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상 윤미라 ‘가려진 시간’ ‘봉이 김선달’, 판타지 살린 리얼리티의 힘 [인터뷰]
입력 2016. 11.23. 15:10:17

영화의상 윤미라

[매경닷컴 시크뉴스 한숙인 기자] 영화는 어떤 장르든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될 때 비현실적인 요소들로 인해 매력적으로 각인된다. 이처럼 사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가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다.

실화에 근거한 영화조차 허구적 요소가 리얼리티에 설득력을 더하고 관객에게 공감을 끌어내는 도구로 기능한다. 역으로 판타지에 충실한 영화는 리얼리티적 접근 방식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저 그런 허무맹랑한 스토리에 그쳐 관객과 공감에 실패한다.

올해 개봉한 영화 ‘봉이 김선달’(7월)과 ‘가려진 시간’(11월)은 가상의 인물인 김선달과 성민을 주인공으로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사건들을 마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처럼 전개한다.

‘봉이 김선달’에서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며 사기 행각을 벌이다 결국 궁까지 들어가 임금 행세를 하는 장면은 ‘저게 가능했을까’ 의구심이 들면서도 ‘그래 실제 궁 생활을 해도 임금 얼굴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될 거야’라며 스스로를 설득하게 한다.

‘가려진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13살 아이에서 불과 며칠 만에 10년 세월을 훌쩍 넘긴 20대 청년이 돼 나타난 성민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남자에 대한 동경으로 금세 뒤바뀐다.

영화의상 윤미라 실장을 거친 두 작품은 캐릭터에 대해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까지 ‘미루어 짐작하게’ 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의상 안에 함축해 영화를 관객이 좀 더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윤 실장은 “저 역시 시나리오죠”라는 말로 영화의상 감독들이 항상 그렇듯 ‘시니리오 분석’에서 작업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사극이든 시대극이든 결국 ‘공감할 수 있는 재현’으로 시나리오를 처음 대할 때 느끼는 첫 느낌에 따라 ‘어떻게’ 재현할지 방향을 잡게 된다는 것이 그녀가 영화의상을 하는 방식이라는 것.

#1. 판타지 속 논픽션 캐릭터, 허구를 채운 리얼리티

영화 '봉이 김선달'

“포괄적인 말이긴 한데, 시나리오를 읽으면 촉감 질감 컬러감 그런 게 와 닿아요. ‘봉이 김선달’ 같은 경우 설화지만 역사적 배경이 있는 스토리로,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시나리오를 읽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칠 거야, 루즈하게 해야 할까, 슬림할거야’ 이런 느낌들을 따라가는 거죠”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 따라잡기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들에 근거한 의상으로 인해 비현실적인 사건들에 리얼리티라는 힘을 부여한다.

‘봉이 김선달’은 유승호의 미소년 이미지를 살리면서 누구에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드러내는데 도포 깃이 큰 역할을 했다.

윤 실장은 조선 중기 효종을 시대 배경으로 청년 김선달 역할을 맡은 유승오의 이미지를 잡았다면서 “깃이 당시 시대에도 넓었습니다. 시대적 고증에서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폭을 최대한으로 넓혔죠”라며 유승호의 작고 예쁜 얼굴을 여리게 보이지 않도록 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가려진 시간'

‘가려진 시간’은 어린 성민과 어른 성민이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심어주고자 한 것이 리얼리티의 핵심이다.

어른이 된 성민 강동원이 처음 등장할 때 입고 나오는 후드집업점퍼는 어린 성민 이효제가 사라질 때 입었던 후드티셔츠와 유사성을 부여하기 위해 설정했다는 것.

“성민이 같은 경우 그 상황에서 그의 기분 그의 심리를 생각하면 숨고 싶은데 수린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거잖아요. 수린이 입장에서는 어린 성민이가 갑자기 성인이 돼 나타나 ‘나 성민이야’라고 말하는 상황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생각해봤죠. 그래서 어린 성민이가 사라지기 전에 입었던 후드 아이템으로 연결고리를 형성했습니다”라며 관객이 믿게끔 배치한 장치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강동원이 현실로 돌아와서도 메고 다니던 가방, 멈춰진 시간 속에서 입고 다니던 짙은 그린색, 빛바랜 브라운색 옷 역시 어린 성민이와 연결점을 이룬다.

#2. 논픽션 캐릭터가 픽션이 되는 순간, 시선 끌기

가상의 인물과 허구로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분명히 실제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영화적 판타지가 완전하게 제거되면 매력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봉이 김선달’ 유승호와 ‘가려진 시간’ 강동원은 존재 자체만으로 비주얼의 반은 채웠다고 할 정도로 배우 자체가 가진 외모가 영화적 판타지를 충족한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없으면 판타지적 외모조차 빛이 바래기 마련이다.

‘가려진 시간’은 멈춰진 시간 속에서 어른이 된 성민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바람을 갖고 친구 태식과 함께 어른 신고식을 치르는 장면이 영화의 전환점이 된다.

기본 블랙 슈트를 입은 태식 역의 엄태구와 달리 세련된 화이트 셔츠재킷을 입은 강동원에 대해 우려도 있었지만, 걱정과 달리 예술가 감성을 가진 성민에게 태식과는 다른 드레스코드가 필요하다는 윤 실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96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떠올랐다는 윤 실장은 “강동원만의 느낌으로 충분히 판타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가려진 시간’ 속 강동원만의 판타지를 만든 이미지메이킹 시작점에 대해 밝혔다.

영화 '봉이 김선달'

‘봉이 김선달’은 사기꾼 김선달의 수없이 바뀌는 변신술의 극적 매력을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의상의 디테일이 아닌 실루엣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완성했다.

윤 실장은 “의상이 화려하면 캐릭터나 상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봉이 김선달’은 유난히 달리고 도망치는 장면이 많죠. 그래서 의상은 평상복에 기준해 최대한 심플하게 가되 달릴 때 펄럭거림을 이용해 역동적인 느낌을 살리면서 캐릭터의 매력을 부각하고자 했습니다”라며 “디테일이 화려하기보다 라인의 풍성함으로 화려함을 표현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하지만, 사실 어떻게 아느냐가 중요하다. 영화의상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게 아니었을까’하는 상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영화적 매력이 더해지기도 혹은 감해지기도 한다.

허구지만 실화를 근거로 한 영화보다 더 실화가 아닐까 혹은 실화였으면 하는 바람을 자극한 ‘봉이 김선달’과 ‘가려진 시간’ 속에서 윤미라 실장은 의상을 통해 관객에게 대화를 걸었다.

[한숙인 기자 news@fashionmk.co.rk/ 사진=권광일 기자, 영화 ‘봉이 김선달’ ‘가려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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