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정우성 주지훈 ‘악의 패션 시너지’, 피식자의 발악 [영화의상 STORY]
입력 2016. 09.28. 15:27:12

영화 '아수라'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영화 ‘아수라’는 선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대신 악의 군상들 속에 다양한 캐릭터를 부여해 밀도감을 높였다. 표면적으로 박성배가 극한의 악이지만, 실상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돈과 권력에 노예처럼 기생하며 온갖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다.

돈과 권력을 모두 쥔 박성배(황정민)와 권력이 유일한 무기인 김차인(곽도원)이 권력의 양 끝에서 위태로운 파워게임을 하고 있다면, 한도경(정우성)과 문선모(주지훈)는 권력자의 하수인으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돈 냄새에 취해 스스로 기꺼이 피식자의 삶을 선택한다.

동일한 피식자면서 어느 순간 피식자로서 위계를 정하는 듯한 상황은 보는 이들에게 실소를 자아냄과 동시에 현실 속 우리네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우울감을 안긴다. 이처럼 실감나는 리얼리티는 정우성과 주지훈의 완벽하게 ‘합’을 이룬 의상으로 인해 생생하게 살아났다.

정우성은 의상감독들이 어려워하는 배우 중 하나다. 무너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절대 무너지지 않는 몸에 밴 아우라가 그에게 다양한 변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큼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깡똥하게 손목뼈까지 오는 소매길이의 두터운 가공되지 않는 투박한 브라운 컬러의 가죽 블루종과 헐렁한 원 턱 슬랙스는 막장 형사 한도경의 느낌을 살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스타일리시하게 보이려하는 찰나 후드 집업 점퍼와 보머 재킷을 겹쳐 입은 뒷골목 양아치 같은 차림의 주지훈이 벌어지려는 틈을 메웠다.

황정민 밑으로 들어간 후 블랙슈트를 말끔하게 차려입고 정우성을 만난 주지훈은 넉넉한 어깨 품의 후줄근한 슈트에 퍼플색 셔츠 차림을 정우성과 명확한 대조를 이루며 더 나빠질 것 없는 한도경 캐릭터를 명료하게 드러냈다.

정우성은 한도경에 대해 “영화사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주인공이기에 계산하지 않은 채 스스로 어떤 표정을 짓고 리액션을 하는지 쫓아가자 하는 식으로 연기했다. 멋스런 캐릭터를 표현하려는 계산들이 느와르나 액션의 주인공이 할일이라 생각할 텐데 한도경의 목소리나 리액션의 경우 무조건 받아들이고 그대로 표현했다”라고 말했다.

한도경은 어느 편에 서지도 않은 채 결국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추하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일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캐릭터가 완성됐다.

한도경에게 문선모는 아내와 함께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인물이다. 분리되지 않은 채 세상에 내던져진 샴쌍둥이처럼 한도경은 문선모가 돈에 취해, 악에 취해 순수함이 일순간 타락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문선모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할당치를 잃은 야생의 분노가 동시에 그를 급습한다.

배우로서 명민한 캐릭터 해석력을 보여준 주지훈은 “어떤 일에 빨려드는 게 생각보다 쉽게 된다. 그래서 선을 지키고 공동사회를 살아가려 예의를 지키는 것 아닌가”라며 문선모라는 인물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으로 운을 땠다.

이어 “모두의 인생에서 죽을 것 같은 일들이 하나씩 있었을 거다. 의도와 다르게 늘 다가온다. 선모 캐릭터에는 가볍게 다가갔다. 특히 선모 캐릭터는 박성배에게 어떻게 그렇게 쉽게 가느냐하는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 있는데 난 반대로 봤다. 내 눈 앞에서 쉽게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쉽게 발을 뺄 수가 있을까”라며 순수했기에 오히려 악에 대한 거름망을 가질 수 없었을 문선모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음을 토로했다.

서를 닮아가다 결국 샴쌍둥이처럼 붙어버린 그들이 장례식장에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은 예측 가능한 최후를 향해 치달으면서 극적 긴장을 더한다. 두 사람이 최후가 그려지는 장례식장에서 더블 버튼 슈트는 절묘하게 장치 역할을 했다.

블랙슈트에 닳고 닳아 헤진 듯한 다크그레이 저지 면셔츠를 입고 블랙 타이를 맨 정우성과 블랙슈트와 블랙셔츠에 퍼플색 타이를 완벽하게 갖춘 주지훈은 포식자가 던진 먹이 앞에 서서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피식자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정우성은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에서 각각 유오성 이정재와 합을 맞추며 스타덤에 올랐다. 두 영화 모두 김성수 감독 작품으로 정우성을 가장 잘 아는 김 감독은 정우성과 주지훈의 브로맨스 파트너십으로 ‘아수라’까지 살려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아수라’, KBS2 '영화가 좋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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