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플릿’ 도박 볼링 보다 빛나는 이다윗의 활약 [씨네리뷰]
- 입력 2016. 11.01. 18:59:13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도박볼링.’ 일상에서 건전하게 즐기는 친숙한 스포츠인 볼링이 도박이 된다면? ‘도박’과 ‘볼링’의 결합이라는 소재는 신선함으로 먼저 눈길을 끈다. 신선한 소재는 개성 있는 작품으로 탄생할 수도 있다. 반면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재라면 감독에겐 모험이기도 하다.
영화 ‘스플릿’(감독 최국희, 제작 오퍼스픽쳐스)이 오는 9일 개봉된다. 최국희 감독은 단편 ‘블루 디코딩’으로 제 1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필름매체상을 수상한 바 있다. 최 감독은 3년 전 한 볼링장을 찾았다가 우스꽝스런 폼으로 볼링을 치면서 높은 점수를 내는 한 자폐 성향의 남성을 목격했다. 그 일은 잊히지 않고 그의 뇌리에 남아 ‘스플릿’이란 영화로 탄생됐다.
영화에는 불법 도박, 스포츠 승부조작, 약자를 이용하는 이기적인 인간의 단면 등이 담겼다. 그러면서도 극단적인 악을 만들기보단 유쾌함을 가미해 어두움을 희석시켰다. 철종(유지태)과 희진(이정현)의 캄캄하고 암담한 현실 앞에 영훈(이다윗)이 나타나면서 두 사람 앞에 한 줄기 빛이 비치듯 희망이 보이고 관객에겐 웃음과 따뜻함이 시작된다.
자폐 성향을 지닌 볼링 천재 영훈은 ‘순수함의 승리’를 보여준다.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직진해 가는 그는 볼링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남다른 집중력을 통해 역설적으로 극중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비춰진다. 아울러 그의 그런 면모는 철종과 희진에게 마저도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녔다.
과거 볼링계의 전설이라 불리며 이름을 날리던 철종은 불운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낮에는 가짜석유 판매원, 밤에는 도박 볼링판에서 선수로 뛰며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지만 볼링만큼은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영훈을 우연히 만난 후 철종은 영훈을 자신의 파트너로 끌어들인다. 철종의 조력자이자 도박판의 브로커 희진의 주도 아래 큰 판이 벌어지고 철종과 끈질긴 악연의 두꺼비(정성화)까지 가세해 치열한 승부가 시작된다.
영훈의 볼링을 향한 집중과 성실함,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순수함으로 인한 상황들은 극중 인물들은 물론이고 관객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타인이 보기엔 엉뚱한 행동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그의 행동엔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단순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로 인해 행복해한다. 그 순수함은 때로 알면서도 거짓된 행동이나 말을 하는 우리를 꼬집는다.
철종은 보조기구를 착용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도박 볼링을 한다. 과거 유망한 볼링 선수였지만 사고로 망가진 다리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이 함께 무너졌다. 망가진 그는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 사면초가의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이때 영훈을 만난 건 그에게 그야말로 '로또 당첨' 같은 일이다.
영훈과의 만남이 '로또 당첨'과도 같은 인물이 또 있다. 철종의 옆에서 항상 함께하며 그를 게임이 있는 곳으로 이끄는 브로커 희진. 철종 영훈이 한 팀이 되어 게임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볼링장을 담보로 두꺼비(정성화)에게 빚 독촉을 받던 그녀의 인생에도 빛이 든다. 철종 영훈을 도박판으로 안내하는 그녀지만 정도 많고 허당 같은 면도 있어 인간미가 느껴진다.
토우볼링장 실소유주이자 도박볼링판에서 판돈을 걸며 재력을 과시하는 두꺼비는 국가대표 때부터 철종에게 열등감을 가졌던 인물이다. 과거 철종을 큰 위험에 빠뜨린 그는 자신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철종을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 철종이 영훈을 만나 도박판에서 잘 나가는 것 또한 가만히 두고보지 못하는 그는 열등감과 시기가 낳는 비열함을 잘 보여준다.
전작을 통해 검증받은 배우들인 만큼 연기에 있어 각자 제 몫을 다 한다. 특히 이다윗은 결코 쉽지 않은 자폐 성향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며 웃음꾼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가 등장하면 웃음이 피어나고 분위기가 밝아진다. 절제된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비록 투구 자세가 이상하고 한쪽 다리에 의료 기구를 착용해 어설퍼 보일 지라도 이들이 던진 공이 맞춘 볼링핀이 쓰러지며 내는 경쾌한 소리는 가슴이 뚫리는 시원함을 준다. 과정은 남들과 다를 수 있지만 그 결과는 훌륭하다. 이들을 비웃던 상대팀 선수 혹은 주변 사람들도 곧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둔다. 이들이 던지는 공은 이들의 의지와도 같이 굳건하게 나아가 핀을 쓰러뜨리고 만다. 공도 사람도 남들이 뭐라건 갈 길을 간다.
국가대표 볼링선수에서 도박판 선수로 망가진 남자, 생계를 위해 도박판에 뛰어든 여자, 재력을 과시하며 배팅을 하는 사람 그리고 볼링만 생각하는 단순한 남자가 한데 섞여 볼링 도박판을 만들고 정신없이 질주한다. 그런 가운데 어딘지 하나씩 망가진 이들이 모여 마치 가족과도 같은 따뜻함을 만들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은 이들이 모였을 때 함께 걸어나갈 수 있음을 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도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고 싶게 하는 영화다.
다만, 볼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한정된 탓인지 도박 영화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도팍판의 긴장감이나 재미 요소는 부족한 듯 느껴진다. 소재는 참신했지만 다른 도박 영화에서 본듯한 연출 역시 영화의 한계점으로 보인다. 타 도박 영화에선 볼 수 없는 새로움을 보였다면 ‘도박 볼링이어야 했던 이유’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참신함이 소재를 따라갈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러닝타임 121분. 15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