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플릿’ 유지태 “아픔 숨기며 사는 철종, 실없고 껄렁한 모습 보여주고 싶었죠” [인터뷰①]
- 입력 2016. 11.05. 15:21:26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오래된 얘기여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재밌었단 기억이 딱 떠올라요. ‘독특한데, 볼링?’ 인기종목은 아닌데 시나리오는 재밌고 감독을 만나봤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만났는데 느낌이 되게 거칠고 저돌적이고 뚝심 있어 보였어요. 같이 얘기 좀 나눠보고 진행해보자 해서 마음의 결정을 했죠.”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40)를 만나 영화 ‘스플릿’(감독 최국희, 제작 오퍼스픽쳐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소재의 독특함과 시나리오의 재미에 이끌려 이번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언론시사회 당시 맨 뒷줄에 앉아 호탕하게 웃던 그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임에도 개그 코드가 있는 장면에선 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의 얘기를 하니 “엄청 재밌던데요. 재미없으셨어요?”라며 웃었다.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렸던 그에게 가장 재밌었던 장면을 꼽아달라고 말했다.
“난 사실 영화를 볼 때 웃음이 헤프다. 희진(이정현) 과의 신에서 포커스 아웃된 상태에서 물을 꼴각 마실때 그때도 그렇고 영훈(이다윗)과 연기할 때도 매번 계속 던지는데 (영훈이) 돌부처처럼 앉아있으면 (내가) 계속 뭔가 얘기한다. 내가 넉살 좋은 배우는 아니어서 첨엔 좀 낯설었는데 앙상블 잘 맞추는 게 정말 중요해 최대한 노력했다.”
지난 8월 종영한 드라마 ‘굿와이프’에서 고퀄리티 연기를 선보이며 '쓰레기'와 ‘사랑꾼’의 합성어인 이른바 ‘쓰랑꾼’이란 별명까지 얻은 그는 오는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스플릿’을 홍보하는 동시에 또 다른 작품인 ‘꾼’을 촬영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스플릿’ 홍보와 ‘꾼’ 촬영 중이라 일이 많다. 좋은 작품들을 만나 기쁘다. 영화 끝나고 바로 ‘굿와이프’ 들어가고, 2주 지나고 바로 ‘꾼’ 촬영에 들어갔다. 3주 정도 미뤄져 준비하고 바로 들어갔다.”
‘스플릿’은 도박 볼링 세계에 뛰어든 밑바닥 인생들의 짜릿하고 유쾌한 한판 승부를 다룬다. 유지태는 한때 ‘퍼펙트 맨’으로 불린 전 볼링 국가대표 선수이자 현재는 도박볼링판의 선수로 뛰는 철종 역을 맡았다. 전직 국가대표 볼링선수를 연기한 그는 영화를 준비하며 볼링 연습에 매진했다.
“세븐 스트라이크까지 쳤다. 세 개만 더 쳤으면 퍼펙트게임인데. 4~5달 준비했다. 볼링공이 요즘 잘 나온다. 장비가 잘 받쳐줘 단기간에 성적을 올릴 수 있다. 볼링 칠 때 아무래도 매번 한 네 시간씩 치니까 선수들도 조금 무리하는 거라고 하더라. 영화가 무리가 어딨나. 빨리 마스터 해야지.(웃음)”
의지로 해냈지만 과정에선 분명 어려움을 겪었을 터다. 배우들이 선수 연기를 할 만큼 볼링 실력을 쌓는단 것엔 응당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기에 볼링을 배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에 관해 물었다.
“처음에 자세 익히는 게 조금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다. 스텐다드로 쳤는데 파워볼 폼을 감독님이 요구하더라. 짧은 시간에 마스터하기 부담스러워 ‘파워볼 하나 배워서 하자’ 얘기했더니 ‘안 된다’더라. 파워볼이 화려하다. 스틸컷에서 공개된 게 파워볼이다. 스텐다드는 팔이 조금밖에 안 올라간다. 프로에게 정석으로 배웠다. 장희웅 씨라고 영화 속에서 꽁지머리를 하고 나오는 분인데 볼링 프로이면서 연기자다. 두꺼비(정성화)는 다른 프로가 맡았다. 장희웅 씨가 가진 폼이 굉장히 화려하다. 이다윗이 하는 폼이 팽이볼인데 우리나라에 팽이볼로 치는 분이 한 명밖에 안 남았다더라. 뭐 하나 하면 제대로 해야 한단 생각에 잘하고 싶었다.”
철종은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인물이기에 늘 다리에 의료용 보조 기구를 착용하고 다닌다. 극 중 볼링을 칠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조차도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될 만큼 불편해 보인다.
