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우 감독, ‘판도라’를 상업영화로 만든 이유 [인터뷰①]
- 입력 2016. 12.08. 18:43:00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연가시’(2012)는 다른 뭔가를 담기에 여유가 없던 영화에요. 소재하나를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승부를 보는 영화잖아요. 좀 잘 됐지만 자랑스럽진 않아요. 그냥 완성된, 딱 기획대로 된 영화에요. 거기서 못 채워진 게 있고 그게 ‘판도라’를 한 이유죠.”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모처에서 박정우 감독(48)을 만나 영화 ‘판도라’(제작 CAC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전작 ‘연가시’로 흥행성과를 얻었지만 그 속에 빠져있던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채워 넣기로 했다.
“물량이나 규모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 사는 이야기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담아주고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연가시’는 막 해서 끝내기 바빠 한 호흡으로 했다. 정서를 넣거나 가족, 애절함 그런 걸 하기엔 연출력이 부족하고 현장에서의 주어진 환경도 벅찼다. 엄밀히 따지면 나름 대로 주제도 있었지만 기획 영화의 측면이 컸다. 그게 먹혀 잘 됐다.”
많은 재난 가운데 그는 왜 굳이 원전을 소재로 택했을까.
“내가 봤을 때 이게 가장 심각한 문제다.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든 봉합이 되고 결론이 난다. 그렇게 세상이 이어진다. 다른 재난도, 쓰나미 태풍 지진이 나면 그 당시에는 참혹하고 심각하지만 어떻게든 불굴의 의지로 수습이 된다. 원전사고는 나면 끝이라 생각한다. 체르노빌은 아직도 복구작업을 하고 있고 그 피해가 공식적으로 나온 것만 해도 유럽에서 어마어마하다. 일본(후쿠시마)도 아직 복구가 안 된다. 어제 복구 비용이 210조라 들었다. 그것도 줄인 것일 거다. 피폭당하든 멀쩡하든 다 피해를 본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원전 지역에는 인구가 많고 터지면 심각한 일이다. 넘어가도 되거나 다음에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해도 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다행히 4년 전 전작(‘연가시 ’)으로 재난영화를 해서 보고 배운 게 있고 조금은 잘 됐다. 이리저리 피해가며 다큐멘터리나 저예산 영화를 만들 게 아니라 큰돈을 들여 제대로 상업영화로 갖춰서 만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포기한 것도 있지만 좀 더 늦기 전에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져 고마운 일이다.”
영화가 현실감을 주려 노력한 점이 여실히 보인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 현실성 여부를 확신하기엔 쉽지 않았을 터. 일부 극적인 효과를 넣고자 비현실적 요소를 추가한 부분도 있다.
“구조대가 원전 사고 현장 바로 앞까지 가는 것? 불가능하다. 이 영화의 스토리 외의 승부처이자 생명은 실제 원전에서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다. 어떻게 찍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현실감 현장감이 담보돼야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거라 여겼다. 그게 안 되면 아무리 스토리를 꾸며도 수긍이 안 돼서 다른 이야기로 볼 거다. 그래서 실제와 똑같이 했다, 벌어지는 이야기도 영화적으로 장치를 극대화 한 것도 있고 반대되는 (전문가의) 생각들도 소수 있지만 대다수는 자문하고 검토받은 상황대로 말이 되게, 과학적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상황이 진전되고 발전하고 그렇게 돼어야 했다. 그게 가장 큰 숙제였고 그렇게 진행했다. 영화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바꿔야 하는 게 몇 있다. 실제 구조대가 절대 그 앞에 못 간다. 후쿠시마에서 실제 사무실 안에 (사람이) 숨어있긴 했지만 소방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물 한번 뿌리고 가고 그런다. 헬기가 딱 한대 갔는데 영화처럼 가족에게 전화하고 가족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작업하겠다고 했다. 영화작업처럼 살수 작업을 하고 했다. 영화에서 현실적으로 구조작업을 하면 이야기를 전개 시킬 수 없어 조금 현실에 맞게 변형시킨 게 우리나라 구조대·소방관이 용감무쌍하게 죽음을 각오하고 거기서 싸울 거다 하는 거다. 또 내가 아는 정보론 소방대원이 들어가는 걸 막을 사람이 없을 거다. 지자체 기관이 없을 거다. 터지는 순간 아비규환이다. 누군가에게 막아달라 할 거고 그런 걸 변형했다. 대신 얼마 지나지 않아 피폭자가 쓰러지고 하는 건 현실적 설정이다.”
많은 예산을 들인 규모가 큰 영화인 만큼 감독의 책임과 부담감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최선을 다한 스태프 배우들이 흐뭇해할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가 열심히 해줬기에 결과물에 대한 비난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다.
