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도라’ 정진영 “사회 문제 진지한 고민, 영화 만든 목적 반은 이룬 셈” [인터뷰②]
- 입력 2016. 12.17. 19:28:05
-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시나리오를 받고 ‘좋다, 무조건 해야지’라고 바로 생각했어요. 바로 답을 드렸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 모처에서 정진영(53)을 만나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 제작 CAC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판도라’는 국내 최초로 원전 소재를 다룬 재난 영화다.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다룬다. 정진영은 발전소 소장 평섭을 연기했다.
“감독이 워낙 안면이 없었다. 작품을 같이 못 했는데 처음 시나리오가 와서 첫 캐스팅을 한 거다. 당시 내가 OK를 했을 때 캐스팅 완료가 안 된 상태였다.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8개월 후 들어갔으니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투자도 우려됐고 이 작품은 메시지만 전달하는 영화가 아니기에 원전사고를 다루려면 스펙터클 해야 하니 효과를 살리려면 거대자본을 동원할 수 있을까 했다. 그런데 NEW에서 투자를 좀 해서 상영까지 하게 됐다.”
영화 준비 과정에서 그는 전문가 수준까진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준비 과정을 거쳤다.
“극 중 세 팀이 있다. 발전소 식구들, 마을 사람들, 청와대. 발전소 식구들에게는 팸플릿을 줘서 공부를 하게 했다. 영화에 다 담지 않지만 알고 있어야 하니까. 예전에 본 책도 있고 일본 후쿠시마 사태를 다룬 르포도 봤다. 감독도 거기(르포)서 과정·추이들을 분석했다더라. 전문가 수준은 결코 아니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볼 수 있다. 깊은 물리학 이론은 알 수 없지만 사회적 의미, 실태 정도는 안다.”
발전소 소장 평섭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원전 전문가다. 낙하산 부장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지만 통하지 않자 좌절하고 그럼에도 재난이 닥쳤을 땐 최선을 다해 비극을 막고자 뛰어든다.
“노후 원전소 소장인데 유지보수 문제가 있단 걸 상부에 문제제기 함에도 낙하산 부장은 전혀 관심이 없다. 결국 내부 고발자로 일종의 투서를 쓴 셈이지만 좌절을 맛본 사람이다. 지진이 나니 결국 돌아가 재난을 맞고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 사람이다. 복잡한 사람은 아니고 스트레이트한 사람이다. 가정이 있는지는 안 나와 있다. 그런 건 재혁(김남길)을 통해 보이는 거고 나는 그 재난현장에서 타인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면 안 되는 강한 척 하는 사람이다.”
박 감독은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CG(컴퓨터그래픽)보다는 직접 촬영하는 것을 원했고 그로 인해 현장은 재난 현장을 방불케 했다. 영화에서 보충한 CG가 나오기 전이라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지만 재난 현장 같은 분위기에서 주는 긴장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찍은 발전소 쪽은 재난 현장이었다. 화면상 위쪽은 그렸지만 밑은 다 만들고 내부는 따로 세트장에서 찍었다. 미군 부지에 만든 현장은 분진이 날아다니고 펑펑 터지고 떨어지고 그 자체로 재난현장이었다. 영화에선 소리도 나고 그런데 우린 상상하며 했다. 물을 뿌리고 그런 게 현장에 긴장을 줬다.”
한 여름에 영화를 촬영하며 방호복을 입어야 했던 점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구조대원 역할을 했던 많은 배우가 같은 고생을 했음에도 얼굴이 자세히 나오지 않았던 점에 아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여름에 찍었다. 방호복을 입었는데 땀이 하나도 안 통했다. 헬멧을 다른 사람이 씌워줘야 했다. 나 혼자 열지도 못하고 뛰어다녀야 했으니 힘들었다. 방호복이 밀폐돼 팬(fan)을 달아 공기를 투입했다. 그런데 그것도 촬영을 하다 보면 배터리가 안 돌아가 숨이 막혔다. 찍는데 숨 막힌다고 할 수 없어서 힘들어하면 보는 이는 연기하는 줄 알더라. 그럴 때 막 벗겨달라고 한 기억이 있다. 많은 배우가 헬멧을 쓰고 연기를 했는데 우리는 그래도 얼굴이 나왔다. 많은 대원이 함께 내내 촬영을 했는데 얼굴은 잘 못 알아볼 것 같다. 그런 아쉬움이 있음에도 너무나 열심히 해 고맙고 미안하다. 얼마나 많은 친구가 출연했는지 다른 현장 가면 이 영화에서 대원이었다고 하는 배우들이 많더라.” (웃음)
‘판도라’는 125억 원의 예산이 든 대규모 영화다. 정진영은 배우보다는 감독과 제작사가 부담을 느낄 것 같다며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이기에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하기에 영화를 만든 목적을 반은 이룬 셈이라 말했다.
“뜻을 전달하기 위해 여럿이 모여 만든 영화가 많은데 그것과 달리 투자사에서 나름 사운을 걸고 만든 영화라 투자금은 돌려 드려야겠다는 부담감이 있을 거다. 사실 그런 건 감독과 제작사가 더 많이 느낄 거다. 요즘 영화들이 거의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사실 현실의 날이 더 서 있던 영화인데 논쟁을 일으킬 거라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니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흥행스코어가 얼마든 영화를 만든 목적을 반은 이룬 셈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내로라하는 영화가 줄줄이 나오는데 영화의 존재감이 알려진 것 자체로 반은 목적 달성을 한 것 같다.”
전작 ‘왕의 남자’(2005) ‘7번방의 선물’(2012) ‘국제시장’(2014)은 1000만 관객을 기록했다. 이번 영화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일까.
“1000만, 엄청난 숫자고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숫자다. 관객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영화를 개봉한 다음 영화에 대해 보고 나서 느끼는 감정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감정의 크기가 크고 힘 있는 영화 아닌가 한다.”
오랜 시간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그에게 원동력이 된 건 역시 연기를 할 때 집중하며 느끼는 재미다.
“어떤 때는 오래 쉬기도 하고 이번엔 개봉하면서 겹쳤어요. 예능도 시작하고 요즘 가장 바빴고 또 바빠지지 않는 상황이 올 거예요. 하나씩 정리가 돼가고 있어요. 배우는 사실 연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어요. 심지어 가장 편하죠. 그것만 집중하면 돼요. 촬영장이 가장 편해요. 다른 고민 없이 그것만 고민하면 되죠. 그게 가장 좋은 일이다 보니까 자꾸 찾아 들어가는 거겠죠.”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이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