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럭키’ 타인의 삶을 통해 인생의 묘미를 느끼다 [씨네리뷰]
- 입력 2016. 10.04. 19:41:20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배우 유해진과 코미디의 결합. 이거야 말로 기다려온 조합이 아닌가.
20년 배우인생을 걸어오며 코믹한 역할을 맛깔나게 해온,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재치 있는 입담으로 웃음을 선사한 그가 코미디 영화에서 본격 원톱으로 활약한다니 한껏 기대할 만 하다.
도입부, 유해진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그에게 딱 어울리는 트로트 느낌의 활기차면서도 위트 있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함중아의 ‘그 사나이’를 새로이 편곡한 곡이다. 초반부터 웃음을 예고하는 비장한 노래가 흘러나오지만 박장대소할 영화를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가능성이 있다. 자극적인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영화는 톤다운 된 컬러로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럭키’(감독 이계벽, 제작 용필름)가 오는 13일 개봉된다. 이계벽 감독은 일본 우치다 켄지 감독의 ‘열쇠 도둑의 방법’을 기본 설정만 남겨둔 채 대한민국 정서에 맞게 각색해 새로운 코미디로 변모시켰다. 킬러가 등장하고 기억상실증에 걸려 하루아침에 무명배우의 인생을 산다는 줄거리는 결코 평범치 않다.
이 감독은 비범한 줄기를 바탕으로 잔잔하고 유쾌한 내용을 채워나갔다. 이는 단지 한바탕 웃음을 선사하고 끝내는 코미디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코미디라는 큰 테두리 안에 따뜻함, 유쾌함, 웃음, 미스터리, 범죄, 액션 등 다양한 요소를 담으려 애썼다.
‘럭키(Luck Key)’란 제목엔 영화의 내용이 함축돼 있다. 키(Key)를 통해 인생의 묘미를 느끼는 행운(Luck)을 얻는다는 유쾌한 이야기다. 냉혹한 킬러인 형욱(유해진)은 사건을 처리한 뒤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과거의 기억을 잃는다. 인기도, 삶의 의욕도 없어 죽기로 결심한 무명배우인 재성(이준)은 신변 정리를 위해 들른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진 형욱을 보고 자신의 목욕탕 키를 형욱의 것과 바꿔치기 한다. 기억을 잃은 형욱은 자신이 재성이라 생각하며 배우로 성공하려 노력하는데… 그의 앞날엔 어떤 일이 펼쳐질까.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과 삶이 뒤바뀐다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것이다. 많은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이 같은 상황이 연출됐고 보는 이들은 작품 속의 그러한 판타지적 상황을 바라보며 현실에선 없을 일을 겪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늘 가장 핵심이 되는 재미는 삶이 뒤바뀐 주인공이 자신의 속성을 그대로 지닌 채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데에서 온다. 뒤바뀐 삶의 주인공 혹은 뒤바뀐 대상의 속성·삶의 양식이 가져오는 부조화에서 나타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웃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곧 적응해나가는 천연덕스런 모습이 통쾌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기억을 잃고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믿으며 적응해 나가려 노력하는 형욱의 모습은 흡사 균형을 잃고 넘어질 듯하다가 곧 균형을 잡고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아가는 한 사람과도 같다. 그는 비록 기억을 잃은 채 다른 환경에 처하지만 자신의 기본적인 속성을 잃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 역시 변치 않는다. 그리고 그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능청스럽게도 살아낸다.
킬러로 활동한 형욱은 기억을 잃은 뒤에도 몸이 기억하는 칼 다루는 솜씨를 활용해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화려한 솜씨를 뽐낸다. 여기에 평생 동안 해보지도 않은 연기에 도전하며 몸에 익은 액션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능력발휘를 한다. 이 같은 의외성은 정해진 공식과도 같지만 늘상 웃음을 자아내게 마련이다.
유해진이 이끌어 나가는 코미디 영화는 의외로 잔잔하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억지웃음을 만들려 애쓰지 않은 점을 고려했을 때 그의 연기가 전체 분위기와 결을 같이한다. 기본적으로 킬러라는 직업을 지닌 인물이기에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기억을 잃고 분식집에서 김밥을 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진 않는다.
평소 작품을 통해 진중하기 보단 가벼운 캐릭터를 주로 보여준 유해진은 오히려 코미디 장르인 이번 영화에서 전작 대비 더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웃음을 준다. 억지로 웃음을 짜내려하는 철 지난 코미디만큼 괴로운 건 없다. 영화는 과장하지 않는 스토리·대사·코믹 연기 속에서 잔잔하게 웃음을 뱉어낼 수 있게 한다.
이 감독은 웃음과 함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힐링 코미디를 만들고자 했다. 주인공은 냉철한 킬러지만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본 경험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따뜻한 기대와 응원의 가치를 알게 된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운명이 바뀐 또 다른 인물 재성. 인기도 없고 삶의 의욕도 없어 죽기로 결심했던 그는 재성의 삶을 살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은주라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물론 형욱, 은주를 비롯해 리나의 운명까지 바꾸는 거대한 나비효과를 가져온다.
한 순간의 선택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그 영향을 받은 인물로 인해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런 것들이 결국 진정한 ‘행운’으로 통하게 되는 유쾌한 한 편의 이야기다. 관객이 작은 웃음의 물결로 힐링을 받았으면 하는,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한 즐거움을 주고 싶어하는 영화다. 러닝타임 113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