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LOOK] ‘죽여주는 여자’, 박카스 아줌마의 ‘최후’ 선택권
- 입력 2016. 10.06. 14:44:23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세간에 화제가 된 매춘을 하는 중년여성 일명 ‘박카스 아줌마’ 를 소재로 제목에서부터 관음증의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
그러나 영화는 이런 호기심 어린 시선을 금세 걷어낸다. 소영(윤여정)이 던지는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해 드릴게”라는 말은 포르노적인 질척거리는 에로틱이 제거된 유통기한을 넘긴 소비재를 파는 상인의 민망함이 배어있어 ‘죽여주는’이 관객이 예상하는 범주를 넘어설 것임을 은근슬쩍 암시한다.
윤여정은 여관에서 이뤄지는 은밀한 장면에 대해 “이재용 감독에게 속았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초반에는 꽤 농도 짙은 성행위가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상대를 침대에 앉힌 후 촛불을 켜는 등 정확한 순서에 따라 엄중한 분위기로 ‘죽여주는’ 의식을 진행해 노인들의 노골적인 성행위에 대한 호기심 혹은 거부감 그 어떤 감정 없이 관객이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여기서 배우 윤여정의 힘이 진가를 발휘한다. 깡마른 몸으로 여관에서 슬립만 입은 채 유사 성행위를 하는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는 굳이 친절한 설명 없이도 소영에게 성행위는 그녀의 감정과 전혀 별개인 녹슬었지만 기계를 돌려야만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공장 인부의 노동을 연상하게 한다.
매춘을 자신만의 의식으로 승화한 소영은 데님재킷과 시스루 터틀넥 블랙 블라우스로 나름의 제식을 갖춘다. 영화의상을 담당한 함현주 실장은 “데님재킷은 소영에게 노동복이다. 매춘은 그녀에게 생계수단이고, 데님재킷은 블루칼라로 불리는 노동자의 의상과 같은 의미다”라며 데님이 갖는 함의를 언급했다.
데님이 ‘죽여주는’ 성 노동자 소영의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낸다면,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스웨이드 트렌치코트는 그녀가 갖는 여자로서 자존감을 드러내는 코드로, ‘죽여주는’ 이타적인 행위자로서 그녀의 본성을 드러낸다.
함 실장은 “스웨이드 코트는 ‘맥도날드 할머니’의 트렌치코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트렌치코트가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처럼 소영에게 역시 스웨이드 코트가 그런 역할을 한다”라며 의상에 얽힌 스토리를 풀어냈다.
소영의 ‘죽여주는’ 의식은 생계수단은 극히 이기적인 노동과 자신을 위한 생사의 선택권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이타적 행위로 나뉘며 영화는 ‘박카스 아줌마’에 의해 연상되는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노인의 성문제를 전면에 끌고 나왔지만, 삼포 오포세대로 포기를 받아들여 하는 젊은이들만큼이나 ‘포기’라는 선택권을 가지지 못하는 노인의 삶 역시 절망적임을 치열하게 그러나 이재용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터치로 그려낸다.
윤여정이 소영이라는 캐릭터로 온전히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데는 성 구매자로서 일상성에 갇힌 노인 남성들의 일탈권이 제거된 무미건조한 표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함 실장은 “노인들은 의도적으로 거의 구별되지 않는 의상을 설정했다. 윤여정과 얽히게 되는 세 명의 노인역시 마치 쌍둥이처럼 각자의 캐릭터를 부각하기 보다는 남자가 나이가 들면서 결국 비슷해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의상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리얼리티에 충실한 스토리와 캐릭터 구도를 갖췄지만, 엄마를 놓친 아이를 품는 소영의 모성 본능과 죽음 동반자로 전무송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장면에서 소영의 여성성은 그 어떤 휴머니티나 로맨스보다 더 깊은 잔상을 남긴다.
특히 시스루 블라우스가 아닌 블랙 도트 패턴의 보우타이 화이트 블라우스를 얌전하게 차려입고 전문송의 말을 하나하나 새겨듣는 장면은 그녀에게도 낯설 듯한 사랑받는 여자가 느끼는 감정의 저릿함과 죽음을 택한 자의 아픔을 대하는 아릿함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한다.
노인은 2016년 현대인들에게 질병처럼 인식되고 있다. 삶의 과정에서 누구에게나 예고된 현실이고 미래지만, 노인조차 자신이 노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 사회에서 이 영화는 죽음을 선택할 수만 있다면 노인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서글픈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죽여주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