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감독 say]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성 노동자의 ‘늙은 복고패션’
입력 2016. 10.06. 16:46:51

영화 '죽여주는 여자'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윤여정이 영화 ‘계춘 할망’에서 잃어버린 손녀를 가슴 품고 산 할머니 계춘은 온데간데없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매춘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65세 중년여성 소영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10월 6일, 오늘 개봉한 ‘죽여주는 여자’는 월남한 후 생계를 위해 양공주가 되고 나이가 들어서는 폐지를 줍는 것보다 매춘이 낫다는 신념을 가진 성 노동자 일명 박카스 아줌마 소영의 ‘죽여주는’ 삶을 그린다.

영화의상을 담당한 함현주 실장은 윤여정이 소영이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열린 사고 결정적이었음을 밝혔다. 함 실장은 “저희보다 열린 배우입니다. 제가 오히려 꼰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린 사고를 가졌습니다”라며 윤여정과 함께 작업한 소감을 밝혔다.

국문학과 출신에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윤여정이 배운 거 없는 닳고 닳은 늙은 매춘녀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포스터에서부터 섣부른 걱정임을 실감케 한다. 소중하게 간직한 듯 보이지만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손때 묻은 색과 질감의 짙은 브라운색 스웨이드 트렌치코트는 매춘을 하고 있지만, 당당한 사회인으로 대우받아 마땅하다는 그녀의 자존심을 올곧게 드러낸다.

스테디셀러로 젊음의 상징이기도 한 데님재킷은 65세 여자 소영과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듯 대비를 이루며, 소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는 미끼 역할을 한다.

이런 아이템 하나하나가 현재 유행과 맞물려 있는 듯 보이지만 디테일이나 실루엣은 올드패션으로 절대 세련될 수 없는 과거 시대를 사는 늙어버린 복고패션으로 소영의 과거와 현재를 세심하게 담아낸다.

#1. 스웨이드 코트, 찬란했어야 할 과거

함 실장은 6.25때 월남해 공장 인부, 가정부, 양공주를 거친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묘사하는 출발점에서 ‘맥도날드 할머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노숙자였던 맥도날드 할머니의 트렌치코트는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 아니었을까요. 트렌치코트가 이화여대 출신인 그녀에게 갑옷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며 찬란했을 ‘맥도날드 할머니’의 상징으로서 트렌치코트와 동일한 코드를 소영에게도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영의 스웨이드 코트는 그녀가 감추고 싶은 현실과 찬란했어야 만할 아픈 과거에 대한 미련으로 빼곡히 채워져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함 실장은 “스웨이드 코트에 천박하지만 애수가 배인 소영의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갑옷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는 그녀의 마지막 허영이죠”라며 소영의 애잔한 삶을 코트로 풀어냈음을 밝혔다.

#2. 데님재킷, 상스럽지만 성스러운 성 노동자  

시각적으로 스웨이드 코트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님재킷은 그 안에 상상 이상의 함의가 담겨 있다.

데님재킷 안에 애써 목을 감춘 그러나 속살이 드러나는 블랙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은 모습은 도심 외곽에서 한번쯤은 마주칠 법한 룩으로, 과거의 기억에 머룰 있는 중년 여성의 허망함이 배어있다. 그러나 데님 재킷은 여기서 한발 나아가 성 노동자로서 소영의 엄숙한 의식의 출발점으로 상스럽고도 성스러운 제식이 된다.

함 실장은 “데님과 시스루. 언밸런스 조합이죠. 그런 부조화를 살리고 싶었습니다”라면서 “데님 재킷은 그녀에게 노동복입니다. 소영이 성을 파는 ‘노동자’라는 점을 설명하는데 데님 재킷이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의 블루칼라와 같은 맥락”이라고 매춘에 대한 소영의 신념이 드러내는 도구로서 데님재킷의 역할을 밝혔다.

윤여정은 추하게 보일 법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속내를 갖춘 소영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공원에서 만난 노인에게 ‘몸 파는 여자’라 괄시 받고, 성 구매자를 물색하던 중 만난 과거 동료에게 자신의 현실을 감춘다. 그럼에도 엄마를 잃은 아이를 감싸 안고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내줄 줄 아는 포용력을 가진 별스러울 것 없지만 현대인들에게 잊힌 휴머니티를 일깨운다.

그런 불편할 법한 소영을 관객이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는 데는 함 실장의 ‘슬픈데 아프지 않은’ 묘사를 완성해낸 세련되지 않는 늙은 복고패션이 기여도가 컸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죽여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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