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물’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되기 전에 [씨네리뷰]
- 입력 2016. 09.30. 16:37:08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나를 북으로 돌려보내 주시라요.”
고통스런 얼굴로 괴로움을 호소하는 한 어부의 외침. 그의 절규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자신을 놔 달라며 몸부림치는 모습과도 같다. 물고기와도 같은 힘없는 국민이 그물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연이지만 또한 스스로 막아야 할 비극이다.
영화 ‘그물’(감독 김기덕, 제작 김기덕필름)이 오는 6일 개봉된다. 제73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초청돼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첫 선을 보인데 이어 제41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마스터즈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그 동안 사람의 이야기를 다뤄온 김기덕 감독은 22번째 영화를 통해 시대의 문제와 개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줄거리만 간추리자면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비극은 지극히 평범한 아침, 우연히 배가 떠내려가며 벌어진다. 북한 어부 철우(류승범)는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다. 철우를 수상히 여긴 남측 정보요원들은 그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철우는 북에 남겨진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남한에서 치열한 일주일을 견뎌내는데… 과연 그는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물에 걸린 이 남자는 한 순간에 운명이 바뀌어버린다. 남한으로 가게 된 철우는 서울로 이송되고 위장간첩으로 의심받는다.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간첩이 아님을 주장한다. ‘사상 그딴 거 보다 내 가족이 중요하다’고 외치며 돌려보내주기를 호소하는 그에게선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는 혹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국가의 일을 자신과는 동떨어진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지닌 개인에겐 결국 그런 태도가 자신에게 큰 위협을 가하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이들을 향해 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우의 모습은 사실적으로 다가오기에 더 섬뜩하다. 극 초반 ‘배가 남쪽으로 가면 어쩔 거냐’고 묻는 북한군의 말은 흡사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과도 같다. 철우는 늘 그랬듯 그 같은 비극이 영원히 자신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북한군의 질문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 같은 그의 모습은 무심한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군사분계선 가까이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도 무덤덤한 그의 모습에서 남북문제에 둔감해진 국민의 모습이 보인다.
남한 측 인물들은 철우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들의 시선에서 철우는 사상에 세뇌된 불쌍한 북한 국민이다. 그를 독재국가로 돌려보내는 게 그들의 입장에선 차마 하지 못할 일이기에 그를 귀화시키려 온갖 애를 쓴다. 하지만 철우의 입장에선 자신을 붙드는 그들이 가족과 생이별 시키려 하는 적일뿐이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그들은 그저 자신을 억지로 옭아매는 그물이다. 평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온 그에게 하루아침에 그것을 바꾸길 바라는 남한 측의 입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들만의 생각과 시선으로 철우를 바꾸려 하는 행동은 심지어 강제적이고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북한으로 돌아갈 생각인 철우는 서울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 그의 마음을 돌려 귀화하게 하려는 남한 측은 그가 서울을 보게 하려고 애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의 간절함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다. 그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남한의 감시 요원 오진우(이원근)다. 국가의 임무를 다해야하는 가운데 철우를 향한 인간적인 연민이 그를 괴롭힌다. 그는 괴로운 상황에 처한 철우를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를 북한으로 돌아가도록 전면에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힘도 없을 뿐 아니라 도와줄 수 있는 입장도 못된다. 단지 그를 이해해주고 믿어주며 그가 더 큰 위기에 처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립적인 인물인 오진우는 남한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말한다. ‘자유가 강하면 책임도 강한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자기반성적인 성격을 지닌다. 자유로운 국가지만 그 만큼의 책임감을 갖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자유를 지키고자 한다면 비록 국가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피로감을 느낀 개인이라 할지라도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아울러 영화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관객의 시선에서 좀 더 중립적으로 양쪽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철우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남한의 조사관(김영민)은 오진우와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는 이전에 간첩을 놓친 트라우마로 인해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철우를 간첩으로 만들어 자신의 과오를 씻으려 한다. 김 감독은 이 같은 인물을 통해 피해의식으로 똘똘뭉친 채 진실을 보지 않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철우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남한의 국민들이 보내는 물질적인 도움은 자본주의의 단상을 보여준다. 선의로 한 일이지만 실은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단지 뒤늦은 위로 정도에 그친다. ‘독재정권에서 한 명이라도 구해내는 게 임무’라 외치는 남한 측 역시 그 나름의 진심을 갖고 임한다. 영화에선 그 역시 철저한 자신들 만의 시각이며 당하는 입장에선 괴로운 일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지함은 자신도 모르는 죄를 짓게 만들기도 한다. 철우가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행동은 자신을 간첩으로 만들 만큼 더 위험한 상황을 낳는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도 모른 채 저지르는 일은 그를 함정에 빠뜨린다. 이는 우리가 사는 이곳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철우의 안타까운 상황은 표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국민을 양쪽 국가가 괴롭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상황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필요함을 주장하는 만큼, 그런 안타까운 상황은 현실을 회피하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결론적으로 철우는 국가에 충성했지만 그 속의 민낯을 접하곤 큰 실망감에 휩싸인다. 이것은 그를 허무하게 하고 그가 믿었던 국가에 대한 믿음을 사라지게 한다. 남한과 다를 줄 알았던 자신의 국가. 그 안의 모습은 실제 남한과 다를 게 없었다. 누가 더 낫다할 것 없이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른 채 입력된 정보만으로 그것이 옳다고 말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국가에 대한 믿음이 실망으로 바뀌고 그것이 분노로 변하면서 끝내는 피폐해지고 만다. 이것은 망가져버린 뒤엔 돌아가도 모든 것이 속수무책으로 끝나버린다는, 우리를 향해 보내는 김 감독의 강한 경고다. 러닝타임 114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