“사실 잘 구부러진다. 구부러지고 고정할 수도 있고 볼링 칠 때 구부러지게 했다. 촬영할 땐 보조기구가 자꾸 흘러내려 불편해 스티커를 좀 덧댔다. 볼링 치는 장면에선 잘 안 보이는데 그게 더 리얼리티에 가깝긴 하다. 그래서 깔창을 두껍게 깔기도 했는데 별로 차이가 안 나더라. 치는 건 스탠다드 폼과 보조기구의 힘을 받는단 설정으로 했다. ‘킹 핀’(1996)이란 옛 영화를 보면 의수가 있기도 하다 없기도 한데 이런 영화 찍기가 상황이 어렵긴 하다. 장애를 구현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전직 프로 볼러이자 도박판 선수로 활약하는 철종 역을 맡았지만 영화를 시작하기 전의 그는 볼링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쌓고 캐릭터를 파악해 유쾌한 볼링의 맛을 살렸다.
“영화 하기 전에 한 번 쳐봤다. 이 영화가 어떤 영환지 나도 촬영하며 궁금했다. 시나리오에 쓰여 있는 게 좀 독특하고 연기 톤이 밝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원래 반복해서 보는데 절대 무거운 것 같지 않아 무겁지 않은 사람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첫 촬영 현장에서도 이건 상업 오락영화 쪽으로 갈 것 같단 느낌이었다. 굉장히 빠르고 볼링공이 핀을 날리듯 유쾌하게 표현하겠다 하면서 내 캐릭터는 좀 더 희화화했다. 원래 진짜 힘든 사람들은 ‘나 힘들어요’하고 울상짓고 있지 않다. 뭔가 실없어 보이고 껄렁하고 이상해 보이고 그런 사람도 많다. 그런 식의 사람을 영화 속에 넣고 싶었다. 굉장히 아픔이 있지만 그 아픔을 숨기며 사는 사람이다. 희진과 있을 땐 좀 더 썰렁한 농담도 많이 하고.”
영훈은 자폐 성향이 있는 볼링 천재로, 연기하기에 까다롭지만 가장 독특한 인물이다. 유지태는 후배가 역량을 잘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영화를 완성도 있게 끌고 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임을 잘 알고 있는, 전체를 보는 배우다. 그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자신이 돋보이기보단 돋보여야 할 인물을 잘 받쳐주는 역할의 중요성을 잘 아는 베테랑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했을까.(웃음) 그게 내 역할이다. 선배로서 판을 잘 깔아주는 거. 욕심부리고 내 위주로 해달라고 한다면 소탐대실로 전체가 깨져버린다. 정현이 다윗을 칭찬해 주면 잘 하는 거고. 하나하나가 모여서 흥행을 만들어 낼 거라 생각한다. 영화 자체의 기획이 상업영화에 가까워 너무 심각한 건 어울리지 않고 밝은 톤의 영화가 될 것 같았다. 마냥 밝은 게 아니라 무게중심이 있는, 조금 희화화된 작품이 될 거라 생각했다. 사실 볼링이란 소재가 한국에서 비롯된 스포츠가 아니고 미국에서 비롯된 스포츠다 보니 한국과 미국의 정서가 교묘하게 섞이면서 옛 디스코 같은 독특한 뉘앙스가 생기겠다 싶었다.”
최 감독은 배우의 애드리브를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컷을 늦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어떤 애드리브가 탄생했을까.
“기억에 남는 애드리브보다 마지막 대사를 내가 만들었다. ‘스페어도 처리해야지’하는 거. 머리띠 주머니에서 빼내는 것도 감독에게 제안했다.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그렇게 크게 내는 편은 아니다. 감독이 현장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알기에 그림이 어떻게 쓰일 것 같다고 생각하면 ‘괜찮으냐’ 하고 제안한다.”
촬영 시 겪은 진귀한 경험도 있었다. 촬영 현장에 나방떼가 출몰한 것. 배우는 배우대로, 스태프는 스태프대로 나름의 고충을 겪어야 했다.
“두꺼비(정성화)를 안고 창문에 뛰어드는 장면을 찍는데 나방떼가 몇만 마리 출현했다. 창문에서 떨어질 때 소리를 질러야 했는데 입에 나방이 들어갈까 걱정되더라. 나방떼가 불을 쫓는 성향이 있잖느냐. 나방 사체들이 길거리에 쌓이고 그랬다. 화면상에서 지워내기도 하고 스태프가 라이트로 몰이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영화 ‘가려진 시간’과의 경쟁에 대해선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완전히 걱정에서 자유로울 순 없음을 내비쳤다. 최근 김수현 이홍기 등 스타들의 볼링 사랑이 이슈가 된 점에 대해선 “잘 되려는지 그렇더라”며 웃었다.
“우리 영화는 오락영화로서 훨씬 더 관객의 호응을 이끌 거라 봐요. 관수 차이가 있을 것 같아 힘들 수도 있겠죠. ‘그 영화 진짜 재밌던데’하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아요. 시국이 어렵긴 한데 ‘시원하더라’ 할 것 같아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