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박정우 감독 “원전은 낡아가고 지진은 일어나고 있다” [인터뷰②]
입력 2016. 12.08. 18:45:21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이 순간 원전은 계속 낡아가고 있고 지진은 일어나고 있어요.”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모처에서 박정우 감독(48)을 만나 영화 ‘판도라’(제작 CAC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연가시'에 이은 두 번째 재난영화 ‘판도라’로 돌아온 그는 전작보다 행복하게 작업했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판도라'는 처음부터 규모나 해야 하는 이야기, 인물 구성을 마음껏 배치해서 의도대로 진행해왔다. 125억 원 정도 들었는데 조금 모자랐지만 감독 입장에서 행복하게 했다. '판도라'는 사실 영화 현장 모양새로 따져봤을 때 감독으로서 행복한 작업이었다. 다만 나 혼자 행복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화 보는 분들이 다 같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려가면 서로 다 행복할 것 같고 그걸 위해 노력했다."

'판도라'에는 정치 풍자 요소가 포함됐다. 4년 전 영화를 준비하며 개봉 가능성 앞에서 고민하던 그는 용기 있는 스태프 배우 등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영화를 만들 때가) 지금 정권의 시작이었다. 훨씬 서슬 퍼렜고 경직돼 있었기에 어떻게 될지 몰랐다. 뒷일은 모르겠고 일단 만들어보자 했는데 투자부터 안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다 그만두고 못 하겠다 했는데 제작자 측에서 끝은 내라고 하더라. 시작 후 자료조사를 정말 많이 했기에 아까웠다. 시나리오라도 끝내자 해서 오히려 자유롭게, 못하면 말자며 썼다. 126페이지의 초고가 나왔고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 하며 던졌는데 뜻밖에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 생각보다 용감한 사람이 많다. (웃음) 스태프도 다 타이밍이 되고 큰 영화니까 (시나리오를) 보다가 약간 상기된 채 오더라. 그런 스태프 배우들도 있는걸 보고 내가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임을 내가 다 져야 하니 부담이 될 수 있는데 '으쌰'하며 투사인 것 처럼 상기된 마음가짐으로 했다. 나머지는 투자·배급 몫이니 만들어놓을 테니 정권 바뀌면 개봉하라고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했다."

박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던 당시, 지진 등의 재난과 현 시국에 대해선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가상의 상황이었던 그 비극들이 현실화되는 걸 보며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영화 속 이야기라 생각한 것이 실제가 되고 이는 또한 관객에게 영화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현실과 맞닿아있기도 했다.

"겁이 났다. '절묘하게 맞았네'가 아니라. 지진이 왔고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개봉을 결심한 며칠 뒤 이 사건이 터져서 한편 그 덕에 이렇게 떠들어대면서 원전 자체도 말하지 말고 휴먼 재난 영화라 홍보하자 했다. 현실이 더 버라이어티하니까 묻히기도 하고. 실제 있던 대사 중 누군가 해도 전혀 안 이상할 것 같은 대사가 있었다. 대통령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몇 장면이 있었는데 뺐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정부를 비판하거나 권력 비리를 캐려는 의도가 아니라 원전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지 원전 사고가 났을 때 필요충분조건으로 이걸 콘트롤하는 청와대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하기에 (정치인의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게 중심이 되는 건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지금도 워낙 그게 핫이슈라 그쪽으로 시선이 가는데 좋은 방향은 아니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다가 그런 대사가 툭 나오면 관객의 생각이 영화 밖으로 나간다. 직접적인 건 걷어내자 해서 마지막에 걷어냈다."

박 감독은 시국에 편승해 홍보 효과를 보고 싶지 않음을 강조했다. 오히려 현 시국 때문에 홍보가 더 조심스럽고, 영화보다 더 현실 같지 않은 일들로 인해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할까 걱정했다. 현 시국에 대한 자신의 비판은 그런 점에서 홍보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 영화를 마음껏 홍보하지 못하는 불편한 마음과 유쾌하지 못한 현실에서의 이슈들로 인해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까 하는 분노에서 나온다.

