수라는 온갖 처절한 인간 군상이 조각돼있는 지옥의 문의 2016년 현실 버전으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며 질퍽한 기분을 심어준다.

영화는 남성 본위 느와르에 흔하게 등장하는 슈트로 채워진다. 실루엣 컬러 패턴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장의 기본인 투버튼 슈트가 전체를 차지하는 아수라는 영화가 느와르의 정형성에 충실할 것임을 암시한다.

인물에 집중하고 전체적으로 톤 앤 매너 역시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는 기획의도에 따라 슈트 역시 캐릭터 마다 언뜻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이지만,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가진 검사 김차인(곽도원)의 200수쯤은 돼 보이는 살짝 광택감이 도는 고급스러운 질감의 블랙슈트, 돈과 권력을 양손에 쥔 박성배(황정민)의 평범한 사람인 채 하는 살짝 넉넉하지만 각이 살아있는 슈트는 그들의 치졸한 속내를 표현하는 도구로 완벽하게 기능한다.

안남시장 박성배와 검찰청 특수부 검사 김차인. 두 사람의 대립이 느와르의 정형성에서 벗어난 설정이었다면, 한도경(정우성)과 문선모(주지훈)는 느와르 특유의 질퍽함과 휴머니즘을 충족하는 요소로 생경할 수 있는 영화에 친숙한 공기를 형성한다.

김성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당당히 주연을 꽤 찬 정우성보다 주지훈의 예상을 뒤엎는 재기발랄함은 잔혹한 아수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정우성은 거칠게 내뱉는 욕설과 후줄근 옷차림에도 특유의 아우라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반면, 주지훈은 신입형사의 치기어린 정의와 돈의 맛을 들인 자의 서툰 냉혹함 모두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황정민 수하로 들어가기 위해 형사를 그만둔다는 정우성에게 은갈치색 정장을 사야한다고 충고하고, 정우성을 대신해 형사를 그만두고 황정민 수하가 된 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슬림하게 재단된 투버튼 슈트를 매만지며 조르지오 아르마니라고 자랑하듯 말하는 장면은 마치 모델출신인 그를 위해 배려한 대사인 듯 착착 감기는 맛을 준다.

이러한 대사는 단지 영화의 잔혹함을 상쇄하는 위트가 아닌 잔혹한 살인을 하지만 초고가 럭셔리 슈트를 자랑스러워하듯 명령과 복종만이 통하는 조직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직하게 해내면서 현실감을 상실해 버린 자의 서툰 욕망을 부각한다.

네 사람이 그리는 승자 없는 싸움은 장례식장에서 각자의 캐릭터를 더욱 명료하게 드러내면서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황정민과 곽도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정우성은 두 사람과 함께 한 공간에 선다. 그리고 황정민의 수행원 주지훈은 음험한 기운으로 바쁘게 장례식장을 분주히 돌아다닌다.

황정민 곽도원 정우성은 블랙슈트에 블랙 타이를 맨 상갓집 문상복 차림의 동일한 드레스코드지만, 셔츠의 각각 다른 컬러와 소재가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욕망의 굴레를 암시한다. 말끔한 화이트셔츠로 기본 문상용 블랙슈트 차림을 한 황정민은 셔츠의 화이트가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은 그의 악마적 본성을, 곽도원의 블루 셔츠는 권력이 자신의 유일한 생존도구인 자의 이중성을 부각하는 효과를 낸다.

그 사이에 선 정우성의 후줄근한 다크그레이 저지 면 셔츠는 그 어느 편에서도 결국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자의 절박함을 드러낸다.

이들 셋과 달리 주지훈은 몸에 꼭 맞는 블랙슈트와 블랙셔츠에 퍼플 타이를 매 현실감을 상실한 자의 스타일리시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브레이크 없는 차에 오른 자의 끝을 암시한다.

아수라는 틀에 박힌 주·조연 구도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영화의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황정민은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고 정우성은 한도경 역할이 그에게 얼마나 절박한지 충분히 보여줬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이 영화의 남성 본위 느와르는 곽도원의 치졸함과 주지훈의 치기어림이 있었기에 완벽한 각을 이룰 수 있었다. 여기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념에 찬 표정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정만식, 인생 막장의 끝에 선 김원해가 영화에 다양한 색채를 부여하며 찰진 맛을 살렸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아수라’]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