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시간여행자, ‘현재’의 중요성을 말하다 [씨네리뷰]
- 입력 2016. 12.05. 21:07:05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생애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바로 이런 생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살다보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할 때가 있다.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누군가를 보기 위해,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그런 상상을 해 보지만 현재로썬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다는 건 말 그대로 판타지에 불과하다. 때문에 영화에서도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을 주변에선 믿어주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만이 타임슬립이 가능하다는 영화속 진실을 믿을 뿐이다.
2015년 현재의 수현(김윤석)은 의료 봉사활동 중 한 소녀의 생명을 구하고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신비로운 10개의 알약을 답례로 받는다. 호기심에 알약을 삼킨 수현은 순간 잠에 빠져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때, 30년 전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1985년, 오래된 연인 연아(채서진)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과거의 수현(변요한)은 우연히 길에 쓰러진 남자를 돕게 된다. 남자는 본인이 30년 후의 수현이라 주장하고 황당해하던 과거의 수현은 그가 내미는 증거들을 보고 점차 혼란에 빠진다. 사랑했던 연아를 꼭 한번 보고 싶었다는 현재 수현의 말에 과거 수현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데 이어 믿기 힘든 미래에 대해 알게 되는데… 과연 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홍지영 감독은 전 세계 30개국 베스트셀러 1위로 신드롬을 일으킨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인생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해 평생 후회하고 있던 과거의 한 사건을 바꾸려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는 첫 장면부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신비로운 전경이 펼쳐진다. 웅장한 전경과 신비로운 음악이 어우러져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주고 무언가 세상을 초월하는 일이 펼쳐질 것만 같은 묘한 분위기가 감돌아 긴장감을 조성한다.
극은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현재의 수현이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는 것을 골격으로 하지만 타임슬립은 하나의 장치일 뿐, 실은 그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한 남자의 인생을 줄기로 한다. 현재의 수현은 자신이 소홀히 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지녔다. 과거로 간 그는 30년 전 자신이 인생을 살며 놓친 소중한 것들에 대해 깨닫게 하고 그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한다. 결국 타임슬립은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자 재미 요소다. 수현이 타임슬립을 하며 이야기를 쌓아가고 그렇게 쌓인 이야기는 영화가 인생에 있어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를 새삼 깨닫는 한 남자의 이야기임을 드러낸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설에는 한국의 정서와 크게 이질감을 가질만한 요소가 없다. 그래서인지 시대 공간적 배경과 인물의 직업 등 사소한 장치들을 한국적 정서와 영화의 흐름에 맞게 조금씩 바꿨을 뿐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극 중 30년이란 세월 차가 갖는 간극을 적절히 이용한 재치 있는 유머는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30년 전 '과거 수현'을 연기한 변요한, 30년 후 '현재 수현'을 연기한 김윤석이 한 화면에 등장한 순간, 두 사람의 닮은 외모가 먼저 눈길을 끈다. 2015년 현재의 수현과 1985년 과거의 수현으로 3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인물을 연기한 두 사람은 크게 이질감 없는 모습으로 ‘2인 1역’을 무리 없이 소화한다. 타임슬립을 하는 만큼, 가장 가까운 친구인 태호를 연기한 김상호 안세하 역시 각각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경쾌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극이 주는 긴장을 이완시킨다. 신예 채서진은 수현이 30년 전에도 후에도 사랑한 여자, 현재와 과거의 수현이 만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사랑하는 여인 연아를 발랄하고 사랑스럽게 연기했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흔히 그렇듯,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 인물이 하는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든다. 미래에서 온 인물이 과거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빚어낼 미래는 예측 불가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한 행동이 의도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지 혹은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올지는 예상할 수 없다. 때문에 타임슬립을 하는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과거를 함부로 바꾸지 않기 위해 조심히 행동하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행복한 방향으로 바꿔놓기 위해 노력한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여행은 과학적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를 경우 가능하지만 다양한 면에서 모순이 있다. 영화에선 과거로 돌아간 수현이 한 작은 일에도 미래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과거의 그가 결정하는 것들은 순간순간 현재의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크게 달라지는 미래를 보며 현재의 작은 결정이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치 않는 것은 수현이 소중히 하는 대상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다. 진정성 있는 그 하나의 마음으로 이어졌기에 30년을 뛰어넘은 현재와 과거의 한 사람이 소중한 것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다. 예순의 수현은 마치 서른의 수현에게 ‘눈을 떠 지금을 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즉 소중한 것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미루지 않는다면, 현재를 사는 순간 더욱 충실히 표현한다면 미래의 우리가 갖는 후회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의 ‘Make you feel my love’와 비틀즈 존 레논의 ‘Love’ 등의 영화 음악은 80년대 배경·의상 등과 함께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엔딩곡으로 흘러나오는 80년대 대표 아이콘 김현식의 명곡 ‘당신의 모습’은 김윤석 변요한이 함께 불러 잔잔한 감동을 준다. 사랑한 여인 연아를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수현의 막연하고 작은 소원은 타임슬립이라는 거대한 판타지 요소로 이어진다. 이어 과거를 통해 보여주는 두 사람의 사랑은 거창하지 않은, 소소하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가운데서도 서로를 향한 무한한 애정이 빛나는 젊고 사랑스러운 커플의 모습이 수현의 ‘현재’의 슬픔을 더 어둡게 하는 동시에 과거의 변화를 향한 갈망을 더 짙어지게 한다.
수현은 30년 전 연인을 떠나보내고 예순이 되어서도 회한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과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를 얻게 되고 과거의 연인의 얼굴을 한 번 보는 것에서 나아가 그녀를 살리고자 한다. 우연히 만난 서른의 수현과 예순의 수현이 연아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이 지닌 비밀, 즉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드러내게 된다. 결국 연인을 구하려 애쓰기도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회를 얻는다. 다만, 영화에서 그가 상처를 드러내길 꺼리는 이유나 과거의 상처에 대한 그의 심경이 급하게 표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의 슬픔과 아픔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얻을 충분한 시간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울러 절친한 친구이자 조력자인 태호와 수현의 관계도 조금은 가볍게 묘사돼 둘 사이의 우정에 대한 깊이를 기대한다면 아쉬워 할 가능성이 있다.
서른 살의 수현의 입장에서 보면 예순의 수현은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다. 그는 시간여행자로 인해 자신의 현재를 보다 잘 들여다보게 된다. 미래에 의지하는 삶이 가져올 수 있는 후회를 깨닫고, 현재를 보다 생생히 느끼며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끼게 한다. 반면 예순의 수현은 30년이 넘게 과거에 발목 잡혀 살아간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소홀히 대할 때가 많다. 영화는 현재를 더 생생히 느끼고 바라보며 충실히 살아가는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해 우리가 현재를 소홀히 대하고 있지 않은지,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흘려보내 버리지 않는지 한 번쯤 점검하게 한다.
오는 14일 개봉. 러닝타임 111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