"사실 처음 영화를 할 때 그런(이런 영화를 상영하지 못할) 분위기면 어렵겠지만 어쨌든 그런 난관을 뚫고 이걸 개봉했을 때 영화에 대한 파문이 이 시국 사건처럼 큰 파장이 돼서 원전에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그런 걸 상상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이슈 선점이 돼서 살아남지 못한 부분이 있다. 공개석상에서 참다가 (현 시국 관련 발언이) 툭 나오는 이유는, 제작보고회에서 처음 언론에 오픈하는 날이었는데 4년 동안 숨겨놓은 자식처럼 어디 말도 못하고 나와 친한 관계자만 내가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 알았다. 배우나 감독들이 내게 '뭐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런 만큼 영화를 이렇게 조용히 홍보해야 하는 상황에 의해 응어리가 졌다. 제작보고회 때 그게 터져 봇물 터지듯 한 거다. 그런데 영화보다 뱉은 말이 더 이슈가 돼 ‘아차’했다. 시국 문화에 붙는 것 같아서다. 그다음 배우들을 모아 자중하자고 했는데 나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웃음) 어제 (언론시사회)가 가장 진지하고 심각한 자리였다. 영화가 처음 공개되는 날이고 평도 궁금했다. ‘길라임’ ‘비아그라’ 등이 터지고 홍보가 자꾸 묻혀 왜 하필 이 시점에 하게 된 건가 생각했다. 지난 4년 숨죽여 한 게 화가 났다. 삭히고 가족에게만 이야기했는데 어제 ‘두 아줌마’ 발언을 하니 여성비하로 논란이 됐더라. 그게 그런 의도로 들릴 줄 생각 못 했다.”

결국 영화가 해피엔딩이 아니란 점은 슬픔과 절망의 감정을 안기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찾아야 할 이유를 떠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이유 정도를 떠올릴 수 있다. 마지막에 재혁이 사고가 나기 전에 했던 대사가 있지 않나. 글도 잘 못 쓰는데 공들여 썼다. 사실 거기도 세게 쓰려 했다. 방향을 많이 수정해서 마지막에 ‘희망을 찾자’고 하지만 ‘겁먹지 마라. 힘든 세상이라도 우린 뭔가를 해야 된다’고 상징적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생각했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엔 현 시국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재난 앞에서 벌어질 혼선을 생각하면서도 대통령의 캐릭터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설정했다.

"4년 전 비선 실세가 있을 건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런 식으로 돌아갈 거 라는 건 알 수 없었다. 다만 대통령 설정에 대해 고민했는데 흔히 한국 재난영화에서 대통령이 우왕좌왕하고 답답하고 짜증 나는 권력자가 아니다. 나름대로 신념이 있고 똑똑한데 원전 사고 앞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대처해도 주위에 무능력한 사람이 있어서 막기 힘들어진다. 극 중 대통령의 자질과 인성은 좋지만 불행히 재능 발휘를 못 하는 시스템이 짜여있다. 이 영화에서 그걸 깨고 자질과 능력을 발휘한다. 초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이상적 대통령이 되는 걸로 설정했다."

제법 비중이 큰 연주 역에는 신예 김주현을 캐스팅했다. 그는 비중이 큰 연주 역에 왜 신인을 캐스팅했을까.

“모험한 거다. 내가 시나리오 안에서 만들어낸 역할이 기존의 이미지가 있는 여배우를 대입시키려면 어느 정도 적응시간이 필요한 인물들로 이뤄져 있어 어색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다. 진취적이고 당찬 역을 아무 선입견 없이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없다고 생각해 차라리 신인으로 도화지에서 그려내듯 하자고 했다. 위험성이 있으니 현장에서 확인해봐야 했다. 사전준비를 많이 했다. 버스도 1종 보통면허를 따게 하고 안전장치로 김영애 씨에게 부탁했다.”

박 감독은 신인을 캐스팅한 만큼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그녀에게 많은 준비를 하도록 했다. 현장에선 그녀에게 혹독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주가 얼마나 진취적이에요. 신인배우라서 생각하고 해야 할 게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런데 역할은 크죠. ‘마지막에 재혁과 통화하게 되기 전까지 너도 겁나고 힘든데 너라도 정신 차려야 가족 이웃 다 통솔한단 생각으로 참고 당찬 척 하라’ 했어요. ‘그러다 전화가 왔을 때 그때야 눈물을 처음 보이라’고 했고요. 촬영 들어가기 전날 예습, 촬영 끝나고 복습을 하게 했어요. 현장에선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했는데 멘탈이 4차원이라 적응을 잘하고 아무리 욕해도 ‘잘되라고 그러는 거죠?’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무리 없이 잘 나왔다고 봐요. 우리 영화를 본 관객은 김남길에 꼭 한번 놀랄 거고 주현이란 배우에 대해 ‘어디서 찾은 배우냐’며 회자될 것 같아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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