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의 큐피드가 될 수 있다면 [씨네리뷰]
- 입력 2016. 12.20. 13:06:55
- [시크뉴스 조혜진 기자] “저는 유재하가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아직도 살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는 극중 현경(서현진)이 말하는 대사 한 줄로 시작된다. 故 유재하의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에 주지홍 감독의 이야기가 얹어져 4가지의 사랑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때로는 진한 감동을 주고, 때로는 웃음을 주는 이들의 사랑은 단 하나로 연결된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많은 음악인들이 그리워하는 가수 故 유재하의 곡 ‘사랑하기 때문에’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극중 현경의 대사이기도 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라는 말은 이 영화의 중요한 키포인트로 작용한다. 한 남자가 여러 사람의 몸에 ‘빙의’되는 것으로 시작돼 다양한 나이대의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을 얘기한다.
잘 나가는 작곡가 이형(차태현)은 자신의 연인인 현경(서현진)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꽃단장을 한다. 향수를 뿌리고, 꽃을 사고, 혹시라도 늦을까 차를 타고 급히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가던 중 자신이 프로포즈할 반지를 두고 왔다는 것을 알고 현경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받지 않는다. 급한 나머지 불법 유턴을 감행한 그는 차를 돌리던 순간 트럭과 정면충돌하고 의식을 잃는다. 눈을 뜬 이형은 아무런 기억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에 계속 빙의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들의 사랑을 하나씩 이뤄주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와 본인의 사랑까지 지킬 수 있을까.
차태현의 연기는 ‘차태현이 장르다’라는 말답게 자연스럽고 흠잡을 곳이 없다. 극중 사람의 몸에 빙의되는 이형 역의 차태현은 김윤혜, 성동일, 선우용녀, 배성우와 같은 옷을 입고 같이 호흡하며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했다. 특히 차태현과 한 몸처럼 연기해야 하는 다섯 명의 배우들은 차태현에게 직접 말투와 제스처를 전수받았다.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팔의 각도까지 맞추는 열의를 보인 이들의 노력이 스크린 안에서 그대로 빛을 발했다.
사실 이형이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되는 것은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활용된다. 자신이 빙의된 몸에서 그들의 사랑을 모두 이어주는 ‘큐피드’ 역할을 하는 이형은 그들의 사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게 되면서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기억해낸다.
차태현과 호흡을 맞춘 두 명의 여자 주인공 현경 역의 서현진과 스컬리 역의 김유정은 극과 극 매력을 발산한다.
차분하고 점잖은 매력의 현경은 ‘홍대 여신’이자 ‘기타리스트’로 인디 음악계에서 알아주는 뮤지션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무대 공포증을 앓고 있어 무대에는 서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서현진은 이런 현경을 긴 머리와 보헤미안 스타일로 풀어냈다. 어딘지 모르게 처연하고 가녀린 현경을 사랑스럽게 완성했다.
스컬리는 현경과 다르게 발랄하고, 엉뚱하고, 통통 튀는 4차원적인 소녀다. 고등학생인 스컬리는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닌 ‘스컬리’라는 예명을 사용한다. 일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캐릭터인 스컬리 역을 연기한 김유정은 그동안 보여줬던 마냥 귀여운 여고생이 아닌 밝고 경쾌한 캐릭터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으며 깔끔한 교복 차림에 높이 올려 묶은 머리, 앞머리를 사과머리로 묶는 포인트로 캐릭터를 표현했다.
영화의 배경은 다양하게 활용됐다. 학교, 병원, 무대 위, 경찰서 등 빙의되는 몸과 역할에 따라 각기 다른 곳에서 이뤄졌다. 그중에서도 이형의 사고가 발생하는 촬영된 교차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인데, 그의 몸에 빙의되는 네 명의 주인공들은 사고 순간에 모두 한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로 서로 전혀 개연성이 없을 것만 같았던 이야기 사이에 신선한 ‘연결고리’ 하나를 추가한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네 가지 사랑을 그려내는 영화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새해 첫 명절 설을 맞이해 만난 가족, 연인, 친구들 그 누구와 함께 봐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의 먹먹함과 적당한 사랑의 온도를 극 전체에서 유지하고 있다. 중년의 애틋한 첫 사랑 이야기를 다룬 박근형, 선우용녀의 에피소드는 관객들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감동을 선사한다.
느긋하게 영화를 감상하고 나면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내가 과연 저런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고, 상상해 보게 된다. 영화 속 이형은 이 ‘빙의’의 끝에 어떤 것이 있을지는 예상하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이뤄주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경험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다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촘촘히 채워나간다.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스크린으로 옮겨 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뻔한 스토리 전개에 뻔한 결말은 진부하다고 느껴지고, 관객들의 피로도만 쌓을 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색다른 전개와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고 싶다면 아쉬움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재하의 음악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크고 깊은 사운드를 느끼기 위해 극장에서 이 영화를 감상하길 추천한다.
주변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불편한 시대가 왔다. 이 영화는 각자의 아픔과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보게 한다. 주지홍 감독과 배우들은 ‘사랑하기 때문에’를 통해 지금 위태로운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모두 괜찮을 거라고.
[조혜진 기자 news@fashionmk.co.kr/사진=NEW]