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상 SECRET]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안아주, 리얼리티 살린 패션 ‘픽업’
입력 2016. 10.07. 17:23:23

영화 '죽여주는 여자' 소영(윤여정), 티나(안아주)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 늙은 여자 소영과 남자로 태어난 여자 티나, 두 명의 여자가 나온다.

소영은 젊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지만 세월이 주는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늙은 육체를, 티나는 남성으로 태어나 소위 섭리를 거슬러 여성으로 변조한 육체를 가진 기묘한 이중성을 띠고 있다.

이처럼 성과 육체가 그들의 내면과 어긋나 있는 소영과 티나는 패션 역시 이와 같은 이중적 매력을 취한다.

소영은 2016년 65세 나이로 매춘을 하며 비루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1970년대 젊은 시절인 채로 있는 그러나 속내는 자신의 처절한 현실을 절감하고 있는 현실적이면서 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따라서 패션 역시 ‘복고패션’이 기본 콘셉트지만, 재해석이 전혀 가미되지 않아 과거 그대로의 원형으로 촌스러움과 안쓰러움이 묻어난다.

티나는 여성성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가진 트렌스젠더에 충실한 전형적인 페미닌룩으로 목소리만 아니라면 헷갈릴 정도의 비주얼을 보여준다.

이런 이중성을 가진 캐릭터를 현실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 위해 영화의상을 담당한 함현주 실장은 동대문 평화시장, 재활용 수거함을 샅샅이 뒤지고, 자신의 옷장을 헤집는 등 현재 시점에서 수집 가능한 과거와 현재를 최대한도로 끌어냈다.

다큐 혹은 단편영화 특유의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그린 영화가 미학적 완성도와 함께 리얼리티까지 살릴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노력 있기에 가능했다.

함 실장은 조심스럽게 윤여정의 의상에 대한 비밀을 풀어놨다. “사실 윤여정 배우 의상 대부분은 재활용 수거함에서 찾아낸 것들입니다. 사실 빈티지 샵도 옷이 너무 예뻐서 소영이라는 캐릭터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활용 수거함을 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영화의상은 제작 협찬 등이 일반적이지만, ‘죽여주는 여자’처럼 리얼리티가 요구되는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는 것이 함 실장의 설명이다.

‘죽여주는 여자’는 소영과 함께 나이가 들어간 옷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재활용 수거함 속 옷들이 제 몫을 해냈다”라고 덧붙였다.

재활용 수거함뿐 아니라 함 실장의 개인 옷장도 동원됐다.

그녀는 “직업상 옷을 버리지 않습니다. 언제 어떻게 옷이 쓰일지 몰라 쌓아두죠. 이 영화에서 제 옷장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라며 윤여정의 옅은 그레이 빛 트렌치코트와 티나 주요 의상이 자신의 옷이었음을 밝혔다.

어깨가 살짝 크고 봉긋하게 솟은 소매의 트렌치코트는 소영이 병상에 누워있는 노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입었던 옷으로, 그녀가 대학생 시절 입었던 옷이기도 하다. 함 실장은 “당시에도 그 이전 시대에서 모티브를 딴 디자인의 트렌치코트를 구매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소영의 캐릭터와 잘 맞았죠”라고 그 옷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윤여정 의상이 함 실장 옷 중 과거에서 끄집어냈다면 티나 의상은 현실에서 발췌했다.

티나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의 화려하면서도 시크한 컬러와 프린트의 로브는 지난해 스페인 여행에서 자신이 입기 위해 구매한 옷으로, 원래 목적과 달리 티나를 연기한 트렌스젠더 안아주에게 입혀졌다.

또 비비드의 샛노란 인조모피 베스트는 자신의 옷장은 아니지만 현재 트렌드에 맞게 제작한 의상으로, 티나의 여성스러움을 한껏 부각했다. 함 실장은 “시장에서 털이 가장 긴 것을 찾아내 제작했다”라며 티나의 여성성과 세련된 감성을 상징한 의상의 제작과정을 밝혔다.

트렌스젠더하면 의례 연상되는 과도하게 섹시한 의상보다는 세 놓을 수 있는 집이 있고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티나에 맞게 설정한 이러한 세련된 의상은 영화를 보는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이런 기막힌 노력들이 소영과 티나를 관객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이유다.

‘죽여주는 여자’는 이재용 감독의 삶을 대하는 따스한 시각으로 리얼리티지만 조금은 쉬어가고 싶은 그런 의외의 판타지가 은근하게 녹아들어 있다. 의상은 영화의 이러한 복잡한 함의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 관객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숨통을 트여준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영화 ‘죽여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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