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너무 현실 같아 섬뜩하다 [씨네리뷰]
입력 2016. 11.29. 20:43:39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재로 덮인 회색 마을. 어쩌면 예방할 수 있었던 눈앞의 절망적 재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그것이 현실이라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것이다.

바로 그 같은 기회가 지금 이 시각이라면, 최선을 다해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으로 그와 같은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데에 모든 힘을 다해야 할 것임을, 영화는 그 막막한 상황과 절망적인 감정을 통해 최선을 다해 말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믿고 있던 컨트롤 타워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점차 극에 달하고 최악의 사태를 유발한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직원인 재혁(김남길)과 그의 동료들은 목숨 건 사투를 시작하는데… 과연 이들의 앞날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정우 감독은 ‘광복절 특사’‘라이터를 켜라’(2002) 등으로 각각 제23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바람의 전설’(2004)을 통해 연출로 데뷔해 살인 기생충을 소재로 한 재난 영화 ‘연가시’(2012)로 451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을 일으켰다. ‘판도라’에서 그는 연출과 각본을 동시에 맡았다. 제작 기간 4년 동안 원전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발전소 내부를 살피려 직접 해외 답사를 가는 등 현실적인 원자력 발전소를 구현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체의 60%에 달하는 시각효과 작업은 ‘부산행’의 이성규 CG(컴퓨터그래픽) 감독이 2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 시각적 효과에 더해진 음악은 영상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감성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영화는 소름 끼칠 만큼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마치 어리석은 현재가 빚어낼 미래를 보는 듯한 느낌에 경각심이 든다. 그리고 그 비극의 깊이는 어떤 공포영화보다 오싹하다.

영화에는 다양한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각각의 분명한 캐릭터가 존재하며 캐릭터의 다양함이 주는 재미가 있다. 또 그로 인한 각각의 이야기가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도 튀는 곳 없이 조화롭다. 다만, 원전 위치에 의해 사투리 설정을 피할 수 없었던 점은 함정으로 작용한다. 베테랑 연기자에서부터 젊은 연기자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빠짐없이 모두 사투리에 있어 어색함이 보인다. 신예 김주현은 비중이 많은 배역을 맡아 무난히 소화해냈고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아도 됐던 문정희는 자신의 능력치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자녀를 향한 애끓는 마음을 보여준 김영애 강신일의 연기는 인상 깊다.

‘멀리 가라, 멀리.’ 영화 속 평범한 국민이 처참한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가족을 지키며 내뱉는 말이다. 작고 힘없는 한 국민의 희생정신을 국가가 반만이라도 따라갈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 중 국가는 원전 사고라는 재앙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안전 대비책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야말로 끔찍한 악몽의 상황이 벌어지고 이것이 현실이라면?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게 함으로써 현실 점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특히 ‘원전 밀집도 1위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임을 엔딩 장면에서 명시하면서 다시 한번 원전 안전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임을 일깨운다.

아이러니하게도, 극 중 누구보다도 마을을 떠나고 싶어 했던 재혁(김남길)은 마을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된다. 그는 과거 안전 불감증의 결말이 비극이란 사실을 채득했고 미래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의 가족은 같은 경험을 했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안전하다는 국가의 말을 맹신하는 가족 구성원,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반신반의하다 후에 괜찮다던 가족 구성원을 비난하는 이도 있다. 결국은 이들의 악의 없는 행동 역시 비극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통해, 국가의 역할 뿐 아니라 개인의 안전불감증 역시 꼬집는 양상을 보인다.

안전 불감증에 권력 부패 등이 더해지면서 허술해진 안전 관리가 낳은 재난, 무능한 정부와 결국 발 벗고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국민. 흔한 공식이지만 감독과 배우의 걱정대로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 시국과 맞물려 정치적인 요소가 부각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로 인해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저하되거나 영화가 말하려는 가장 큰 주제인 원전 안전 문제가 조금 덜 부각될 수는 있으나 충분히 원전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울 만큼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스토리와 연출이 설득력을 갖는다.

민간복구팀에 국가의 운명을 맡긴 정부. 국가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그들. 영화에서 정부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국민을 구하지 못하고 쩔쩔맨다. 잔인할 정도로 국민에게 눈가림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궁지에 몰렸을 땐 국민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한다. 평범한 국민은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다. 그 용기의 원천은 다름 아닌 가족이다. 국가를 원망하면서도 가족을 위하는 끔찍한 마음이 결국은 모든 용기와 헌신의 발원이다.

극 중 기득권의 자기 안위를 위한 태도와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보차단 등의 이기적인 태도는 비극을 키우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작은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은 더 크고 중요한 것을 잃는 것을 불사할 만큼 용기 있지만, 비극에서 모두를 구할 용기는 없다. 이기심은 비극의 몸집을 더 키우는 요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는 원전 안전 문제에 대한 불감증 문제를 지적하고 원전 사고의 처참함을 묘사하면서 충분히 그 심각성을 체감하게 한다. 조금 과장해 영화인지 곧 일어날 현실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생생하게 구현한다. 실제 원전 문제는 지진과도 맞물려 지금 당장 우리 앞에 처한 문제이고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영화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이 현실의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다음 달 7일 개봉. 러닝타임 136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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