“돈·공간이 확보되고 스태프는 각 분야 최고인 분들을 모았다. 연기 잘하는 분들이 붙었고 난 분진 가루 속에서 정신을 안 잃고 잘 찍기만 하면 된다 생각하고 갔다. 그 덕에 큰 무리 없이 계획대로 끝내기도 했지만 현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마어마했다. 크고 작은 영화를 찍었지만 이런 상황은 스태프들도 처음이었다. 초반엔 정신 못 차리고 어쩔 줄 몰라했다. 사람들은 피를 토하고 소방관 복장을 하고, 소방차 수십 대가 다녔다. CG(컴퓨터그래픽)로 하면 되는데 부담준다고 CG로 하지 않고 송풍기 틀고 분진 뿌리고 해서 정신 잃을 것 같더라. 그럼에도 나름대로 적응력 빠른 분들이고 사전에 준비된 것들이 있어서 하루 이틀만 정신 차리고 했다. 감독으로서는 쉽게 찍으려 하면 그만큼 허술하고 어렵게 한 만큼 나올 거란 확신이 있었다. 꼭 찍어야하는 그림은 놓치지 않았다. 사소한 것 하나가 잘못돼 큰 걸 망치기 때문이다. 그런 걸 세세하게 준비하고 실수도 하고 그랬다. 내 입장에선 희열이 있다. 촬영 자체가 재난이니까 웃고 즐기며 만드는 게 아니다. 100% 재난을 체험해가며 죽기 살기로 찍고 있으니까. 만듦새가 허술하고 억지스럽다면 전적으로 내 탓이다. 배우와 스태프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 공이 돌아가게 배치하고, CG를 하면서 빈 곳을 채우게 했다. 그렇게 해야 스태프가 흐뭇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토리나 그런 문제점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게, 스토리와 그림이 훌륭하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생각하며 했다.”
그는 앞선 인터뷰를 통해 ‘4년 전 각본 쓸 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재난이나 정치적으로 암울한 사건에 대한 대책이나 안전 대응, 컨트롤 타워 역할에 있어서의 발전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 꼬집었다.
“영화로 인해 세상이 바뀌면 하는 마음이다. 중간에 ‘세월호’가 터졌다. 다시 한번 확인을 한 거다. 시나리오를 쓰며 조사했던 자료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썼지만 오히려 의도가 들어간 것 같이 보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 시나리오가 거짓이 아니고 말도 안 되는 비난을 위한 작위적으로 쓴 게 아니란 걸 씁쓸하지만 확인한 거다.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하고 썼는데 하나씩 현실화되니까 원전 터지는 거 빼고 남은 게 없더라. 착잡하다. 가능성이 있다 해서 지진을 설정한 거다. 일본처럼 해일이 넘어와 침수된 것에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체르노빌처럼 작업자 실수로 오작동이 크게 돼 사고가 나거나 아니면 테러 등 (원인이 될 수 있는 요소가) 많은데 내 생각엔 쓰나미로 인한 전력상실이 이미 벌어졌고 전문가 실수도 벌어졌으니 안 일어났던 것 중 하나가 일어날 가능성 높다 보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 지진인데, 꽤 많은 우리 원전이 30년이 넘어가는 게 많다. 당시 우리 건축 기술을 생각하면 설계도대로 지어도 위험한데 그렇게 안 했을 가능성이 있고 30년이면 많이 지났다. 지진난 뒤 밝혀지면 늦다. 문헌을 뒤져보니 우리나라도 과거 큰 지진이 있었고 월성 고리, 울진 활성단층 등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 지진이 날거라곤 생각 못 했다.”
박 감독은 수습 불가에 가까운, 원전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를 영화를 통해 무서울 정도로 실감 나게 묘사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아직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미리 방지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판도라의 상자 가장 아래에 남아있던 ‘희망’에 빗대어 설명했다.
“처음엔 원전 실상을 알리자고 생각했어요. 대신 재난 영화 형식에 얹어서 현실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으켜 관심을 갖게 하자는 정도였죠.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의 ‘판도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 때 불행 재앙이 일어나는 세상이 된다는 거예요. 물론 원전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원전을 가진 건 인류에겐 판도라 상자를 연 것과 마찬가지죠. 나중에 신화를 보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데 불행 재앙이 쏟아지고 그 밑에 희망이 남아있었어요. 그럼 이 영화에 사실만 알릴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빨리 우리가 뭔가 행동하고 아직은 이걸 막을 수 있는, 영화가 현실이 안 되게 할 기회가 있다는 거죠, 안전한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해야해요,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 막연히 겁만 주는 것보다 훨씬 내실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았어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