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려진 시간’ 신예 신은수의 발견X빛나는 강동원의 도전정신 [씨네리뷰]
- 입력 2016. 11.02. 22:06:54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어린 시절, 우리들 만의 세계를 구축하던 때가 있다.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세계는 어리고 순수하던 때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그들만의 세상이다. 그 나름의 진지함과 모험정신이 만든 그 아름다운 세상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본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과도 같다.
어린 시절 가져본 나만의 세계, 어른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피식 웃음이 날 만큼 귀여운 그 모습은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며 공감을 자아낸다. 신비로운 영화 속에서 추억 속 여행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아이들에겐 그들의 행동이 진심을 다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어리지만 순수한 만큼의 진정성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영화 ‘가려진 시간’이 오는 16일 개봉된다.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연출부를 거쳐 단편작 ‘숲’으로 지난 2012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 호평을 받으며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독립영화 ‘잉투기’를 통해 한국영화계 기대되는 신예 감독으로 주목을 받았다. ‘가려진 시간’은 그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영화는 엄마를 잃은 뒤 수린(신은수)이 새 아빠 도균(김희원)과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자신만의 공상에 빠져 홀로 지내는 수린에게 성민(이효제)이 먼저 다가온다. 둘만의 암호로 둘만의 공간에서 둘만 아는 추억을 쌓은 그들. 어느 날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친구들과 산으로 가고 그곳에서 모두가 실종된 채 유일하게 수린만 돌아온다.
며칠 뒤 자신이 성민이라는 남자(강동원)가 수린 앞에 나타난다. ‘가려진 시간’에 갇혀 어른이 됐다는 성민 수린만이 성민을 믿어주는 가운데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성민은 쫓기는 상황에 이르는데… 과연 이들의 앞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화노도로 전학 온 수린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다 먼저 다가온 성민을 만난다. 이후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아이들의 행복한 시간이 펼쳐진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숲으로 아이들만의 모험을 떠나고 그곳에서 신비한 구멍을 발견하면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풍부하고 기괴한 것을 좇는 수린은 자신과 통하는 성민을 만나고 두 사람이 서로의 친구이자 첫사랑이 된다. 외로움은 두 사람이 한층 가까워지는 계기다. 새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수린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과 가까운 친구도 없는 학교에서 멍하게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있다.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나는 성민은 수린에게 “너만 믿어주면 돼”라고 말한다. 보육원에서 지낸 그 역시도 현실 세계에 마음을 둘 곳은 수린 밖에 없는 외로운 존재다.
‘화노도 아이들 납치 사건.’ 현실적 장치다. 이는 어른의 눈으로 본 현상이다. 아이들의 눈엔 다른 게 보인다. 바로 자신들만의 세상이다. 이들의 시각에 차이를 주는 요소는 ‘믿음’이다. 믿음의 유무가 거대한 시각차를 만들어낸다. 어른의 눈에 납치 범죄 현장인 그곳은 수린과 성민에게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세상이다.
단 며칠 만에 성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이 성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가 겪은 일도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라 어른들이 그를 믿지 않는 상황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어른의 눈에 성민은 단지 범죄자일 뿐이다. 수린 마저도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 그를 처음 봤을 땐 믿기 어려웠으니 그 또한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시간이 멈춘 곳으로 간 성민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표현하는 것도 흥미롭다. ‘나 외의 모든 것이 멈춘다면?’하는 동심 가득한 상상력이 주는 재미도 있지만 곧 즐거움은 퇴색되고 그 안에서의 외롭고 힘든 상황을 묘사한 부분은 심리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는 영화가 아름다움만 존재하는 동화가 아님을 잘 보여주면서 나름의 특색을 갖는다.
영화의 음악 미술적 요소도 충실한 채워졌다. 노랑 파랑 등 화면의 색채가 시시각각 바뀌고 클래식 악기와 현대적 악기가 어우러져 내는, 소리가 혼합된 음악이 어우러져 보다 풍부한 느낌을 준다. 시각과 청각을 아우르며 아름다움과 기괴함의 공존을 만들어 낸다. 진정한 믿음과 첫사랑의 순수함, 신비로우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감각적인 미장센이 조화롭다. 상상력 넘치는 스토리지만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 법한 범주에 속하는 설정으로 인해 설득력을 얻고 감각적인 미술과 카메라의 구도 및 움직임, 수채화 같은 음악, 동화 같은 감성과 영상미가 신선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시간이 멈춘 곳에서의 쓸쓸함과 현실 세계에서의 쓸쓸함은 그 종류가 다름을 느끼게 해 준다. 자신 외엔 철저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계에서 느끼는 적막감은 정신적 고통을 주고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주는 무료함은 어딘가에 있을 다른 세계를 갈망하게 한다. 그런 두 쓸쓸한 세계에서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워한다. 쓸쓸함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그 과정에서 그들만의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내던 시간이 그들에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신예 신은수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신인인 데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지만 앞으로가 기대될 만큼 첫 작품임에도 차분하게 영화를 잘 이끌어 나간다. 강동원은 늘 그랬듯 이번에도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개봉영화 장르의 범위를 넓히는 공을 세웠다. 신인 감독·배우와 함께 하는 독특한 소재의 영화를 택한, 거침없는 그의 도전 정신이 빛난 작품이다. 엄태화 감독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한’이 아닌, 신선함을 지닌 감독이란 것을 각인시키며 차세대 주자로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을 내놨다. 특히 그는 탁월한 미적 감각을 한껏 뽐냈다.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된 수린과 성민은 어리지만, 순수함을 지닌 만큼 강한 믿음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고 보호하는 모습은 애틋함을 느끼게 하지만 무엇보다 순수한 믿음이 지니는 강한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힘은 희생으로까지 번지면서 가슴 아린 첫사랑에 대한 느낌을 일깨운다.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이 주는 아련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마음을 흔든다.
후반부로 가서는 끝날 듯 끝나지 않으면서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시의 함축이 지니는 아름다움보단 필요 이상으로 장황하게 쓴 산문이 표현하는 아름다움에 가까운 느낌이다. 친절한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상황을 친절히 설명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은 결과인지 어느 지점 이상으로 가면서 지루함이 없지 않다. 아울러 마지막 강동원의 모습이 조금은 어설프단 점이 옥에 티로 꼽히지만 전반적으로 참신함과 시청각적으로 주는 풍성함으로 인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러닝타임 129분. 12세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