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상 감독 함현주, 옷의 가치와 소통으로 채워나가는 영화色[인터뷰]
- 입력 2016. 10.17. 15:44:31
-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한두 달 사이에 십여 편이 개봉할 정도로 영화 시장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관객은 영화감독과 배우만 기억할 뿐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하는 수많은 스태프들은 엔딩크레디트 외에 대중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상 감독 함현주
영화가 영화감독과 배우의 힘에만 의지한다면 커다란 카테고리로써 장르 외에 다양성과 차별성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한국 영화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소비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데는 영화의상의 세밀한 설정들로 풍성해지는 시각적 표현력의 진화와 완성도의 기여가 컸다.
이처럼 영화의상은 글로 존재하는 시나리오가 카메라를 거쳐 시각적 스토리로 완성되는 과정에 개입하게 되고 디자인 제품에 레이블이 붙듯 영화의상 감독들마다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커머셜 브랜드를 운영하는 오너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자신만의 캐릭터와 색깔이 있는 것처럼 영화의상 감독들 역시 각자가 영화를 풀어가는 원칙과 과정이 조금씩 다르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화의상 함현주 감독은 ‘스토리에 녹아드는 옷’으로 장면 장면이 함의하는 메시지를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면서 영화를 채워나간다.
함 감독은 “제가 옷을 버리지 못해요”라는 말로 그녀에게 옷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임을 짐작게 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소영(윤여정)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노인을 죽일 때 입었던 트렌치코트, ‘연애의 온도’에서 소심한 장영(김민희)이 입었던 후줄근한 의상이 그의 옷장에 잠들어있던 옷이었다.
그녀는 “(영화의상 감독들마다) 접근 방법이 달라요. 비주얼을 전면에서 내세워서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있고, 저는 캐릭터의 히스토리, 정서, 이런 것들을 탐구해 나가면서 알아나가고, 이렇게 알아내고 창조해내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 옷을 입히는 것. 그 과정을 즐기죠”라며 영화의상 작업에서 자신만의 ‘문학적 취향’에 의한 작업 방식에 대해 언급했다.
◆ 영화色의 시작, 감독과 열린 소통 ‘디테일의 에너지’
수없이 쏟아지는 영화들은 지향하는 장르 안에서 유사성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어쩔 수 없음’을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 함 감독은 ‘발상의 전환’에 대해 언급했다.영화 '탐정 : 더 비기닝'(감독 김정훈, 2015년),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감독 장준환, 2013년)
시대극과 달리 현대극은 현시점에 존재하는 시각적 요소들이 사용됨으로써 유독 의상은 존재감을 갖기 쉽지 않다. 특히 함현주 감독의 최근 작업들이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작품들이 다수였다는 점에서 비범함을 가진 평범함의 힘은 조금은 다른 생각의 출발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객과 ‘공감’이라는 접점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감독들은 영화를 시작하게 되면 시달리죠.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기진맥진해지기 마련인데. ‘탐정 : 더 비기닝’ 김정훈 감독은 그 와중에도 (시나리오와 캐릭터, 영화에 대한 분석) 함께 대화하는 시간들을 재미있어했습니다”라며 감독과 의기투합이 불어넣는 에너지에 대해 언급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시크한 꼰대’ 형사 노태수가 나왔다. 항상 며칠 동안 목욕도 안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는 영화 속에서 정형화된 흔한 꼰대 형사와 달리 세련된 트렌치코트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 성동일은 낯설지 않아서 오히려 관객이 스스로의 반응에 생경해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었다.
디테일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장준환 감독과 함께한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는 그가 가진 세심함이 매 순간 동기부여가 됐음을 언급했다. 함 감독은 “장준환 감독은 디테일하기로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런데 저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라며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열어놓고 작업하는 순간의 소중함에 대해 말했다.
‘화이’는 한 팀인 김윤석 장현성 김성균 조진웅 박해준 5명에게 슈트를 입히지 않고 각자의 살아온 과정과 역할에 맞게 제각각 의상 콘셉트를 달리함으로써 전혀 다른 색채의 느와르를 완성했다.
◆ 영화色의 확장, 배우와의 열린 수다 ‘공감의 희열’
감독과 밑그림 작업만큼이나 배우가 설정된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도 중요하다. 한국영화는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배우의 의존도가 높아졌다. 제작 편수 대비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영화 '연애의 온도'(감독 노덕, 2013년),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 2016년)
특히 시대극이나 사극처럼 비주얼을 앞세울 수 없는 현대극에서 비슷한 배우들에게서 전혀 다른 느낌을 끌어내는 것은 제아무리 유능한 의상감독이라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에 함 감독은 배우와의 편한 대화 속에서 합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시너지에 대해 언급했다.
‘순애보’를 시작으로 ‘뜨거운 것이 좋아’ ‘연애의 온도’까지 김민희의 로맨틱 코미디 출연작을 함께 하면서 ‘패션’이라는 공감대로 인해 작업 과정 내내 즐거웠다는 것. 그녀는 “‘연애의 온도’ 장영은 소심하고 순박하고 약간은 촌스러운 은행원이었죠. 그래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김민희)는 패셔니스타이고 정말 세련됐으니까”라면서도 전작을 통해 김민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배우 김민희 같은 경우는 ‘주거니 받거니’가 정말 재미있어요”라며 옷에서 드러나는 여자들의 성향에 대한 디테일한 차이를 잘 알고 있어 세세한 설명이나 설득 작업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죽여주는 여자’ 소영은 함 감독이 강조하는 ‘문학적 서정성’이 가장 집약된 인물로, 배우의 거부감 없는 의상 흡수력이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배우 윤여정은 헤어 메이크업 의상 다 각각 스테프들에게 전적으로 다 맡깁니다”라며 노년 배우와의 작업이 어떤 젊은 배우와의 작업보다 열린 사고로 접근할 수 있었음을 피력했다.
함현주 감독은 “사실은 별거 아닌 아이템이 제자리에 쓰일 때 빛나잖아요. 세상에 안 예쁜 색은 없지만 잘 쓰여진 색은 매력적인 것처럼 평범한 옷이 매력적이게 보일 수 있게 적당히 쓰이는 것. 이 ‘적당하게’ 쓰는 게 중요하죠. 옷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게 저희의 할 일입니다”라며 영화의상 감독으로 자신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의했다.
영화의상은 시나리오와 감독의 의도에 따라 설정된 캐릭터들에게 색을 입히고, 이렇게 입혀진 색을 배우가 수용해 자기 것을 만드는 전 과정 속에 있다. 영화가 늘 그렇듯 혼자 하는 작업이란 있을 수 없다. 함현주 감독은 옷마다의 가치는 영화, 감독, 배우와 ‘합’을 이룰 때 빛을 발하고 작품의 완성도로 이어지며, 이 모든 과정은 소통이 근간이 됨을 다시 한 번 각인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kr/ 사진=권광일 기자, 영화 ‘죽여주는 여자’ ‘탐정 : 더 비기닝’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연애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